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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사향가의 나그넷길과 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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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2-26 ㅣ No.1010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사향가’의 나그넷길과 본향

 

 

‘사향가’의 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최양업 신부가 창작자라 추정하기도 하지만, 단정할 근거는 없다. 이 노래는 다수의 이본이 전해 오고 있어 많은 신자가 오랫동안 애송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많이 알려진 「금베두루본」 소재의 ‘사향가’는 4음보 416행으로 이루어졌다. 초반은 경고와 질책, 신자의 도리를 읊는다. 중반은 이교와 미신 비판, 적대자의 비난, 적대자에 대한 반박으로 이어진다. 종반은 전반부에 상응하는 세인의 도리와 질책, 경고를 역으로 반복한다. 이어 입교를 권유함으로써 대미를 장식한다. 이러한 중첩 구조로 이루어진 수미 쌍관적 구성 방식은 작가의 의도와 시적 의미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벗님네의 대상과 의미

 

이 노래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벗님네’는 좁은 의미로 보면 우리 교회가 최초로 채택한 한문 번역본 교리서인 「성교요리문답」에서 지칭하는 ‘봉교(奉敎)인’이나 ‘교중(敎中)인’이다. 천주교에 입교하려는 예비신자나 이미 입교한 신자에 국한한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벗님네’는 비신자와 적대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곧 특정할 수 없는 신심 깊은 교회 지도자가 지은 이 작품은 교회 안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리 교육에 사용하였고, 아울러 교회 밖으로는 외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교와 적대자들을 향한 호교의 역할을 하였다.

 

작자는 이 노래의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교리서의 외연을 넓혔다. 천주가사를 통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더욱 쉽게 ‘조선 시대’의 ‘이 땅’에 실현하려던 것이다.

 

어화 벗님네야 우리낙토(樂土)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곳이 낙토런고

지당(地堂)으로 가자하니 아담원조 내쳐있고

복지(福地)로 가자하니 모세성인 못들었고

이러한 풍진세계 평안한곳 아니로다

부귀영화 얻었던들 몇해까지 즐겨하며

빈궁재화(貧窮災禍) 걸렸던들 몇해까지 근심할고

인간영락 다얻어도 죽어지면 헛것이라

세상고난 다받아도 죽어지면 없으리라

우주간에 비켜서서 조화묘리 살펴보니

체읍지곡(涕泣之谷) 이아니며 찬류지소(竄流之所) 그아닌가

아마도 우리낙토 천당밖에 다시없네

 

 

사향가에 담긴 사말 교리와 칠극

 

‘사향가’(思鄕歌)는 고향을 그리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첫 대목에서 지금 사는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풍진세계로 눈물의 골짜기 ‘체읍지곡’이자 귀양살이하는 곳 ‘찬류지소’라 읊는다. 현세는 한마디로 나그넷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현세의 즐거움보다 죽은 뒤의 심판과 그 결과로서의 천당과 지옥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일깨운다.

 

이러한 면은 정약종이 지은 「주교요지」 하편에서 비롯된다. 곧 “잠깐 세상에서 목숨을 구하려 하여도 온갖 어려운 일을 헤아리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억만 세에 목숨 구하기를 위하여서는 어찌 어렵다 하여 힘쓰지 아니하리오. 번개 같은 세상에서 즐거움을 취하다가 무궁한 즐거움을 잃고, 잠깐 어려움을 피하다가 무궁한 괴로움 받고자 하니 심히 미련한 일이 아니냐.”는 구절을 시로 형상화했다. 번개처럼 지나가는 잠세(暫世)에 사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구하려는 일을 회피하고 현세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개탄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날 묵주 기도를 마친 뒤에 드리는 ‘성모 찬송’에서도 보인다.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 뵙게 하소서.”가 그러하다.

 

아울러 오늘날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편찬한 교리서인 「죽음 · 심판 · 지옥 · 천국 - 가톨릭교회의 사말 교리」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곧 그리스도교 신자는 완성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나그네’이며, 현재의 삶은 ‘지상의 나그넷길’이라 명시하였다.

 

그러나 나그넷길을 다 걸은 길손이 맨손으로 본향을 찾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사향가’ 56-97행에서는 세상살이하면서 시시때때로 엄습해 오는 여러 형태의 도적들을 막아 내는 방법에 대하여 자세히 노래하고 있다.

 

어화 벗님네야 우리고향 가사이다

가기야 가려니와 그저가기 어렵도다

길고험한 저해중(海中)에 홀몸으로 가잔말가

멀고먼 천당길을 빈손으로 가잔말가

저도적곧 물리치면 고향가기 쉬우리라

힘을쓰고 꾀를내어 한사(限死)로써 싸워보자

 

이 대목은 예수회 신부 판토하가 지은 「칠극」에서 언급한 칠죄종을 극복하는 방법을 그대로 읊고 있다. 곧 교만을 누르는 복오(伏傲)는 겸손으로, 질투를 가라앉히는 평투(平妬)는 용서로, 탐욕을 푸는 해탐(解貪)은 베풂으로, 분노를 없애는 식분(熄忿)은 참음으로, 탐내어 먹고 마시는 것을 막는 색도(塞饕)는 절도로, 음란함을 막는 방음(防淫)은 정결로, 게으름을 채찍질하는 책태(策怠)는 부지런함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유혹에 용감히 맞서 싸워야 비로소 천당 문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세밀하게 노래한다. 단순한 수고를 감내해서 될 일이 아니라, 악에 맞서 갖가지 덕목으로 무장하고 용맹스럽게 대결해야 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강조한다. 그래도 힘에 부치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신자가 가야 할 길, 신자답게 살아가는 방도를 자세히 언급하는 것이다. 참으로 이 노래의 중심부로 교리 교육의 핵심이 되는 대목이다.

 

336-340행에서는 앞서 가르침에 이어 천주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질책과 경고를 한다.

 

잠깐세상 위하다가 무궁영세(無窮永世) 어찌하며

잠깐체면 위하다가 엄한심판 어찌하며

잠깐일락 탐하다가 무궁앙화(無窮殃禍) 어찌하며

미친마귀 섬기다가 흉한화형 어찌하며

참도리를 듣잖다가 무궁회한 어찌하랴

 

천주가 내려 준 직분을 알고 봉명(奉命)한 사람은 죽은 뒤에 천당의 영원한 즐거움을 얻지만, 잠깐 살다 가는 세상의 헛된 것만 추구한 사람은 죽은 뒤에 지옥의 영원한 괴로움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노래는 말미에서 육신·세속·마귀라는 삼구(三仇)와 일곱 도적인 칠죄종을 물리치고 ‘천당길을 바로찾아 대부모(大父母)를 보사이다’(416행)라고 권유한다.

 

결국 ‘사향가’는 사말 교리에 중점을 둠으로써 본향인 내세를 그리며 ‘나그넷길인 현세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읊은 노래이다. 따라서 박해 시대에 창작된 이 천주가사는 자연스럽게 순교 영성과 긴밀한 연관을 지니게 되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누구나 현세의 모진 박해를 감내하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이 노래가 새로운 까닭이다.

 

*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이며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홍보위원장으로 계간지 「평신도」 편집장을 맡고 있다. 중국 선교 답사기 「둥베이는 말한다」, 장편 소설 「세 신학생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천주가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9년 2월호, 김문태 힐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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