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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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아름다운 순례길을 가다5: 길을 보다 - 다시 한옥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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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10-19 ㅣ No.727

'아름다운 순례길'을 가다 (5 · 끝) 길을 보다 - 다시 한옥 마을로


비탈진 길, 완만한 길, 굽은 길, 곧은 길... 인생길을 보다

 

 

파가저택에 조성된 초남이 성지.

 

 

초남이성지.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생가터와 교리당이 있는 성지다. 1801년 신유박해의 회오리가 몰아치면서 유항검과 그의 부인 신희, 동생 유관검 부부, 큰아들 유중철(요한) 이순이(루갈다) 부부, 작은아들 유문석(요한), 조카 유중성(마태오), 노비 김천애(안드레아)까지 목숨을 잃었고, 그의 집은 파가저택( , 죄인의 집을 헐어 없애고 집터는 웅덩이로 만들어 집안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형벌) 당했다.

 

조촐하게 성지로 조성된 그 파가저택의 현장을 한동안 내려다보다 마지막 순례 일정을 시작한다. 오전 10시다. 마지막 날이어선지 발걸음이 가볍다. 게다가 오늘 걷는 거리는 20km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중간에 헤매지 않는다면 넉넉잡아 6시간 정도면 목적지인 한옥마을까지 도착할 수 있다.

 

약 500m 거리에 있는 교리당 앞을 지나 농수로를 따라 가는 길이다. 주변에는 논만 있는 것 아니라 양식장들도 줄줄이 있다. 금붕어를 비롯한 관상어들을 양식하는 곳들이다. 그래선지 비릿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온다.

 

전주 시내를 휘감아 도는 전주천을 따라 나 있는 산책길.

 

 

1시간 가까이 걸었을까. 길은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해 농수로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가운데 들풀들이 우거진 길섶에는 왜가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꿩이 푸드덕거린다. 간간이 살랑거리는 바람이 한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길은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지고 구의-이서간 고속화도로 아래를 통과해 다시 언덕으로 연결된다. 언덕 아래에 마을이 있다. 마을길로 접어들어 다가가니 곳곳이 폐허다. 혁신도시 지구로 지정된 전주시 완산구 중동 일대다. 일명 오공마을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마을은 잠시 끊어지다가 다시 엄말로 이어진다. 이곳 역시 대다수 주민들이 떠나면서 폐허가 됐다. 논밭이었던 경작지들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 참새와 왜가리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볼썽사납게 부서진 집들만 뺀다면 한 폭 수채화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골 들판 풍경이다.

 

만성초등학교 앞을 거쳐서 황방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다. 먹구름이 몰려 들더니 하늘이 갑자기 흐려진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배낭을 풀고 우의를 걸쳤다. 비는 피할 수 있지만 덥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차라리 비를 맞고 말지. 우의를 접고 그냥 걷는다.

 

전주 한옥마을 일부.

 

 

서고사를 거쳐 황방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정상까지 300m에 불과해 웬만하면 쉬지 않고 오르려 했다. 하지만 웬걸, 다섯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피로가 극에 달한 모양이다. 배낭 무게 때문에 자꾸만 뒤로 넘어지려고 한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정상에 이르렀다. 300m 걷는데 15분이 걸렸다.

 

이제는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힘들게 걸어온 길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지나가는 한 등산객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황방산 하산길은 썬플라워웨딩홀이 있는 서곡사거리로 연결된다. 이제부터는 전주 시내다. 월드컵로를 따라 서곡교를 건너 이제 전주천변을 따라 걸으면 된다. 남은 거리는 10km 남짓. 날씨는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 다시 활짝 갰다. 가연교→백제교→서신교→진북교→어은교로 이어지는 천변을 전주천과 전주 시내를 감상한다. 비 내린 직후여서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천과 어우러진 시가지 모습이 상큼하다. 어은교위에서 시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과 200m 거리에 숲정이성지가 있다.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 등 박해 때마다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이들 중 병인박해 순교자 6위가 성인품에 올랐다. 순례 첫날 그 앞을 지나쳤던 완주군 소양면 성지동과 신리골 출신 성인들인 이명서ㆍ조화서ㆍ정원지ㆍ손선지ㆍ정문호ㆍ한재권 성인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터에 세워진 전동성당.

 

 

다시 천변으로 내려가 마지막 길을 재촉한다. 서천교다. 이 다리 아래서는 조화서 성인의 아들 조윤호(요셉) 성인이 순교했다. 그리고 팔달로를 연결하는 싸전다리 바로 못미쳐 오른쪽 곤지산 초록바위 역시 신자들의 순교터다. 싸전다리에서 팔달로를 따라 300m쯤 가면 한국 최초 순교터에 세워진 전동성당이다. 그러고 보니 전주 시내에 들어와서는 온통 천주교 성지들인 것 같다.

 

전동성당에 들어가 제대를 마주하며 잠시 앉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나온다. 성당 건너편은 조선 태조 이성계 영정을 모셨다는 경기전이고 그 옆으로 한옥마을이 시작된다. 한옥마을 한쪽에 있는 원불교 교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20분. 180km의 장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6일 동안 하루 평균 30km를 걸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무엇을 보았나. 길을 보았다. 곧게 뻗은 길, 가파른 비탈길, 완만한 경사길, 뱀처럼 꾸불꾸불한 길…. 그 길은 내 앞에 펼쳐진 길이었고, 내가 걸은 길이었다. 그 길은 내가 살아온 인생의 길이었고, 앞으로 더 가야 할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을 본 것이다.

 

[평화신문, 2009년 10월 18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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