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에(무주의 맹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03 ㅣ No.882

[레지오와 마음읽기]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에(무주의 맹시)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나게 되는 옥에 티들은 어설프지만 색다른 재미도 준다. 사극인데 전봇대나 에어컨 실외기가 보이는가 하면, 현대물에서는 주인공이 누웠던 쿠션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유명한 영화라고 다르지 않다. ‘글래디에이터’의 로마 전차 뒤에 달린 가스통이나 ‘캐리비안의 해적’의 해적 모자에 달린 아디다스 상표라든지, 심지어 ‘조스’에서는 영화를 찍는 또 다른 카메라맨의 모습이 들어있기도 하다. 영화나 드라마가 상영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또 보았을지를 생각하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게 더 신기할 정도이다. 게다가 이런 옥에 티들은 지금도 발견되고 있지 않은가!

 

1999년 미국의 인지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는 독창적인 실험을 했다. 일명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다. 그들은 학생 6명을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검은색 셔츠를, 다른 팀은 흰색 셔츠를 입힌 뒤 서로 뒤섞여 농구공을 패스하게 했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찍어 이 영상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주면서 검은색 팀은 무시하고 흰색 팀의 패스 횟수만 말없이 세도록 했다. 1분 정도의 영상에서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흰색 패스 횟수를 맞추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이다.

 

동영상 중간에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걸어 나와 가슴을 치고 퇴장하는 장면이 무려 9초에 걸쳐 담겨있는데, 실험 참가자 중 절반은 이 고릴라를 보았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고릴라의 등장을 알려주고 영상을 다시 한번 보여주자, 다른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보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한다. 이는 시각이 손상되어 물체를 보지 못하는 것과 달리, 보았지만 뇌가 의식하지 않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후 이 실험은 인간의 주의력과 인지능력에 대한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고 심리학에서 꽤 유명한 실험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그것은 뇌의 정보 처리 방식에 있다. 뇌도 능력에 한계가 있어 감각기관이 전달하는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다루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 뇌는 주요한 대상을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하여 정보를 해석한다. 즉 뇌가 집중해야 할 정보 외에는 의도적으로 취급하지 않아 그 대상 외의 주변을 인식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사람의 환경 적응 방식이기에 ‘누구나’ 그러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중 휴대폰에 집중하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거나, 걸으면서 통화하다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히는 등,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다는 게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이런 뇌의 착각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도 그럴 수 있음을 알고, 이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실수와 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무주의 맹시’라고 해

 

20년 단원 생활을 한 J자매는 최근 탈단의 위기가 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사 온 쉬는 교우를 소개받아 새 단원과 방문하여 돌보게 되었다. 쉬는 교우는 어쩌다 주일미사를 못 한 게 냉담의 시작이었다고 하여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성사를 권면하였다. 그런데 석 달쯤 후 활동대상자가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려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그녀는 재혼하여 이사를 온 터라 조당이 문제였다. 이를 두고 쁘레시디움 단장은 “기본적인 것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새 단원에게 모범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고 이에 J자매는 마치 비난받은 것 같아 그만두고 싶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냉담 이유에만 집중하여 그녀의 조당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저에 대한 실망도 컸지요. 그런데 저를 무시하는 듯한 단장의 말은 그런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단장으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은데 그 당시는 서운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만큼 마음으로 느끼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으니, 볼 수 있는 능력은 믿음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뇌의 인식과 기억들은 매우 불안정하여 내가 본 것이 전부이며 정확하다고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같은 현실을 누구도 완전하게 보지 못하고 각각 다른 시각에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 협력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단원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기억으로 다툼이 생긴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알지 못하는 거만한 자일 수 있다. 활동보고를 할 때 대상자에 대한 보고를 상세하게 하는가? 그래야만 대상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제대로 도와줄 수 있다.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가? 그런 분위기야말로 서로 다른 지체들이 각각의 달란트로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불신은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교본 478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7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7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