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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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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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9-22 ㅣ No.715

[경향 초대석]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


세상을 이기는 힘, 순교영성입니다

 

 

지난 6월 3일 교황청 시성성을 방문하여 한국 순교자 124위와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한 공식 청원서와 자료를 제출하고 돌아온 박정일 미카엘 주교(84세)를, 8월 4일 마산 성지여고 안에 있는 주교관에서 만났다. 박 주교는 1958년 사제품을 받았고, 1977년 5월 제2대 제주교구장으로 임명 주교품을 받았다. 1982년 전주교구장으로 전보, 1988년 마산교구장으로 전보되어 사목하다가, 2002년 11월 11일 교구장직을 은퇴하였다. 1997년부터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일해오고 있다.

 

 

원로 사목자로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편하게 살고 있지요. (웃음) 요즘 같은 때는 특히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많은데 그런 일이 없으니 편하게 살고 있지요. 현역 주교님들이 다들 수고하시는데 너무 편히 사는 것 같아요. 가끔 본당이나 사제 피정에서 시복시성에 관한 특강도 하고, 순교사 공부도 하며 지내요. 요즘도 컴퓨터를 가지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인터넷으로 시복시성 업무 연락도 하고, 올해는 사제의 해라서 요한 비안네 성인 사진과 사제들을 위한 기도문을 넣은 책갈피를 만들어 나누어주고 있어요.

 

 

올해가 103위 성인 탄생 25주년인데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과 103위 시성식이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되었지요.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5년이 지났군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100만 군중 운집, 많은 준비, 신자들의 열성 등 정말 감격적인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정말 대단했지요. 그때 저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일했어요. 지금 시복시성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이 더욱 감명 깊고 새롭게 다가옵니다.

 

 

124위 순교자와 최양업 신부님 시복 추진 과정

 

1784년 이땅에 천주교의 씨가 뿌려지고 다음 해부터 바로 박해가 있었지요. 명례방 집회 사건으로 김범우 순교자가 나왔고, 그 이후 10여 차례에 이르는 많은 박해가 있었지요. 4대 박해라 부르는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로 1만여 명의 순교자가 나왔잖아요. 우리 교회 역사는 순교의 역사로 시작되었어요. 초대교회 때부터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순교자 공경은 후손으로서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우리 한국은 시복시성이 이번까지 하면 세 차례인데,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온 이후에 시작이 되었지요. 그전에는 시복시성이라는 것을 잘 몰랐으니까. 기해박해부터 병오박해까지 순교자 79위의 시복식이 1925년에, 병인박해로 순교한 24위의 시복식이 1968년에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었지요. 두 차례 후기 순교자들 시복식이 끝나자 초기 신유박해 순교자들 시복식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이 다가오자 시복을 다음으로 미루고 이를 기해 시성부터 하자고 해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청을 드렸지요. 79위와 24위를 합한 103위 한국 순교 복자들을 시성해 주십사고 말이에요. 그런데 시성이 이루어지려면 기적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주교들이 신청을 했지요.

 

‘기적이 있기는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기적 심사를 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한국에는 서양같이 주치의 제도가 없어 개인의 기적적인 치유를 증명하기도 어렵다. 1970-80년대 한국에서 한 해에 신자가 10만 이상씩 늘 정도로 전교가 되는 것도 순교자들에 힘입은 기적이 아니겠느냐.’고 했죠. 그래서 기적 심사를 면제받아 시성이 이루어졌지요.

 

이렇게 103위 시성식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신유박해 순교자를 어찌할 것인가 하고 논의했죠. 주교회의 전례위원회가 맡아 하기로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원래 시복시성 작업은 교구장 권한이니까 교구별로 하자고 했는데 그때 저는 전주교구장으로서 전주의 순교자 다섯 분을 선정하여 시작을 했어요. 몇 년 뒤 수원교구에서도 순교자들을 선정하고 시작했지요.

 

그리고 로마에서 시복을 추진하는 데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통보받았는데, 다른 교구에서는 어찌하느냐 하다가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통합추진’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주교회의 사무처장 김종수 신부를 청원인으로, 유한영 신부를 청구인으로 하여 책임을 맡기고 각 교구 시복시성 담당신부들이 몇 차례 모였지요. 몇 번 회의를 했는데 추진이 어려웠어요.

