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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아름다운 순례길을 가다3: 길을 만나다 - 여산을 통해 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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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9-20 ㅣ No.712

'아름다운 순례길'을 가다 (3) 길을 만나다 - 여산을 통해 나바위


옛 선조들 숨결 느끼며 가는 길, 인생길을 닮았다

 

 

여산 백지사터.

 

 

천호성지.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들 가운데 이명서(베드로) 손선지(베드로) 정문호(바르톨로메오) 한재권(요셉) 등 네 성인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 네 성인은 완주 송광사로 가던 순례 첫날에 이미 만난 성인들이다. 또 공주와 여산에서 순교한 순교자도 묻혀 있다.

 

10시 30분, 성인 묘역에 올라 잠시 묵상한 후 성지를 출발한다. 배낭을 매자 묵직한 기운이 어깨를 짓누른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과 발뒤꿈치 상처 때문인지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무릎까지 욱신거린다. 아픔을 참으며 몇 걸음 내딛고 나니 또 그런대로 조심조심하면서 걸을 만하다.

 

천호공소 앞을 지나 마을 뒷길로 오르니 문드러미재 초입으로 연결된다. 완주군 비봉면과 익산시 여산면을 잇는 고개다. 741번 지방도로로 잠시 걷다가 고개를 내려갈 때는 산길을 택한다. 한여름 햇볕을 피할 수 있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

 

- 여산에서 나바위로 가는 여산천변 코스모스.

 

 

길은 곧 도로와 만나고 길게 뻗은 농로를 거쳐 마을 골목길로 연결된다. '원수리경로회관' 앞 골목을 통해 횡단보도를 건너 10여 분 더 가면 '진사교' 다리다. 이 동네 이름이 진사동인데 옛부터 '진사'들이 많이 배출돼 붙은 이름이다.

 

진사동 끝자락에 국문학자요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1891~1968) 선생 생가가 있다. 생가 초입에는 울창한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이병기 선생 동상이 서 있고, 그 아래 비석에는 선생의 시 '고향으로 돌아가자'가 새겨져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 암데나 정들면 / 못살리 없으련마는 / 그래도 나의 고향이 / 아니 가장 그리운가(후략)"

 

한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순례의 끝은 어디인가. 선생의 시처럼 '고향'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순례길은 또한 결국에는 고향 가는 길이 아니던가. 진정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은 어디인가.

 

생가를 뒤로 하고 진사교에서 천변을 따라 여산으로 향한다. 둑길에는 들꽃들이 자태를 뽐낸다. 이 꽃들은 여름 햇살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생가를 떠난 지 1시간, 여산 시내로 들어가는 여산교에서 걸음을 멈췄다. 병인박해 때 이 일대에는 미나리꽝이 있었는데 신자들을 처형한 후 미나리꽝에 던졌다고 한다. 배다리라고도 부르는 여산교를 건너 300여m 가면 여산면사무소다. 면사무소 건너편으로 옛 여산동헌이 있고 그 맞은 편은 여산초등학교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옛 옥터였다.

 

여산순교성지터.

 

 

면사무소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동헌 아래 백지사터에 들렀다. 박해 때 동헌으로 끌려온 신자들은 문초를 받은 후 옥에 갇혔다. 신자들은 동헌 앞 마당에서 백지사형을 당하거나 500여m 떨어진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백지사(白紙死)형은 물에 적신 종이를 얼굴에 여러 장 덮어 질식사시키는 형벌이다.

 

백지사형을 당하는 얼굴 모습을 새긴 화강암 조각을 한동안 내려다보고 있자니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힌다. 여산성당 입구를 지나 숲정이로 향한다. 나바위로 가는 순례길은 배다리 아래를 지나 숲정이 옆을 흐르는 여산천을 따라 나 있다.

 

오후 2시 40분. 숲정이 옆 둑길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10km 가까이 이 둑길을 걸어야 한다. 몸은 무겁고 다리는 절뚝거리지만 마음 편하게 먹고 걷기로 했다. 하지만 걸음은 갈수록 더뎌만 간다. 날은 또 왜 그렇게 무더운고? 둑길이어서 쉴 만한 그늘도 없다. 순례 첫날, 비를 맞으면 걷던 길이 오히려 그리워진다.

 

길은 같은 둑길인데 어쩜 이리 변화무쌍한가. 자갈길은 바로 콘크리트 포장길로 연결되고, 걷기 편한 흙길을 걷다 보면 진창길이 나온다. 들꽃들이 아름답게 핀 길은 잡초만 무성한 길로 이어진다.

 

한 길을 가는데도 다양한 길을 만나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길, 원하는 길로만 가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결국에는 헤매고 말 것이다. 목표를 놓치지 않고 가려면 내가 길에 적응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길, 인생길도 마찬가지리라.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둑길을 걷기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발바닥과 장딴지에서는 쥐가 나려고 한다. 벌써 3번이나 휴식을 취했는데도 계속 몸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 가혹한(?) 주인을 모신 두 다리에 미안함을 표하고 다시 걷는다. 여산천은 어느새 다른 지류와 합류해 강경천이 되어 흐른다.

 

저녁 5시 40분, 신용교 조금 못미쳐 둑길은 마을길로 연결되고, 관산 들녘을 가로지르는 농로로 이어진다. 관산마을을 끼고 채운2리를 지나 망성농협 옆을 빠져 나왔을 때는 6시가 훨씬 지났다.

 

길가 가게에서 물을 샀다. 주인 아주머니는 천호에서 나바위로 도보 순례 중이라는 말에 한사코 물값을 받지 않으려 한다. "저도 나바위 신자예요. 좋은 순례하시고 축복받으세요."

 

감사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나바위로 향한다. 들판 저 멀리에 나바위성지가 있는 화산이 보인다. 순례자를 후히 대해 준 아주머니를 위해 묵주기도 5단을 바치며 간다. 해가 서편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피곤한 다리를 재촉하며 걷지만 가도가도 제자리 같다. 6시 55분. 마침내 나바위성지에 도착했다. 김대건 성인의 자취가 서린 성지다. 2km 남짓한 거리인데 40분이 넘게 걸렸다.

 

피정의 집 2층에 하나 남은 방을 얻어 여장을 풀었다. 물집은 혹처럼 부풀어올랐고, 발뒤꿈치 상처는 피가 엉겨 양말에 들러붙었다. 살은 벌겋게 핏빛으로 부풀어 올랐다. 물집은 바늘로 따고 상처 부위에는 천호성지에서 얻어온 약을 바른다. 이렇게 또 순례의 하루가 흘렀다.

 

[평화신문, 2009년 9월 20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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