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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11: 김흥수의 수녀좌상, 간구(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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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11 ㅣ No.614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11) 김흥수의 '수녀좌상', '간구'(1954)


표현 방식 달라도 간절한 기도 담아낸 두 작품

 


‘수녀좌상’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김해겸 쌘뽈 수녀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금관문화훈장 받은 한국 미술계 거장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는 지난 글에서 소개한 안혜택 수녀의 ‘매괴의 성모’와 함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와 관련이 있는 작품이 또 한 점 출품되었다. 바로 서양화가 김흥수(金興洙, 1919~2014) 화백의 ‘수녀좌상’(修女坐像)이다.

 

김흥수는 ‘수녀좌상’ 외에도 ‘간구’(懇求)를 더해 서양화 2점을 출품했다. 그중에서 ‘수녀좌상’은 앞서 소개한 박득순의 ‘노 주교상’과 함께 실제 성직자와 수도자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작품 속 인물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으로 한국 천주교에서 첫 수도생활을 했던 김해겸 쌘뽈 수녀이다.

 

김흥수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함흥고등보통학교를 나와 1944년 일본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해방 후 1952년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장,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를 역임했고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그랑쇼미에르미술연구소에서 수학했다. 그는 유학 첫해인 1955년 살롱도톤느 전시회에 출품해 회원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귀국 후에는 1961년 제10회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국전 초대작가로 활약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 화백은 미국 필라델피아 무어대학과 펜실베이니아 미술대학에서 초빙교수를 역임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1977년 여성의 누드와 기하학적 도형으로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대비시켜 표현하면서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시켜 음양의 조화를 추구했던 ‘조형주의’ (Harmonism) 미술을 선언해 현대미술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번 호에 소개할 김흥수의 ‘수녀좌상’과 ‘간구’는 1954년 그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로 재직 중이던 때에 완성한 작품이다. ‘간구’가 입체주의 회화의 영향을 보이며 비구상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에 비해 ‘수녀좌상’은 보다 사실적이고 표현적인 인물 묘사를 보여준다.

 

 

실존 수도자 모델로 한 ‘수녀좌상’

 

작품 속 인물은 글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김해겸 쌘뽈 수녀를 모델로 하고 있다. 비록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검정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수도복과 그 뒤로 펼쳐진 배경은 동시대 김흥수 화백의 작품에 나타나는 강렬한 색감을 통해 대략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다소 거친 마티에르가 강조된 화면의 질감을 흑백사진에서도 잘 느낄 수 있어 실제 작품에서 전해지는 감흥이 어떠했을지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화면 중앙에 표현된 강한 흑백의 대비, 그리고 그 뒤로 펼쳐졌을 강렬한 김흥수의 색감을 상상해보면,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규모였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등신대에 가까운 크기였다면 참으로 강렬한 인상을 전하는 작품이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어딘가에서 원작이 발견된다면 지금 머릿속으로 그려본 것과 같은 이미지일지 아니면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모습일지 궁금증이 더해만 간다.

 

상상하건대 ‘수녀좌상’의 강렬한 색감의 배경 표현과는 대조적으로 흑백의 수녀복을 입고 앉아 있는 작품 속 인물은 고요한 모습이다. 뚜렷한 초점이 없이 아래로 향한 고요한 시선과 수도복 옆에 차고 있는 묵주를 감싸쥔 큼직한 두 손, 그리고 그 앞으로 보이는 십자가는 우리를 작품 속 인물의 기도에 동참하도록 이끌고 있는 듯하다.

 

‘간구’는 입체파를 연상시키는 구성에 테포르메(déformé)된 인체 표현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입체파 연상시키는 구성의 ‘간구’

 

함께 출품된 ‘간구’는 ‘수녀좌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작품으로 입체파를 연상시키는 구성에 데포르메(déformé-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실 묘사에서 이것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왜곡하여 변형시키는 미술기법)된 인체 표현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후광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배경 속에 그려진 인물의 얼굴은 하늘을 향하고 있고, 역시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은 팔과 꼭 모아 쥔 기도하는 손은 몸체와 분리된 채 수직성을 강조하며 표현되었다. 여기에 더해 배경의 십자가와 어깨에서 코끝으로 이어져 올라가는 굵은 선도 상승의 느낌을 고조시키고 있다.

 

속눈썹이 강조된 눈과 긴 머리카락의 표현에서 여성임을 알 수 있는 작품 속 인물은 눈을 감고 하늘을 정면으로 향한 채 작품 제목과 같이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김흥수의 출품작 ‘간구’ 역시 그의 동시대의 작품을 참고해 보았을 때 강렬한 색감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5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이듬해 1955년 1월에 발행된 「가톨릭청년」 신년호 화보에 재해석되어 실리기도 했다. 최근 「가톨릭청년」에 실린 미술 관련 기사와 화보를 다시 한 번 검토해보는 과정에서 발견된 이 작품의 이미지는 1954년 작과 거의 유사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으나 화면 속 인물이 반소매의 셔츠를 입은 젊은이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화면 전체에 물감을 흘리듯 의도적으로 붓자국을 내어 표현하고 있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김흥수의 ‘수녀좌상’과 ‘간구’는 그 표현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기도 순간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작품 모두에서 유독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은 손이다. 묵주를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감싸 안은 진솔한 손, 하늘을 향해 깍지를 끼고 꼭 모아 쥔 간절한 손은 우리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 두 손은 인물의 표정보다 더 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제2의 얼굴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일까? 흑백사진이라는 한계 속에서 작품을 읽어나가는 일이 어려우리라 여겼는데 이러한 제약이 오히려 작품의 또 다른 측면을 바라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40살이 넘는 나이 차이를 극복한 제자와의 결혼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김흥수 화백이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했던 두 작품 ‘수녀좌상’과 ‘간구’는 아쉽게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그의 열정적인 화풍을 원작으로 확인할 기회가 머지않아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3월 10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제보를 기다립니다

 

※ 가톨릭평화신문과 정수경 교수는 숨은 성미술 보물찾기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의 소재나 관련 정보를 알고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찾아 나서는 진정한 성미술 보물찾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제보 문의 : 02-2270-2433 가톨릭평화신문 신문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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