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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우리의 고통이 줄어들까요?(자살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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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4 ㅣ No.1375

[새로봄] 우리의 고통이 줄어들까요?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괴로워요…. 이제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요…. 자살하고 싶어요…”(김 씨, 30대 여성).

 

“제 잘못인 것 같아요. 왜 남편을 지키지 못했을까요? 저야말로 죽어야 할 것 같아요”(남편을 잃은 자살유가족 박 씨, 40대).

 

1년에 14만 명, 하루에 39.5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살하면 그 가족과 지인 등 평균 7명이 심각한 충격과 고통을 겪는다. 사별의 슬픔을 건강하게 이겨 내지 못할 경우, 자살자의 유가족이 또 다른 자살자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는 자신의 생명을 놓아 버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어디선가는 자녀의, 배우자의, 부모의, 형제자매의 자살에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자살이 더는 개인의 문제일 수 없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 이인희 상담사를 만나 그 답을 들어 보았다.

 

 

생명의 끈을 놓지 않도록, 자살 예방 상담

 

아동학대 속에 자랐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김 씨(30대 초반 여성, 학원 강사).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해 집안의 도움 없이 생활을 꾸려 나갔다.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생활했다. 예전 모습으로는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대단했고 그 덕분에 우울증 완치 판정도 받았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그 의지를 다시 꺾어 버리곤 했다. 심한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 용기 내어 전화를 걸었다. 주보에서 본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였다. 세상에는 아직 자신의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들어 주고, 자신의 분노와 아픔을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에 대한 분노로 자신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자각, 다신 예전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자살로 향하던 김 씨를 안정된 삶으로 이끌었다. 뿌리 깊은 상처와 우울증, 그리고 자살 충동은 지금도 종종 출몰해 김 씨를 괴롭히곤 한다. 하지만 1년 이상 꾸준히 상담을 받으며 생명의 길을 찾아 걷고 있다.

 

무엇이 자살을 생각하게 할까? 이인희 상담사는 “사람마다 너무도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누구와도 연결돼 있지 못하다는 ‘외로움’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라고 말한다. 자신 안의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이야기할 대상이 없어 자신의 문제들을 밖으로 꺼내 보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해답을 못 찾은 채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정상적인 사고조차 어려워져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살 예방 상담은 전화 상담으로 시작해 대면 상담으로 이어진다. 상담을 통해 자살을 생각하게 했던 고통이 죽고 싶은 정도의 것은 아니게 되고, 그 고통을 받아들일 힘도 생겨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단 한 번의 상담으로 완전히 자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극적인 변화는 아닐지라도 서서히 변해 가며 생명의 길을 걷게 된다.

 

 

자살이 자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바라기 슬픔돌봄 모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었고, 주위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박 씨(40대 후반)는 집에서 남편의 시신을 발견했다.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고, 남편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졌다. 남편 없이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는 책임감에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무엇보다 남편의 자살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슬픔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을 따라가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그러다 지인의 도움으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의 유가족 모임인 ‘해바라기 슬픔돌봄 모임’을 찾아갔다.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었고, 충격에서도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살아가는 의미를 천천히 발견해 가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모든 사별이 아픔이지만, 특히 자살이 큰 충격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예기치 않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픔과 상처도 깊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교회 안팎의 냉랭한 시선에 교회를 떠나게 되고, 유가족의 심리적 · 정서적 어려움에 무관심한 사회에 담을 쌓는다.

 

이인희 상담사는 말한다. “사회적 수치감과 따가운 시선 등 비난의 꼬리표가 유가족의 치유 과정을 더디게 합니다. 또한, 유가족 중에 자살자를 따라 자살하는 비율도 높아 자살이 자살을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로 기존의 삶이 뒤집힌 경험을 한 유가족은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도 희망도 없는 큰 절망감을 느낀다. 이런 감정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자살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기 위해 자살 예방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 ‘해바라기 슬픔돌봄 모임’이다.

 

모임은 유가족들이 모여서 최대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현재 가장 힘든 점, 후회되는 것들, 자신이 하지 못했던 말들을 솔직하게 나눈다. 또 어려움을 이겨 냈던 경험들도 나눔으로써 다른 가족을 지지해 주기도 한다.

 

 

자살 예방의 시작, ‘나 자신에게 친절하기’

 

이인희 상담사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만이 아니라 유가족도 자살 예방 대상입니다”라며 자살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자살 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인희 상담사는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에게 친절할 수 있는 태도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모든 게 엉망인 것 같은 절망적인 순간에 우리는 보통 자신을 학대하고, 비난하고, 자책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려 자신을 보살피는 친절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처럼 감정이 쌓이지 않게 하고 그때그때의 감정을 알아차리면, 감정을 잘 표현하게 되고 진정한 소통도 할 수 있게 된다.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인희 상담사는 “그에게 자살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만약 그렇다면 설득해서 - 다시 살 생각을 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 도움받을 기관으로 안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흔적은 남아 있으나 고통은 사라졌다

 

유가족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우리의 고통이 줄어들까요?”이다. 2016년 한·일 자살예방 심포지엄에서 어느 일본 신부가 한 고백이 그 답이 될 수 있겠다.

 

어머니께서 자살하셨습니다. 너무도 절망적이고 힘들어서 마음에 큰 구멍 하나가 생긴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구멍이 메꿔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했던 친구 한 명과 저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한 사람. 그 두 분이 그 절망의 시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품받기 전이었기에 과연 서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그 두 분이 굉장히 지지해 주셔서 무사히 서품받았습니다. 제게 여전히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길 바랍니다.

 

유가족 가슴에 흔적은 남아도 고통은 사라지길 바라며….

 

* 이인희 상담사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에서 자살예방상담, 자살자 유가족 상담 및 유가족 모임을 담당하고 있다.

 

[성서와함께, 2016년 9월호, 이기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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