 

한국 교회를 대표해서 추진하는 것인데 주교회의가 대표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2001년 3월에 로마에서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를 할 때 제가 대표로 선출되었지요. 로마에서 돌아와 시복시성을 위한 주교특별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주교위원, 선정위원, 신학위원, 통합 추진 교구대표, 역사 전문가 위원, 예비심사(시복재판) 관여자 등 48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였어요.

 

8년 넘게 일을 하여 마침내 지난 5월 20일 124위 순교자와 최양업 신부님 시복재판을 종료함으로써 위원회의 공식 활동을 마감하였지요. 그리고 지난 6월 3일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님과 함께 로마를 방문하여 공식 청원서와 A4 용지 6천 쪽이 넘는 그동안의 모든 관계 자료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하였어요.

 

 

시복 청원서 제출 이후 할 일

 

지난 두 번의 시복식이 선교사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번은 한국 주교단이 추진하는 첫 시복시성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어요. 청원서를 제출하고 나니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요. 이제는 로마에서 할 일이 많아요. 전 세계에서 시복시성에 관한 문건이 2천 건이나 올라와 있다고 하니 엄청나지요. 시성성에서는 전문위원들이 절차에 따라 검토하고 주교와 추기경으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검토해 교황님께 제출합니다.

 

다들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고 궁금해 하는데 일본의 188위 순교자 시복식을 보니 10년이 걸리더라고요. 우리는 그보다 숫자가 적고 또 서두른다고 보아도 7-8년은 걸리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시성성 장관 말씀이 아프리카나 아시아를 우선적으로 심의한다고 하셨어요. 유럽은 성인성녀가 많으니까. 일본 주교님들 말씀으로는 자꾸 보채야 한다고 하더군요. (웃음)

 

청원서를 냈다고 우리가 시복만 기다리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요. 시복시성의 목적이 그분들을 공경하고 본받는 게 목적이라면 그분들의 삶을 알고자 공부도 해야 하겠지요. 물론 기도도 해야 하고. 그런 것을 통틀어 이야기한다면 순교영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시복시성이 되면 순례자가 찾아올 테니 사적지나 묘소를 가꾸고 성역화하는 일도해야겠지요. 초대교회 때부터 순례가 좋은 신심행위로 꼽히고 있는데, 순교자성월에 교구, 본당, 사도직 단체, 소공동체, 가족 단위 등으로 순례를 하면 좋겠어요. 전주교구에서 하는 루갈다제 같은 문화행사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순교자들을 알리고 순교신심을 드높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양업 신부님 시복에 필요한 기적 심사

 

순교자는 순교했다는 사실만 확실하면 복자위에 오를 수 있지만 최양업 신부님 같은 ‘증거자’는 기적 심사가 필요해요. 그분이 성인같이 사셨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기록도 있지만, 기적이 문제예요. 2007년에 제가 기적 심사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한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최양업 신부님께 기도를 바쳐 기적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알려달라고 하였지요.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기도를 하되 사적으로 해야지 공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교회법(1187조)에 보면 교회의 권위가 성인들이나 복자들의 명부에 올린 하느님의 종들만을 공적 경배로 공경할 수 있다고 해놓았거든요. 현장조사를 다녀보니까 공식적으로 기도를 바치거나 순교자 초상화를 성인처럼 그려놓은 곳도 있던데 그것은 안 돼요. 기도를 하되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해야 돼요. 기적의 은혜를 받고자 그분을 생각하면서 9일 기도나 50일 기도 등을 할 수 있고, 순례를 한다거나, 봉사활동, 선행, 자선, 금주 금연 등의 극기를 한다거나 할 수 있어요.

 

현재 최양업 신부님께 기도해서 기적의 은혜를 입은 사례가 몇 건 보고되어 있어요. 어떤 수녀님들이 불치병에 걸린 동료 수녀를 위해 최양업 신부님께 기도를 했대요. 어떤 사람은 9일 기도를 하고, 어떤 사람은 50일 기도를 하고 꽤 오랫동안 기도를 했대요. 따로 기도를 했으니 서로 끝나는 날을 모르지요. 그런데 같은 날 기도가 끝났고 그날 병이 나았대요.

