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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74: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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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27 ㅣ No.856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4)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⑦


성령, 우리를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

 

 

-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불사르고 변모시키신다. 사진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대 뒤 성령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화.

 

 

성녀 엘리사벳이 체험한 성령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서 주목할 또 다른 주제로 성령과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녀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2장 10절을 바탕으로 성령이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사정을 유일하게 아시는 분”(서간 274)이라고 소개하며 우리가 하느님의 심오한 신비를 통찰할 수 있는 은혜를 얻기 위해 성령께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성녀는 성령을 삼위일체 안에서 세 위격 간의 ‘일치’를 완성하시는 사랑의 영(靈)으로 보았습니다(서간 193). 특히 성녀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두 위격 사이의 결속”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들으려면 무엇보다 성령의 움직임에 자신을 열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성령이야말로 우리와 삼위일체 하느님 사이를 이어주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신비 안에 살게 하며 신적인 생명을 전해 주는 가운데 그 관계를 완성으로 인도함으로써 우리의 성화 과정을 실제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살라버리고 변모시키는 불이신 성령

 

그러면 성녀의 글에서 성령은 어떤 상징으로 드러날까? 성녀 엘리사벳은 우리를 ‘살라버리는 불’, ‘변모시키는 불’로 성령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사실, ‘불’이라는 상징은 성경에서 그리고 신비가들의 여러 작품에서 생명의 시작이자 인간을 쇄신하고 정화하며 변모시키는 거룩한 힘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체험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곤 했습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2장 29절의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설명했습니다. 성녀에게 있어서 성령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소멸시키고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믿음 안에서 천국, 13)입니다. 성녀는, 이 신적인 불이 간직한 쾌감은 결코 식을 줄 모르는 활동을 통해 우리를 존재의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해주신다고 보았습니다. 성녀에 따르면, 성령은 무엇보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시키는 신성한 사랑의 힘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더 거룩하게 되는 가운데 성부께서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실 때 우리 안에서 당신이 총애하고 사랑하는 성자의 모상을 알아볼 수 있게”(믿음 안에서 천국, 12) 해주십니다.

 

 

신비적인 죽음으로 인도하는 성령

 

그런데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우리의 변모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 우리 자신을 더 포기하는 가운데 점점 더 작아지게 해줍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점점 더 자라고 높이 들어 올림을 받게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 과정을 ‘신비적인 죽음’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신비적인 죽음의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은 자신을 불태우는 사랑의 불 속에 잠기기 위해 서슴없이 자신을 없애고 벗어던집니다. 그들에게 이 죽음은 고통과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감미로움으로 내적인 기쁨으로 다가온다고 성녀는 전합니다. 

 

우리를 이 신비적인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불은 다름 아닌 성령이십니다. 이 신비적인 죽음의 과정은 믿음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이는 루카 복음 12장 49절(“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에서 보듯이 예수께서 간절히 바라신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령의 불을 통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시고 그럼으로써 당신과 동등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당신과 더불어 삼위일체의 내밀한 친교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를 관상적인 삶이라고 불렀습니다.

 

 

내적 여정으로 초대하시는 성령

 

성녀는 또한 우리 존재를 거둬들여 내면으로 집중하게 해주는 성령의 활동에 주목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존재의 중심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함으로써 그곳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실현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실제적인 자녀로 거듭난 우리는 성령의 움직임에 우리를 내어 맡김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제적인 변모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자극하시고 인도하시는 가운데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도모해 주십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영혼은 성령에 의해 움직여진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영에 인도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믿음 안에서 천국, 31). 성녀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우리 영혼의 하늘 안에 거하시며 그 중심에서부터 일하심으로써 우리를 변모시켜 주시고 우리 안에 “거룩한 아름다움 자체이신 분”(서간 239), 즉 그리스도의 모습이 새겨지게 해주십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1월 27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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