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지금, 여기에서 감사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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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03 ㅣ No.881

[허영엽 신부의 ‘나눔’] 지금, 여기에서 감사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

 

 

가장 찬란하고 눈부신 아름다운 오월의 마지막 자락, 고 황금찬(1918~2017) 시인의 시집을 문득 꺼내들었습니다. 그중 5월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오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에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중략)

오월은 사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있던 난초가 꽃 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오월이다.<5월의 노래. 황금찬>

 

사람들은 오월이 한창인데도 그저 일 년 열두 달 중 다섯 번째 달이며 막연히 내년에도 오월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춘일 때는 자신이 청춘의 시절을 지내고 있음을 잘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 막연히 ‘아! 예전에 젊은 시절에는 참 좋았는데’ 하고 무작정 회상하지만 사실 젊은 날엔 그때대로 치열했고, 고뇌했고, 불확실한 미래에 애를 태웠을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도 좋은 사람이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나는 헛된 꿈으로 엉뚱한 곳만을 바라보았고 많은 사람의 사랑과 호의를 놓쳤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와 겸손의 마음이 부족해 내 주변 사람들과 상황에 제대로 감사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나를 바로 똑바로 보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내 주변 사람들의 장점을 먼저 보며 감사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이 우리들은 의외로 작고 소소함에서 감동과 행복을 느낍니다.

 

언젠가 신문에 난 황금찬 시인의 에세이를 오려 두었습니다. 읽고 또 읽어 나중엔 글자가 잘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시인은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라는 당부를 전해 주는 것처럼 느낀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요?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굶는 일이고 가장 슬픈 일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괴로움은 자기의 건강을 잃는 일일 것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이 세 가지를 맛보지 않았다면 그는 우선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굶는 일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고 앓는 것도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것은 그 슬픔을 형용할 수조차 없다.

 

나는 가끔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이 부모님께 가장 큰 효도를 하는 길은 부모님이 계시는 앞에서 죽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사랑하던 딸을 잃었다. 그는 대학 4학년 말, 졸업을 23일 앞두고 가고 말았다. 그렇게 고생스럽게 다니던 대학도 마치지 못하고 가버린 것이다. 그가 떠난 후 나는 그 아이가 다니던 학교를 수없이 찾아갔다. 그의 자취가 교정 어디엔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돌계단에도 앉아보고 도서관 빈자리, 썰렁한 식당에도 가보았다.

 

여름 어느 날 한적한 일요일, 그날도 나는 그 아이의 음성이 교정 어느 구석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조바심 때문에 대학교정을 찾아갔었다. 교정은 숲으로 우거져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데 이름 모를 새가 슬프게, 아주 슬프게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저 새가 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울고 있는 새 앞으로 가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애리야, 애리야”

 

새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피를 토하듯 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새는 분명 “아버지 왜 왔어, 아버지 왜 왔어”하고 우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그날 온종일 교정을 떠나지 못했다.

 

애리야, 너는 세상에 태어나 20일 만에 1․4후퇴의 피난길을 떠나야 했었지. 몸이 많이 부어있던 너의 어머니는 그리도 고생스럽게 너를 업고 기다리지도 않는 행복의 길을 밟아야 했었지. 엄마가 먹을 것이 없으니 어찌 젖인들 날 수 있었겠느냐.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의 길을 걸은 아이였다.

 

중학교 3학년 속리산에 수학여행을 갔다 와서 앓기 시작한 병명은 유아성 당뇨. 그 병이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아버지가 어찌 알 수 있었겠니. 눈이 쏟아지는 겨울날 네가 병을 얻었던 그 속리산을 찾아갔었느니라. 어디를 보아도 네가 병을 얻을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74년 2월초, 끝내 서둘러 가고 말았어. 나는 너의 죽음이 멀지 않은 것을 알고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일부러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요즘도 이렇게 가버린 딸의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아내의 병도 정작 딸의 죽음 때문이었다.

 

76년 이른 봄 아내는 인천 적십자요양소에 입원했다. 한 달 입원비와 약값이 18만 원. 나는 그 비용을 댈 수가 없어 박수근 화백이 내게 그려준 그림까지 싼값으로 팔아야만 했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면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엘 갔다. 약 8개월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지만 병색이 짙은 아내는 헤어질 때마다 슬픈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던 아내도 영영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각기 다른 슬픔과 아픈 비극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런 비극을 나만 당하고 있는 것 같아 신(神)을 의심했고 원망하기도 했다. (중략) 애리의 죽음과 아내의 타계는 나에게 인생의 깨달음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지 않고는 하느님의 슬픔을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가버린 두 사람을 사랑하고 나의 이웃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적이 없다. 오직 사랑의 대상이 있을 뿐이다, 라는 생각.

 

내가 젊은 날엔 남을 미워하기도 했고 시기와 질투도 했었다.

 

나는 금년에 상재한 시집의 제목을 ‘보석의 노래’라고 했다. 그리고 그 서문에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면 결코 남들을 아름답게 볼 수 없다고 썼다. 모든 사람들을 보석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먼저 간 두 사람이 내게 준 것은 결코 슬픔만은 아니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유산으로 준 것이다.<수필 ‘인생을 눈뜨게 한 영원한 사랑’, 황금찬>

 

에세이는 이렇게 끝납니다. 시인은 ‘인생(人生)을 눈뜨게 한 영원한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을 지나며 인생과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시인의 마음은 크기와 모양이 달라서이지 우리의 체험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먼저 간 이들의 가르침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7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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