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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걸어서 하늘까지4: 치명자산에서 숲정이성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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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9-28 ㅣ No.720

[순교자성월 특집] '걸어서 하늘까지' (4) 치명자산에서 숲정이성지까지(전주교구 도보순례)


과거와 현재 어우러진 길 순교자와 내가 공존한다

 

 

전주교구 청년들이 한옥마을을 지나 전동성당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 교회 첫 순교자들인 윤지충과 권상연 등 7위는 1791년 신해박해 때 풍남문에서 순교했다. 풍남문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순교 1번지’로 불린다.

 

 

천년고도(千年古都) 전주에는 전통이 살아 숨 쉰다. 1000여 년 전 후백제의 도읍이었고,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본향인 이곳에는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어디 그뿐인가. 윤지충, 권상연, 유항검 등 많은 순교자를 냈고, 천호성지와 숲정이 등 수많은 성지가 자리한 전주는 신앙인들에게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로 꼽힌다.

 

전주에 오면 타 지역에서는 접하기 힘든 독특한 성지순례코스가 마련돼 있다. 전주천변을 따라 시내를 관통하는 순례길이다. 치명자산에서 출발해 전동성당, 풍남문, 초록바위, 서천교, 숲정이성지로 이어진다. 뚝방길과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걷다 보면 그 맛에 완전히 빠져든다. 9월 19일. 순교자성월을 보내며 전주교구 청년 50여 명이 성지순례에 나섰다. 그 길에 동행했다.

 

 

치명자산

 

치명자산 성지 초입의 몽마르뜨 광장에 섰다. 순례의 시작점이다. 광장 한쪽으로 난 산길에 접어들자 곧바로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오른다는 바로 그 길이다. 마지막 14처까지 지나야 산 중턱의 ‘치명자산성당’에 도달할 수 있다. 경사가 만만찮다. 숨이 거칠어지며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진다. 바삭거리는 낙엽 소리가 고요 속에서 순교자들의 노래를 들려주는 듯하다.

 

성지순례 코스의 출발지인 치명자산. 이곳에는 1801년 순교한 유항검과 그의 아들 유중철·이순이 동정부부 순교자 등 7위의 무덤이 있다.

 

 

한 걸음씩 오르기를 30여 분. 마침내 성당 입구가 보인다. 산 정상에는 1801년 순교한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아들 유중철(요한)·이순이(루갈다) 동정부부 순교자 등 순교자 7위의 무덤이 있다. 이들은 치명한 후 전북 김제군 재남리(현 용지면 남정리)에 가매장됐다가 전동본당 초대 신부인 보두네 신부와 신자들에 의해 1914년 4월 19일 이곳으로 이장됐다. 치명자산에서 내려올 때는 반대쪽 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십자가의 길 보다는 완만한 편이다. 이 길은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와 연결된다.

 

 

전동성당과 풍남문

 

다시 몽마르뜨 광장에 섰다. 치명자산에서 전동성당까지 가는 길은 수없이 많다. 그 중 전주천의 ‘한벽루’와 연결되는 구간을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는다. 한벽루를 향해 걷는 천변에는 물억새와 갯버들, 야생화가 만개해 있다.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전주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한옥마을’과 만난다. 전주를 전통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만든 주인공이다.

 

한옥마을과 연결된 골목길이 끝나갈 무렵 전동성당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들인 윤지충과 권상연 등 7위가 1791년 신해박해 당시 순교한 풍남문(보물 제308호)이 있던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전동성당을 ‘한국 천주교회 순교 1번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도 꼽힌다. 전동성당을 나와 큰길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풍남문이다.

 

 

초록바위와 서천교

 

흙냄새와 풀내음이 온몸을 감싸는 전주천변길. 그 중 치명자산에서 ‘한벽루’와 연결되는 구간은 물억새와 갯버들, 야생화가 만개해 아름답다. 한옥마을을 관통해 볼거리도 많다.

