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토)
(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성무일도ㅣ독서기도

연중 제7주간 화요일: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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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19 ㅣ No.379

연중 제7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전도서에 대한 강론’에서

(Hom. 6: PG 44,702-703)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성서는 말합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이 성서의 저자는 태어남과 죽음을 연결시킴으로써 이 두 가지 필연적 사실들의 연관성을 서두에서 잘 맺어 주었습니다. 죽음은 필연적으로 출생을 뒤따르고 출생은 그 어떤 출생이라도 죽음으로 말미암아 분해되고 맙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나 자신도 때에 맞게 태어나고 적절한 때 죽음을 맞게 해주시기를! 전도서가 말해 주는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출생과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그 자체로 공로가 되는 행위임을 보여 준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출생이 한 여자의 의지적 행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음도 죽는 자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누구도 자기 자신의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는 것에 대해 덕행 또는 악행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때에 맞는 출생이고 무엇이 적절한 때의 죽음인지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내 생각으로는 때에 맞는 출생이란 유산 또는 조산이 아니라 만기가 차 출생하는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즉,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잉태하는 사람은 영혼의 산고로 구원의 열매를 낳습니다.” 우리가 선한 지향과 자유 의지의 선한 사용으로써 우리 자신을 잉태하고 또 키우며 마침내 그것을 낳을 때 어느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모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 안에 모시어 하느님의 자녀, 그분의 풍요의 자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때 그 결과로써 되는 것입니다. 한편,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자신을 유산시켜 버리고, 불완전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미숙한 자로 만들고 맙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람은 온전하고도 완전해야 합니다.

 

때에 맞게 태어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적절한 때에 죽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어느 때이건 복된 죽음을 맞기에 적절한 때입니다. 그는 맹세로써 확인하듯 서간에서 이 점을 말해 줍니다. “나는 여러분의 영광을 위해 날마다 죽고 있습니다.” 또 다른 데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 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어떻게 날마다 죽고 있는지 이해하기는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죄 가운데 살지 않고, 자기 육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몸의 고난을 지니고 다니고, 그리스도와 함께 언제나 십자가에 못박히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참된 생명과 잘 이어진 적절한 때의 죽음이라고 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다.” 이 말씀은 죄에서 죽고 영으로 사는 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입증해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죽음을 주는 반면 생명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응송  신명 32,39b; 묵시 1,18c

 

◎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며, 찌르는 것도 나요 고쳐 주는 것도 나로다. * 내 손에 잡은 것을 빼낼 자 없도다.

○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내 손에 쥐고 있고,

◎ 내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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