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성미술ㅣ교회건축

바실리카의 여러 부분들3: 제단, 제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5 ㅣ No.79

[전례 상식 / 교회 건축] 바실리카의 여러 부분들 (3)

 

 

제단(presbiterio, presbytery)

 

이 부분은 제단 후벽(abside, apse)과 회중석(navate, nave)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공간으로서 오직 전례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성직자에게 유보되어 있다. 이 공간을 가리키는 서양말들은 그리스어 ‘프레스뷔테로스(사제 : πρεσβυτερο?, presbyteros)’에서 유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사제석’이라고도 번역한다. 그러나 사제석은 사제가 앉거나 서는 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어 여기서는 이 공간을 넓은 의미의 ‘제단’으로 부르기로 한다. 이 공간은 또 ‘성소’ 혹은 ‘지성소(sacrarium, sanctuarium)’로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가대(歌臺: coro, choirstalls)’라고도 부르는데, 이 이름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제단은 일반적으로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회중석보다는 한 두 계단 혹은 몇 계단을 높여 설계한다. 이 제단은 ‘격리’를 확실히 표시하기 위해 철책이나 난간 혹은 다른 형태의 분리선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분리선을 설치하여 이 공간이 갖는 신성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신자들은 영성체를 위해서만 이 공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

 

제단의 형태나 넓이는 그 안에 포함될 제대(altare, altar)와 후벽, 사제의 좌석, 가대, 독경대 등의 크기나 형태, 위치를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그러므로 이 제단은 이러한 중요한 전례공간들의 종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제단의 설계는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될 여러 전례공간들에 대한 설계가 마감된 다음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성당 전체의 외형에 맞추어 제단을 만들고, 그 제단에 여러 전례공간을 되는대로 배정하는 식의 우리의 태도는 배격해야 할 것이다. 경험이 별로 없어 잘 모르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제단의 기능과 그에 따른 넓이를 먼저 생각하고 성당 외형을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당 건축을 생각하는 모든 이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바로 이 제단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대(altare, altar)

 

제대는 성당의 모든 요소들을 수렴하는 중심점이며 성찬의 제사가 이루어지는 가장 탁월하며 고귀하고 거룩한 장소이다. 제대는 “그 위에서 거룩하게 된다.”는 히브리말의 ‘미스바에(mizbaeh)’와 비슷한 것이지만, 그리스도 교회의 전례 안에서 제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눈 마지막 만찬의 식탁과 골고타 위에서 봉헌된 십자가 제사가 재현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제대가 지닌 이러한 이중의 의미는 제대의 모양과 이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어느 의미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과 형태가 달랐던 것이다. 이름에 대해서 보면, 제사의 측면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제대’로 부르고, 식사의 의미를 강조하는 경우에는 ‘식탁(mensa)’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형태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계속 볼 수 있듯이 실로 다양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을 종합하면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식탁형 제대 : 이것은 일반적으로 넓은 대리석판을 네 개 또는 그 이상의 다리가 떠받치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마지막 만찬의 식탁과 아주 흡사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약간 곡선을 주어 하나의 식탁에 둘러 앉았던 열두 사도를 더욱 생생하게 떠올라게 된다.

 

- 블록형 제대 : 이것은 돌을 쌓아 석조벽을 만들고 그 위에 석판을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여러 돌을 쌓아 벽을 만드는 대신에 커다란 하나의 대리석 덩어리를 받침으로 쓰기도 하였다. 이 형태는 제사의 의미를 더 강조하는 것이다.

 

위의 두 형태를 종합하여 커다란 한 덩어리의 받침돌과 네 개 또는 여러 개의 다리 위에 석판을 얹어 제사와 식사의 의미를 다 같이 강조하려는 제대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탈리아 성지순례 때 꼭 들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도 이러한 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로마의 성 갈리스도 카타콤바의 이른바 성사경당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제대도 있었다. 고대의 벽화가 증언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이 형태가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의 전형적인 제대의 원형임을 알 수 있다.