 

또 어떤 의사가 신심이 있어서 늘 최양업 신부님께 기도를 하면서 진료를 했는데 몇 건이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어요. 그런 것을 지금부터 조사해야 해요. 그런데 기적 심사는 기적이 일어난 고장의 주교가 하게 되어있어요. 그런 사례가 있으면 본당신부님이나 교구나 시복시성위원회(☎ 02-460-7669)에 알려주시면 돼요.

 

 

특별히 다가오는 순교자

 

제가 적임자라기보다 무슨 부탁을 하면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 특위 위원장을 맡게 되었지요. 순교사나 한국 교회사를 배우지 못했고 처음 하는 일이라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 일을 하면서 보고 듣고 읽고 하다 보니 조금 알게 되었어요. 모든 순교자가 다 대단해요. 그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이 기적이지요.

 

모두가 새롭게 우러러보이지만 최양업 신부님이 참 놀라운 분이에요. 첫 번째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했고 두 번째 최양업 신부님이 아주 훌륭하게 사셨는데, 만일 이분들이 배교했다거나 환속했다면 한국 교회가 어떻게 되었겠어요. 이렇게 훌륭한 신부님들을 둔 게 한국 교회의 홍복이고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 한국 교회에서 특별한 것은 우리 선조들이 가족 선교, 가족 복음화를 참 잘했다는 거예요.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도 일가 관계에요. 그런 분들이 참 많아요. 자신이 신자가 되어 가까운 집안사람들부터 선교를 한 게 돋보이더라고요. 오늘날은 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다시 순교자성월을 맞으며

 

시복시성 자료를 로마에 제출하고 처음 맞이하는 순교자성월이니까 순교자들을 좀 더 가깝게 느끼는 특별한 성월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이 들고요. 특히 103위 성인과 ‘하느님의 종’ 124위와 최양업 신부님에 대해서 좀 더 알도록 힘써야겠어요. 늘 강조하는데 마리아 공경이라든지 성령신심이라든지 여러 영성이 있겠지만 신자들이 순교영성, 순교자 정신으로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유혹도 많고 신앙생활하기가 어려운데 순교정신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어요. 한국 교회 영성의 특징이 뭐냐 물으면 순교영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과 영성이 뛰어나면 좋겠어요. 당시 사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 잡혀 죽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순교자들은 전교를 잘했어요. 순교자성월에 우리 순교자들을 본받아야겠어요.

 

아직도 남아있는 순교자가 많아요. 각 교구에 순교자 명단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미처 제출하지 못하거나 빠진 분들이 있고, 관심을 가지면서 교구마다 새롭게 찾아낸 순교자들도 있어요. 역사가들이 순교 사실에 대한 논란을 벌이는 이승훈, 이벽, 권철신, 권일신 같은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올 가을이나 내년 봄쯤에 각 교구에 공문을 보내려고 해요. 교구에서 올라오는 명단을 가지고 선정위원회가 다시 모여 2차 시복시성도 추진하게 될 거에요.

 

2008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순교자와 증거자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저는 그만하겠다고 했는데도 다시 맡겨주셨어요. 지난번과 비슷한 선정기준을 가지고 해야 하고, 시복시성 절차법도 까다로워 하던 사람이 하면 좋겠지요. 주교님들의 결정이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25년 전, 103위 시성식 행사 당시 100만 명의 신자가 빠져나간 여의도광장이 휴지 한 장 없이 말끔히 치워져 세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순교영성은 이렇듯 작은 실천에서부터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하지만 이른바 ‘백색순교’가 필요한 시대라, 피의 순교자 124위와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 추진이 더욱 뜻깊다.

 

9월 순교자성월에 무엇을 할지 잘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당부를 새기며 사진기를 들었다.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하다는 무학산 아래 성지여고 학생들의 맑고 높은 웃음소리가 주교관 뜰을 흔든다.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충성’, 인간과 세상에 대한 ‘온유’(집회 45,4)를 사목지표로 삼고 오롯이 한생을 살아온 원로 사목자의 모습이 참 온화하다.

 

[경향잡지, 2009년 9월호, 글 · 사진 배봉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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