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노인사목] 정의 구현 노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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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08 ㅣ No.887

[노인사목 이야기] 정의 구현 노인단



누구나 다 알다시피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그리고 지금도 빨리 빨리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생활하는 주변의 장치들의 급격한 진보와 그 장치들을 통하여 누릴 수 있는 상상하는 것 이상의 편리함을 통하여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장치의 진보와 그것들을 통한 편리함은 얼마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과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듯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다. 또 어떤 소식이 세상 곳곳으로 퍼져 가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급격한 변화를 느끼는 것은 이뿐만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 평균 연령 70세 분들의 실버 꾸르실료(Cursillo)에 참가했었다. 실버라고 해서 기간이나 프로그램이 다른 것은 아니고 단지 참가 대상의 연령층이 높다는 것뿐이었다. 참가를 결정하고 준비하면서 저절로 ‘노인’에 대한 기존의 생각, 곧 거동이 불편하다든지 청력이 떨어진다든지 쉽게 잘 이해하지 못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꾸르실료 동안 분위기도 다른 때와는 달리 느리고 처져있거나 느슨하게 진행되겠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꾸르실료를 시작하고서 이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프로그램 내내 반짝이는 눈빛으로 집중해서 봉사자들과 호흡을 함께 하시는 모습,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 봉사자의 지시에 따르는 성실성과 적극성 등! 여기에 더하여 노년이 가질 수 있는 삶 속에 배여 있는 여유까지 다른 여느 때와 비교하더라도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선입견으로 가졌던 마음은 오히려 더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은 모습을 보며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싶어서 다른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 환갑잔치를 집에서 친척들과 가깝게 지내시던 성당 할머니들을 모셔서 거창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때는 환갑이라고 하면 오래 사셔서 노인 중에서도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상(上)노인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 차지를 하도록 여겨져 환갑잔치는 마치 은퇴식과도 같았다. 그러나 요즘은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은 잘 없다. 오히려 자손들이 환갑잔치를 하고자 하면 스스로가 ‘요즘 누가 한창 때인데 그런 거 하냐?’면서 부끄러워하며 손을 내저어 말린다. 팔순 잔치라면 몰라도. 그러니 요즘은 뒷방노인이라는 말이 어디에도 쓰일 수 없다. 공원이나 산에 가서 보더라도 옛날에는 상노인 대우를 받으실 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거나 땀 흘려 산에 오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섬김을 받아야만 하는 은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어떤 기능을 함으로써 정체성을 유지하고 또 삶의 의미를 느끼고자 한다. 이러한 사회 안에서 물러남이 아니라 오히려 여전히 왕성하고 적극적인 사회적 욕구에 힘입어 사회에 실버산업1)이라는 분야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향후 2020년에는 실버산업의 시장 규모가 최고 125조 원까지 성장 할 것으로 예측했다. 고령화 속도에 비해 더디던 실버산업 발전이 베이비부머의 유입을 계기로 급격히 팽창한다는 분석이다. 그 가운데에는 금융·건강·여가서비스 산업이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2)

그렇다면 교회나 사회는 건강하고 적극적인 노년 생활을 위해 그분들에게 모든 일에서 은퇴라는 개념보다는 정책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는 합당한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 길고 무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대학 봉사자들이 각 본당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연수를 8월에 매주 월요일마다 4주 동안 실시했다. 에어컨이나 적어도 선풍기 없이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연수에 150여 명의 봉사자들이 참석을 했다. 연합회 연구반 봉사자들이 미리 준비한 율동을 따라하며 열심히 배우는 모습들은 본당 노인들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번에는 소풍 오갈 때 버스 안에서 부를 수 있는 성가들을 중심으로 한 오락을 준비해서 실제로 실습하며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봉사자들이 학생이 되어 배우기 때문에 본당에서 활용하는 데 있어 좋은 점은 어떤 것이고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인지를 직접 체험하며 배울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이들에게 저런 열성을 불어 넣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이어지는 성경공부 시간에는 봉사자가 먼저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은 당연한 거라면서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강사 신부님의 강의에 집중하였다.

이외에도 가 본 곳 가운데 소풍장소로 좋았던 곳을 공유하면서 봉사자들의 부담을 한결 줄어들게 할 수 있었다. 본당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배우고 나누고 나서 미사로 연수는 마무리 되었다. 미사 때에도 행복해하며 부르는 성가소리와 환한 얼굴들이 이들의 마음이 어떤지를 충분히 잘 알려 주었다. 그들이 무더웠던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해하며 가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노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나눔과 봉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봉사자들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이처럼 사회 안에서 노인들은 그저 주어진 어떤 혜택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관념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얼마든지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체에 봉사할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기여 할 수 있다. 노인들에게 있어 ‘정의(正義)’란 노년이라는 품위에 어울리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삶의 의미를 보존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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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령인구를 대상으로 이들의 노년 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조,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산업을 말한다. 최근에는 그 대상이 고령자뿐 아니라 노후 생활을 준비하는 중·장년층까지 확대되었다. 산업분야도 노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포함한다.

2) 인터넷 뉴스 ‘백세시대’ 479호, 2015년 7월 24일

[월간빛, 2015년 10월호, 
박상용 사도요한 신부(대구대교구 노인사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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