 

제대는 대리석, 쑥돌, 나무, 돌무더기로 본체를 만들고, 그 표면을 금이나 은, 동으로 도금하기도 하였다. 또 고정시키거나 이동이 가능한 것도 있었다. 이동식 제대는 물론 나무로 제작된 것이었다. 이렇게 나무로 제작된 이동식 제대는 ‘가정 교회(domus ecclesiae)’와 묘지의 경당 그리고 날마다 공식적으로 전례가 거행되지 않는 모든 장소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5세기부터 제대에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게 되면서 제대를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간주하게 된다. 순교자들의 유해가 주님의 살아있는 지체(membra Christi)를 표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모든 교회들에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게 하는 관습을 낳았고, 또 제대 모양의 변화를 가져왔다. 블록형 제대에는 무덤의 인상을 주려고 전면에 구멍을 내 벽감(壁龕)을 만들었고, 식탁형 제대에는 아래 바닥에 사각형이나 십자형으로 적당히 구멍을 파고 그 위를 대리석으로 덮어 유해를 안치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함께 위에 소개된 두 가지 형태의 제대 외에 무덤의 의미를 드러내 주는 또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제대가 생겨나 널리 퍼졌으니, 그것은 장례에 쓰는 관의 모습으로 만든 관형(棺形) 제대(altare sarcofago)와 유해를 보존하는 상자에서 모습을 취한 궤형(櫃形) 제대(altare a cofano)이다.

 

하지만 시리아 지방에서는 이처럼 제대 밑이나 제대 안에 무덤의 형태를 만드는 관습을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방에서 유해는 특별히 제작한 관이나 제단 후벽의 측면 적당한 곳에 안치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리아의 관습은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시리아 지방에서는 순교자 공경이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전 서방교회 안에 일반화되어 있었던 관습과는 달리 성찬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는 관습은 도회지 교회로도 확산되어 또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4세기까지는 매일매일의 전례거행을 위하여 제단(presbiterio)에 있는 단 한 개의 제대로 충분했다. 성당 안에 있는 이런 저런 다른 제대들은 전례거행과는 무관한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신자들의 예물봉헌과 같은 용도에서 사용되던 것이었다. 그러나 유해를 제대에 모시는 관습은 아주 의무화되어 유해를 모시지 않은 제대는 전혀 상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것은 교회 안에 커다란 부작용을 낳았다. 먼저 그 동방에서 그리고 뒤이어 서방교회들이 앞을 다투어 유해를 찾아 순교자들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하여 한 성당 안에 제대의 수를 늘리고 무덤들의 영광스런 장식들을 훼손하게 되었다. 이것은 또 순교자들에 관한 전설을 대중화하기 시작하고, 전례를 이상스런 형태로 장식하는 결과도 낳았다. 이러한 관습은 아주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제대의 위치에 대해 살펴보면, 초기 그리스도교 바실리카에서는 제단의 중심에 두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다. 거리상으로도 제단 후벽과 중앙 회중석 사이의 정 중앙에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규정은 그 후에 다른 지방들에서 여러 예외를 낳는다. 시리아 같은 지방에서는 제단 후벽에 더욱 가까이 배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지방에서는 중랑(navata mediana) 가운데에 제대를 두기도 했다. 제단 후벽에 최고로 가까이 제대를 배치하던 시리아 교회들에서는 전례의 주례가 신자들을 자연히 등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후에 서방교회에도 영향을 미쳐 그러한 배치가 일반화되기도 하지만 시리아 외의 다른 지방교회들에서는 사제가 신자들을 향하여 전례를 거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에는 다시 서방의 모든 교회들이 사제가 신자들을 향하여 전례를 접전할 수 있도록 제대를 제단 후벽에서 다시 떼어놓았다.

 

이상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성당을 건축할 때 제대의 모양과 위치에 대한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그 하나하나가 고유한 신학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향잡지, 1995년 5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본지 주간, 신부)]



2,68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