 

 

풍남문 로터리를 돌아 골목길에 접어들면 다시 전주천변으로 이어진다. 뚝방길을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면 대로변에서 초록바위 표석을 만난다. 도로건설에 밀려 길가 한쪽에 외롭게 서 있는 표석이 순례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초록바위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남종삼 성인의 14세 된 아들 남명희와 순교자 홍봉주(토마스)의 두 아들이 수장된 곳이다. 남씨 가문과 홍씨 가문은 온 가족이 처형되거나 노비로 전락했으나, 두 아들은 나이가 어려 당시 관례대로 전주 감옥에 수감됐다가 훗날 이곳에서 전주천에 수장됐다. 초록바위 표석을 지나 만나는 다리가 서천교(西川橋)다. 서천교 사거리는 본래 약령시장이 섰던 곳으로 예부터 전주시 교통의 요지이자 번화가였다. 이곳에서는 1866년 12월 23일 성 조윤호가 순교했다. 조선 시대에는 형벌에서도 삼강오륜이 지켜져 부자(父子)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칼로 처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 조윤호는 아버지인 성 조화서(베드로)보다 한 장날 늦게 서천교 밑에서 장살됐다. 포졸들은 성 조윤호의 시신을 걸인들로 하여금 새끼줄로 목을 감아 끌고 다니게 했다고 전해진다. 서천교 다리 위에 가만히 발을 내디뎠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기쁘게 내놓은 두 성인의 행적이 끊임없이 오버랩 됐다. 그날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질없는 차들만 쌩쌩 달릴 뿐이다.

 

 

숲정이성지와 칼탑

 

다시 전주천변이다. 흙냄새와 풀내음이 온몸을 감싼다. 서천교에서 마지막 순례지인 숲정이성지까지는 제법 걸어야 한다. 마지막 난코스다. 한참을 걸었을까. 다시 뚝방길로 올라 길을 건너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저 멀리 순례의 종착지, 숲정이성지가 보인다. 이곳은 옛날에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있어 ‘숲 머리’라고 불리기도 했단다. 군 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있던 장소로, 조선시대 천주교도들의 사형장이었다. 1801년 유항검의 처 신희와 제수 이육희, 자부 이순이, 조카 유중성 등 유항검의 가족이 숲정이에서 처음 참수됐다. 그 이후에도 숲정이에서는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순교자들의 피가 마르질 않았다.

 

숲정이성지에서 골목길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150m 정도 걷다 보면 숲정이성지 유치원이 보인다. 순교자현양탑, 일명 ‘칼탑’은 유치원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세워져 있다. 숲정이성지에 들어섰다. 순교기념비(지방 기념물 제71호) 앞에 섰다. 푸른 잔디 위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순교 성인들의 삶과 신앙을 묵상한다. 하느님 품에 안긴 성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순교자성월 특집] 치명자산~숲정이성지 도보순례 코스

 

 

치명자산~숲정이성지 도보순례 코스 

 

 

전주 치명자산에서 숲정이성지까지의 도보순례 코스는 비교적 짧은 거리(약 4km)여서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치명자산을 오르내리는 데 1시간, 치명자산에서 숲정이성지까지도 1시간 거리다. 대부분의 순례길이 차량통행 없는 전주천변이기에 어린이와 노약자들도 안심하고 순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도 갈 수 있을 만큼 평탄한 길이다. 한옥마을을 관통하기 때문에 볼거리도 풍부하다. 시내 도보순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면 전주교구 ‘순례자의 길’(Pilgrimage trail)에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이 순례길은 전주교구의 대표적 성지인 천호성지를 출발해 나바위-미륵사지-초남이성지-전주 한옥마을-완주 송광사를 거쳐 다시 천호성지까지 연결되는 6박7일 일정의 180km 구간이다.

 

[가톨릭신문, 2009년 9월 27일,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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