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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사랑의 기쁨과 가정 성화: 혼인 유대 사목의 관점으로 본 사랑의 기쁨 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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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23 ㅣ No.1136

[경향 돋보기 - 「사랑의 기쁨」과 가정 성화] 혼인 유대 사목의 관점으로 본 「사랑의 기쁨」 제8장

 

 

저자의 의도와 가르침에 대한 해석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의 장 마리 게누아 기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305항의 각주(351)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물었다(2016년 4월 16일). “왜 그렇게 중요한 사항을 각주로 처리하셨습니까?” 이에 대해 교황은 “그 각주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각주는 이혼한 뒤 재혼한 이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는 결단을 교황이 내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저자인 교황 자신이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이 사항을 두고, 요즘도 한쪽에서는 교황을 ‘혁명가’ 또는 ‘이단아’로 규정하면서 신학과 사목을 정치화하고 있는 행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랑의 기쁨」은 가정을 ‘문제’가 아니라 ‘기회’(7항)로 본 프란치스코 교황이 촉구하는 ‘사목 쇄신’이다. 이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랑의 기쁨’은 “더디지만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확고한 신념으로서, 극심한 비탄 속에서도 서서히 되살아나도록 해야 하는”(「복음의 기쁨」, 6항) ‘신앙의 기쁨’과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기쁨을 먼저 받아들여 열성으로 빛나는 삶을 살려는 복음의 봉사자”(「복음의 기쁨」, 10항), 곧 복음화의 주체로 가정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사목의 전환이 절실해진다.

 

교황의 이 같은 사목 전망은 「사랑의 기쁨」의 전체적 맥락뿐 아니라, 2014년과 2015년에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경과 전반, 가톨릭교회 전통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더욱 뚜렷해진다. 그러므로 나약하고 불완전한 가정에 대한 ‘동반·식별·통합’을 다루는 「사랑의 기쁨」의 제8장 또한 교황의 이러한 복음화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혼인 유대 사목

 

모든 사람은 출생 때부터 혼인을 준비한다. 이는 혼인이 긴 시간을 요구하는 일종의 ‘여정’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혼인 자체가 이 여정의 목적지는 아니다. 혼인은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하나의 방식, 곧 성소이다(「사랑의 기쁨」, 211항 참조). 혼인이 하느님의 위대한 계획에 참여하는 길이요 완덕과 성화를 실현해 가는 방편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혼인과 가정을 ‘위한’, 그리고 혼인과 가정에 ‘의한’ 감정과 본능 교육(148항), 사랑 교육(211항)을 통해 ‘점진적으로’ 덕을 길러 감으로써 인간의 내적 변화를 도모하는 사목이 요청된다.

 

이에 교황은 서로를 더욱 깊이 사랑하고 문제점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혼인 유대 사목’을 특별히 제시한다(211항). 이와 같은 맥락에서, 덕행의 삶을 통한 자유의 형성과 강화(267항), 자기 증여적 사랑을 성장시키는 정숙과 정결의 덕을 강조한다(206, 282항). 혼인 생활에 실패한 이들에 대한 사목보다 혼인을 강화하여 그 파경을 막는 사목적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307항) 역설하는 이유도 이런 전망 안에 있다.

 

이 사목은 혼인한 이들을 ‘한 몸’으로 보고 그들의 ‘유대’를 보존하며 성장시키는 데에 집중한다. 위기와 도전을 통하여 그 유대라는 포도주가 더욱 맛있게 숙성(성숙)된다고 본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을 기반으로 삼는 유대를 낳는 혼인 합의의 말이 현재에 국한되지 않고 앞날을 포함한 전체성, 곧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를 의미한다는(214항)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 화해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인식으로 혼인 관계가 깨진 이들에게 다가간다(116-117, 238항).

 

혼인 유대는 혼인성사 때에 부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꾸준히 성장되고 굳건해진다(134항). 혼인의 불가 해소성은 가톨릭 신자가 특별히 부담해야 하는 ‘멍에’ 같은 법이 결코 아니다. 성사를 통해 받게 되는 실제적 ‘은총’이다(62항). 길을 보여 주시는 하느님께서 은총의 힘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예외 없이 모든 이에게 주시는 선물이다(295항).

 

성소로서의 혼인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항구히 보전되며 성장한다. 유대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거나 상처를 입게 된 경우에 이 은총은 혼인한 이들이 회개하고 그 유대를 회복할 수 있는 실제적인 빛과 힘을 제공해 준다.

 

 

혼인 유대 사목은 긴 시간의 동반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행한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있는 신자들, 곧 동거나 사회혼만 한 신자들, 이혼한 뒤 재혼한 신자들에 대한 혼인 유대 사목은 은총을 원리로 하고 회개를 내용으로 삼아 성화를 목표로 한다. 긴 시간에 걸친 동반을 통해 꾸준하고도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교회법 규정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거나 변경함으로써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효하거나 적법한 혼인 유대로 인정하는 데에 사목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문제의 외적 해결이 아니라 사람의 내적 성화를 사목의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목에서는 무엇보다 한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해 가는 가정 공동체가 그 주역을 담당한다(200항). 사목자의 개별적 돌봄뿐 아니라 성숙한 부부들로 구성된 다른 가정들의 동반이 필요하다(223, 230항). 이들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상설 기구를 본당이나 교구 단위로 설치하여 상처에 대한 응급 처치뿐 아니라 악성 질병을 전면 퇴치해 가는 복음화의 기지로써 운용해야 한다(229항).

