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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15: 돈의 새로운 우상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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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2 ㅣ No.644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5) 돈의 새로운 우상은 안 된다


현대 사회에 반복되는 금송아지 숭배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 은행 리만 브러더스사가 파산했다. 주택 담보 대출(Subprime Mortgage)에 대한 투자 실패 때문이었다(‘Subprime’은 은행의 고객 분류 등급 중 ‘불량 대출자’를 의미한다. ‘Prime’은 ‘우량 고객’이다. Mortgage는 ‘주택 담보 대출’을 뜻한다). 관련된 금융 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부도 위기에 몰리거나 파산하고 인수 합병되었다.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쳤고, 금융 불안으로 투자와 소비가 급랭하면서,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했다. 보도매체에서는 난리를 피워댔다. ‘모기지’ 때문에 세계금융위기(Global Financial Crisis)가 닥쳤다는 것이다. 경제 용어에 밝지 못한 필자에게 너무도 낯선 ‘모기지’(mortgage)라는 영어식 표현이 이제는 마치 모국어처럼 들릴 정도가 됐다.

 

교황은 세상의 가치관에 대해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온 세상이 난리가 납니다”(53항). “‘돈’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방치해 놓았기 때문입니다”(55항).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표현이다.

 

 

물신주의 앞에 말살되는 인간성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으나, 교황은 근원적이며 본질적 이유를 문제 삼는다. 세상의 모든 재화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의 복지와 구원을 위한 소비재이건만, 인간이 오히려 재물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이는 고대의 금송아지에 대한 숭배(탈출 32,1-35)와 다를 바 없다. 이 시대는 돈에 대한 물신주의에 빠져 있다. 그 결과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경제 시스템이 무소불위의 힘으로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시스템은 배척과 불평등이 없는 경제 시스템, 인간 중심적인 시스템, 모두가 함께 살고, 함께 참여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상생과 공생의 경제 시스템이다.

 

 

소비욕의 존재로 전락하는 인간 

 

최근 우리 주변에서 ‘착한 소비’ 혹은 ‘윤리적 소비’ 그리고 ‘공정 무역’이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기업이 보건, 빈곤, 환경과 같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의 상품의 일정 부분의 이익을 활용하겠다고 했을 때, 소비자가 그 물건을 구매하면, 간접적으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시스템이다. 그렇게 소비자의 자긍심을 높여주기에 ‘윤리적 소비’ 혹은 ‘착한 소비’라 불린다. ‘공정 무역’은 생산자와 사업자가 상생하도록 돕는 무역이다. ‘공정 무역 커피’라는 말도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소비’를 하면서도 생산자에게 충분한 대가를 전달한다는 상생의 윤리 의식도 챙기도록 하고 있다. 유럽 사회에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 모든 것은 나름 도덕적 이유를 근거로 ‘소비’의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교황의 날 선 비판을 온전히 피하진 못했다. 교황은 기업들의 코즈마케팅(Cause Marketing, 명분마케팅) 전략 역시 “인간을 욕구의 하나로만, 곧 소비욕의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55항)으로 규정했다. 시장에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사지 못해 안달이 나는 사람들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돈’을 우상화한 황금만능주의의 결과이다.

 

 

경제 시스템, 인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없나 

 

교황은 여기에서 국가의 역할을 부각시킨다. ‘공동선’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국가는 자신의 통제권을 발휘하여 경제 시스템 자체가 인간 중심적으로 전환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장의 자율권의 절대적 군림은 다음과 같은 해악을 가져왔다.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로는 가상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독재가 출현하여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자기 법과 규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널리 만연한 부패와 이기적인 탈세가 세계적 규모를 띠고 있습니다. 이익 증대를 목적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하는 이 체제 안에서, 절대 규칙이 되어 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자연 환경처럼 취약한 모든 것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56항). 

 

시인 이의용님이 쓴 ‘돈이 보낸 편지’를 옮겨본다. “당신은 언제나 나를 움켜쥐고는 나를 당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신이 나의 것이지요. 나는 아주 쉽게 당신을 지배할 수 있어요. 우선 당신은 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죽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있어 무한히 값지며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물이 없으면 한 포기의 풀도 살 수 없듯이, 내가 없으면 사람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죽고 말 것입니다. 회사도, 정부도, 학교도, 은행도… 부디 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나를 다루십시오.”

 

[평화신문, 2015년 3월 22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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