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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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바실리카의 여러 부분들4: 닫집, 후진, 주교좌, 가대, 독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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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6 ㅣ No.80

[전례 상식 / 교회 건축] 바실리카의 여러 부분들 (4)

 

 

닫집(ciborio, ciborium)

 

무덤과 옥좌 위의 덮개와 출애굽기에 나오는 성막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은 고대 백성들에게는 잘 알려진 것이었다. 그리스도교는 교회 묘지와 바실리카가 지닌 거룩함을 표현하기 위해 이 상징을 들여와 제대를 장식했다. 이 닫집은 네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덮은 다음 사면에 휘장을 쳤다. 이 휘장은 축성의 순간에 제대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닫집은 어떤 곳에서는 제대의 네 모서리에 직접 기둥을 세워 만들기도 했다. 기둥에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아치형으로 만든 예도 발견된다. 로마에 있는 여러 성당에서 이런 형태의 닫집들을 볼 수 있는데, 이 형태는 다음 세기로도 이어진다.

 

 

후진(abside, apse)

 

후진은 제단 뒤쪽에 반원형으로 된 성당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구조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건축물에 이용되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스도교는 이 구조를 성당에 채택하면서 그 곡선을 따라 중앙에 주교좌를 배치하고 그 옆으로 사제들이 앉는 자리를 길게 배치했다. 전례 거행 중에 부제들은 서있었다.

 

이 후진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천상교회(Chiesa trionfante)와 지상교회(Chiesa militante)의 연결을 상징한다. 이 후진은 바깥쪽으로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을지라도 안쪽으로는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이다. 그래서 거의 언제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벽화나 모자이크들로 장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스승이신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둘러싸인 그리스도와 같은 장면들이다. 이러한 장면들과 어울려 후진의 좌석 배치는 주님의 대리자인 주교가 그의 사제들에 둘러싸여 옥좌에 앉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바실리카들은 중랑(navata centrale)에 대응하는 단 하나의 후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은 세 개의 후진을 가진 교회들도 나타나는데, 이때는 중앙에 큰 후진을 만들고 양쪽 측랑의 후진은 작게 만들었다.

 

이러한 후진은 채광창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나 채광창을 만드는 경우에는 대부분이 흘수로 해서 한 곳으로 수렴하는 인상을 강조하고자 했다.

 

 

주교좌(cattedra)와 사제들의 좌석(subsellia)

 

주교좌는 그리스도의 옥좌와 주교의 자리를 함께 상징하는 것이기에 주교좌가 있는 성당은 주님의 옥좌가 있는 방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주교좌는 바닥에서 몇 계단 높이고 등받이와 팔걸이를 높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이 주교좌는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 이동이 가능한 것이었으나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다음에는 대리석이나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등받이의 전면에는 십자가나 모노그램 또는 구약성서와 선약성서의 장면들을 새겨넣기도 했다. 주교좌의 위치는 후진의 중앙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동식으로 매우 화려하고 값진 재료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라벤나의 주교 마시미아노(Massimiano 546-553년)의 것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상아로 만든 것이다.

 

주교좌를 중심으로 그 양 옆으로 후진의 벽면을 따라 길게 이어진 좌석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좌석은 사제들이 앉는 자리로서 주교좌와 함께 상징적이고 전례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 좌석들도 나무로 만들거나 벽돌을 쌓아 만들며, 통대리석이나 조적물의 표면을 대리석으로 씌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좌석들도 한 계단이나 두 계단쯤 높여 만든다. 그러나 주교좌보다는 낮게 만든다. 그 유형에 대해서 보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주교좌를 가운데 두고 후진의 곡선을 따라 배치한 원형의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바실리카들의 대부분이 택한 양식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사각의 형태를 띤 것인데, 이 경우에는 보통 주교좌만 따로 후진에 붙여 배치하고 사제들의 자리는 제대의 양 옆에 배치한다. 이런 형태는 팔레스티나와 소아시아 지방 그리고 발칸반도 등의 그리스 양식 바실리카들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은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시리아 북부지방의 성당들에서는 후진이나 제대 옆이 아닌 중랑의 중심을 향하여 제단(sanctuario)의 반대쪽에 이 자리들을 배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대(schola cantorum)

 

제단 바로 앞에 미사를 장엄하게 거행하는 경우를 생각해, 한 계단이나 두 계단쯤 높여 마련한 성가대나 복사들을 위한 자리이다. 이 공간은 모든 성당에 다 있던 것은 아니고 주교좌 성당에만 갖추어져 있던 것 같다.

 

성가대가 생기고 제단 영역에 고정된 자리를 배치하는 것은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더욱 장엄하게 전례를 거행하고자 하는 새로운 상황으로 접어들던 6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전해진 것들 중에 이 가대의 좋은 예는 화재로 5세기에 재건축한 로마의 성 마르코 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경대(강론대 : ambone, ambon)

 

이 용어는 그리스어 ‘올라가다’(anabainein)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높이 만든 강단의 일종이다. 여기에서 백성에게 성서가 봉독되고 이동축일이 발표되며 강론을 통해 가르침과 권고가 행해졌다. 또 성서의 시구들이 노래되기도 했다. 이 독경대는 ‘심판석’(bema, tribunal)이라고 하기도 하고 ‘파수대’(pyrgos)라고도 했다. 이러한 용어들은 강론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파생된 이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독경대 또는 강론대는 여러 형태와 크기, 장식에 차이가 많았다. 매우 단순한 것에서 상징적인 부조를 새긴 대리석판을 씌우고 닫집까지 갖춘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 독경대는 제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분명히 눈에 띄도록 제작되었다. 그 위치를 보면 제단 가까이 주공간(navata maggiore)에, 그리고 오른쪽, 왼쪽을 구분하지 않고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회중석에서 보면 왼쪽에 배치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이와는 달리 시리아 교회들에서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주공간의 중심에 독경대를 배치했다. 시리아에서는 이것이 독경대의 기능뿐만 아니라 말굽의 형태를 띠고 후진의 기능도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신 다락방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 내부에는 원통형의 벽면을 따라 사제들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고 곡선의 깊숙한 끝에는 좀 높게 주교좌를 배치해 놓았다. 이것은 독경대가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여기서는 후진이 초기의 비유적인 의미를 잃어 버리면서 천상교회를 상징하는 제대를 포함하고 기둥의 반대편에서 지상교회를 상징하는 강론대를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시리아 교회 안에서 독경대 또는 강론대는 없어도 되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강론대는 자연히 중랑의 전공간을 차지하게 되어 대부분의 신자들이 후진 안에서 행해지는 전례를 따르는 데에 방해를 주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독경대 안에 제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시리아 서북쪽의 라사파(Rasapha)의 성 세르지오(Sergio) 성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회중석이 어디였는지를 확실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신자들을 위한 공간이라고는 옆과 뒤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그곳이 성직자에게만 유보된 공간이었는지 그리고 말씀의 전례만을 거기에서 거행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상징과 신학의 변화가 전례적인 요소들의 구조와 형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깊은 이해와 더 좋은 변화인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미적이고 실리적인 측면만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우리 성당건축의 현실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례 거행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의 실현을 건축학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례 거행에 참여하는 회중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체험하게 해야 한다.

 

[경향잡지, 1995년 6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본지 주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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