 

청년 사목과 연계하여 정서적·성적으로 성숙한 젊은이들을 양성하고, 신혼부부들을 적극적으로 동반함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그리스도교적으로 더 성숙하도록 돕고자 가정 사목의 외연을 확대하고 심화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민 가정, 혼종혼, 한 부모 가정, 낙태한 부부, 이혼한 뒤 재혼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사목 또한 이 같은 전망 안에서 수행한다. 그리하여 ‘복음의 진리와 사랑의 요구’에 충실한 사목을 발전시킨다(300항).

 

 

통합, 자신이 맺은 성사적 유대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혼인 유대 사목에서 동반의 목적은 통합이다. 통합이란, 혼인한 이들이 자신의 삶 속에 하느님의 계획을 완수하도록 성장시키는 것, 곧 자신이 맺었던 성사적 유대를 성령의 힘으로써 충실히 보존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297항). 복음에 따라 살려고 이혼한 뒤에도 재혼하지 않은 이들은 혼인의 신의를 증언하는 이들로서 주목받는다. 따라서 이들을 방치하지 않고 성체성사로 삶의 형태를 지탱해 주는 양식을 찾도록 격려하면서, 자신이 겪은 불의를 용서할 수 있도록 ‘화해와 중재를 위한 사목’을 시행한다(242항).

 

이 점은 이혼한 뒤 재혼한 이들에 대한 사목에서도 중요하다. 이들은 세례를 받은 형제자매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여전히 속해 있다. 사실, 이들은 세례를 받은 이들로서 교회의 각종 전례와 애덕 활동에 참여하고 신앙으로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화 사명을 다른 이들과 공유한다(299항).

 

그렇지만, 이들이 이전 배우자와 유효한 혼인 유대를 맺고 있으면 서도 다른 이와 결합하여 살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재혼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고수하는 객관적 상태야말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항구한 일치를 드러내 보여 주는 성체성사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주범이다. 그런데도 영성체를 ‘권리로써’ 요구하거나, 규정을 변경함으로써 성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인용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신앙과 은총의 논리에 절대적으로 모순된다.

 

이에 따라 권고 또한 “사제가 쉽게 ‘예외’를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어떤 이들이 자신이 교회에 좋은 일을 하였다는 것을 빌미로 성사적 특전을 받을 수 있다.”(300항)고 여기는 태도를 경계한다.

 

교회가 모든 이를 예외 없이 영성체로 늘 초대한다는 사실은 ‘사목적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이유와 동기가 된다. 자비는 고통에 대해 함께 아파하는 연민, 또는 잘못을 덮거나 견디어 주는 관용에 머물지 않는다. 악을 정화하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정의와 진리를 배척하지 않는다(311항). 따라서 이혼한 뒤 재혼한 이들에 대한 사목적 자비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속해 있는 유효한 유대로 회개하도록 이끌어 주는 데에 존재한다. 영성체를 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허용해 주는 데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성체를 할 수 없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그들이 상처받지 않게 돌보는 데에서 자비는 시작된다. 배령할 수 없는 성체 앞에서 자신의 악한 객관적 상황을 직시하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에 대한 식별을 통해 그들을 변함없이 끌어당기는 하느님에 대한 회개의 여정에 박차를 가하도록 인도하는 방식으로 ‘성사적 도움’(각주 351)을 베풀어야 한다. 이런 뜻에서 성체는 이들에게도 약이요 음식이 된다.

 

 

교회와 함께 느끼고 알아가는 것, 식별

 

다양한 상황은 그 각각에 상응하는 서로 다른 처방을 요청한다.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여 목적지를 두고 어느 길이 가장 적합한지를 알아보는 데에 식별은 필요하다. ‘성화’라는 목적지는 변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살피지 않고 다른 이들처럼 교회 생활을 하려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이롭지도 않다. 그래서 식별이 중요하다.

 

식별은 자기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가 어떠한지 ‘홀로’ 판단함으로써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인격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공동체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냐시오 성인은 ‘교회와 더불어 생각한다.’(Sentire cum Ecclesia)라고 말한다.

 

이혼 뒤 재혼한 이들에 대한 식별은 그들이 은총 상태에 있는지, 또는 유효한 혼인 유대가 객관적으로 존재함에도 두 번째 결합을 인정할만한 주관적인 요인이 있는지를 따져 묻는 데에 있지 않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라고 복음이 요구하는 바에 대한 예외를 찾는 데에 식별은 기여하지 않는 것이다(300항). ‘복음의 진리와 사랑의 요구’ 안에서 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300항), 자신의 처지가 지닌 객관적인 한계(재혼)에도 하느님께 응답하며 성장해 갈 방법을 찾아가는(305항) 과정이 바로 식별이다. 그리하여 첫 번째 배우자와의 화해 가능성, 두 번째 결합의 포기 가능성, 금욕의 가능성 등을 따져 물음으로써 사목적 동반에서 통합에 이르는 과정에서 채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식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사랑의 기쁨」의 새로움

 

이혼한 뒤 재혼한 이들의 영성체 인용으로 이들에 대한 사목을 환원시키는 시각이나 혼인 무효를 폭넓고도 쉽게 ‘허락’해야 한다는 관점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비관주의를 기초로 하는 법률 중심주의적 사고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것을 희망한다(1코린 13,7 참조). 사람이 “변하여 성숙해지고 놀라운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몰랐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116항).

 

교황의 권고가 선사해 주는 새로움은 이처럼 사랑에 따른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동반·식별·통합이라는 구체적인 과정으로 구성된 혼인 유대 사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써 오늘날 혼인 위기의 상황 너머로 ‘가정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기쁜 소식’(1항)을 선포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 김상용 요셉 - 전주교구 신부.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윤리신학을 가르친다.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과 가정 신학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12월호, 김상용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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