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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아름다운 순례길을 가다4: 길을 묻다 - 미륵사지를 거쳐 초남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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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10-07 ㅣ No.721

'아름다운 순례길'을 가다 (4) 길을 묻다 - 미륵사지를 거쳐 초남이로


숲, 바람, 강이 반겨주는 그 길을 걷고 싶다

 

 

미륵산 등산로.

 

 

1. 발바닥 물집, 발뒤꿈치 상처, 쓰린 샅은 간밤에 바른 약효 때문인지 한결 낫다. 아침 9시 40분, 나바위를 출발해 부평 들판을 거쳐 금강 지류로 향한다. 파란 들녘,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농로…. 한여름 아침나절의 들판은 한가롭다 못해 적막감마저 풍긴다. 1시간 30분을 걸어 금강지류에 도착했다. 부곡천이다.

 

여기서 둑길을 따라 상류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미륵사지 근처까지 갈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걷기만 하면 된다. 둑 길가에는 무성한 잡초들이 나그네를 호위한다. 무성한 풀숲에 있던 꿩들이 바로 앞에서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른다. 뜨거운 햇살만 아니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도 좋은 길이다.

 

한 시간을 걸었다. 배가 고프다. 계속해서 둑길을 걸어야 하기에 마실 물을 구하고 식사를 해결하는 데에 신경을 좀 써야 한다. 용기교에서 마을로 내려가 고창마을 입구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천변으로 올라와 길을 재촉한다. 하천은 상류로 오를수록 좁아지고 하천 바닥은 갈대숲이 온통 차지해 버렸다. 둑길에 한가로이 앉아 있던 왜가리들이 발자국 소리에 흰 날개를 퍼덕이며 솟아오른다.

 

미륵사지.

 

 

한 시간 남짓 더 걸었을까. 상단교다. 다리 옆 정자에서 쉬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미륵사지 가는 길을 물었다. 2시간이면 갈 수 있다면서 날씨도 더운데 쉬었다 가라고 붙잡는다. 땀으로 목욕한 몰골로 미지근한 물을 거푸 들이키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던지 물을 얼린 큰 페트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주면서 가지고 가란다. 뜻밖의 선물이다.

 

다시 한 시간을 더 걸어 미륵산 자락에 거의 다왔다. 하천은 개울로 변했고, 마을이 있다. 연동리 마을이다. '미륵산자연학교'라는 팻말이 있어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친절한 설명과 함께 등산 안내도까지 준다. 덤으로 막걸리도 두어 잔 주면서.

 

숲길에 들어섰다. 온종일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농로와 둑길을 걷다가 산속 숲길로 들어오니 살 맛이 난다. 숲의 고마움을 새삼스레 느낀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가는 등산객들 모습도 더욱 정겹게 보인다. 사람 참 간사하다. 저녁 5시 35분. 마침내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미륵사지에 2km 남짓 떨어진 금마 시내의 한 모텔에 여장을 푼다.

 

 

2. 아침 8시 50분, 모텔을 나선다. 금마성당에 잠시 들렀다가 미륵사지 앞까지 오니 9시 40분이다. 미륵초등학교-석교교-중왕마을-삼정원-연동-구기교-덕기교…. 오늘 가야 할 길이다. 어떻게 가야 하나.

 

만경강으로 이어지는 익산천 둑길.

 

 

모르는 길은 계속 묻고 아는 길도 물어서 확인하라. 지난 4일 동안 체험으로 얻은 교훈이다. 한여름 낮의 시골길에는 사람이 없다. 마을에 들어가도 정자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서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중왕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만난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묻기는 잘 했는데 자세히 묻지 않은 것이 탈이다. 산길, 마을길, 논길, 차가 다니는 큰 길을 두 시간 이상 헤매다 겨우 덕기교로 이어지는 길을 찾았다. 덕기교에서는 하천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만경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익산천이다.

 

길을 찾느라고 헤맬 때는 몰랐는데 막상 제 길을 찾고 나니까 덥고 피곤하다. 아무 생각 없이 천변을 따라 걷는다. 이렇게 덥고 힘들 때는 뭔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것을 깨닫는다. 둑길은 갈대밭으로 변한다. 붉게 물든 저녁 노을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강변 갈대밭 풍경이 아니다. 그냥 녹음 짙푸른 갈대숲이 한낮 뙤약볕 아래 길게 열을 지어 있을 뿐이다.

 

나바위성지의 김대건 신부 순교비.

 

 

둑길을 따라 3시간은 걸었을까. 익산천이 만경강과 합쳐진다. 강둑 사이 폭은 넓지만 물이 흐르는 폭은 갈수록 좁아지고 논밭으로 가득차 있다. 30분 정도 걸으니 강둑 아래에 만경강선교가 보인다. 다리를 내려다보며 둑길을 계속 걷는다. 5시가 넘으면서 더위도 한층 가신다. 강바람이 산들거리니 한결 걸을 만하다. 눈에 보이지 않던 주변 풍경들이 들어온다. 들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강둑을 따라 걸어도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질 않는다. 오히려 강폭만 더 넓어질 뿐이다. 멈춰섰다. 안내책을 다시 펴고 지도를 유심히 살폈다. 아뿔싸! 만경강선교를 건넜어야 했는데 그냥 지나친 것이다. 한 시간을 더 걸어온 셈이다. 되돌아 걸어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둑길을 다니는 차를 세워 만경강선교까지 얻어 탔다.

 

강을 건너 안내책자로 확인해 가면서 부지런히 걷는다. 멀리 산 아래 마을에는 벌써 불이 켜졌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을 물어볼 수도 없다. 걸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하고 있는데 마침 한 할머니가 보인다. 이럴 때는 할머니가 샛별이다. 초남이성지에 도착하니 저녁 7시 55분이다.

 

▲ 나바위성지 : 한국 최초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제주도를 거쳐 1845년 10월 12일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디딘 곳. 김대건 신부 순교비와 망금정 정자, 문화재 나바위성당(사적 제318호)이 있으며, 피정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 미륵사지 :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절터(사적 제150호). 백제 무왕 601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사찰 규모로는 한국 최대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과 당간지주(보물36호) 등이 있다.

 

▲ 초남이성지 : 신유박해 순교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생가터와 교리당 등으로 이뤄진 성지.

 

[평화신문, 2009년 10월 4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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