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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기쁨, 우리 곁에 있는 한 줄기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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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21 ㅣ No.670

[기억, 아남네시스] 기쁨, 우리 곁에 있는 한 줄기 빛



“제 마음의 반석, 제 몫은 영원히 하느님이십니다”(시편 73,26)라고 한 시편 말씀은 우리 삶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시편 작가는 하느님께 의지하는 기쁨에 찬 신뢰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쁨이란 삶의 모든 순간에, 특히 커다란 어려움이 있을 때 똑같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쁨은 ‘한 줄기 빛으로라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는 끝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개인적인 확신에서 생겨납니다’(「복음의 기쁨」, 6항). 하느님께 사랑받는다는 굳건한 확신이 여러분 성소의 중심에 있습니다.“(2014년 8월 16일, 한국 수도 공동체들과 만남 연설)


교황님, 기쁨이 배어있는 삶

제가 존경하는 유다인 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명언이 가끔 떠오릅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 좋았지만 나이가 드니 자비로운 사람이 좋습니다.” 본디 교황이라는 말은 ‘다리를 건설하는 사람(pontifex)’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교황님의 방한은 우리의 아버지이자 친구이신 분이 태도와 말씀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시면서 복음의 기쁜 소식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은 설교 전에 삶으로 ‘기쁨’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셨습니다. 교황님의 핵심어 ‘기쁨’에 관하여 세 가지 주제로 성찰한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참된 기쁨이란 무엇인가? 선물로 얻은 기쁨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세상에 복음의 기쁨을 전하려고 할 때 내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참된 기쁨이란 무엇인가

기쁨이란 말을 떠올리면 ‘행복’이라는 말이 함께 떠오릅니다. 행복의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기쁨은 인간 체험의 다양한 영역을 가리키는데, 기쁨에 대한 구약성경 이해에서 근본적인 것은 역사 안에서 하신 하느님의 행위입니다. 구약의 이런 기쁨에 대한 이미지는 신약에 그대로 전달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예수님 안에서 하신 일인 ‘복음’은 그야말로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교황님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양한 말씀을 하셨지만 근본적인 메시지는 우리에게 참된 기쁨은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곧,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인 복음이 우리의 온갖 핑계더미 속에 파묻히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인 순교자들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데 모범의 역할을 합니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바로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는 아름다움과 진실성이 있어서, 복음과 복음의 요구, 곧 회개, 내적 쇄신,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가 이벽과 첫 세대의 양반 원로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그 순수함에,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2014년 8월 14일, 한국 주교들과 만남 연설).

참된 기쁨은 복음을 나를 위한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은 복음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복음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복음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선물로 얻은 기쁨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기쁨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이지만 우리가 훈련을 통해 성장시키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늘 삶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상황에 따라서 요동을 치는 것이 우리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늘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 삶을 거저 받은 선물로서 “하느님께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외부의 상황과 자신의 감정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대낮 같은 밝은 빛은 아니지만 기쁨이 “한 줄기 빛으로라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낯설게 보일 수도 있는 그리스도인의 이 기쁨의 비밀은 자신이 “하느님께 끊임없이 사랑받는다는 굳건한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받는 존재로 볼 때 우리가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기쁨에 찬 것이 되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교황님은 날마다 성장해야 하는 선물 같은 기쁨을 유지하는 비결 세 가지를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이 기쁨은 기도생활과 하느님 말씀 묵상과 성사 거행과 참으로 중요한 공동체 생활에서 자라나는 선물입니다”(한국 수도 공동체들과 만남 연설). 그리고 이 기본적인 토대가 없다면 복음의 기쁨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유혹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하느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모든 것을 공동체적인 정신에서 바라보고 결정하는 태도를 지닐 때 “한 줄기 빛으로라도” 우리 안에 늘 현존하는 기쁨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복음의 아름다움에 날마다 놀라는 체험을 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동기는, 복음을 사랑으로 관상하고 조금씩 찬찬히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복음을 가까이 할 때, 우리는 복음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복음을 읽을 때마다 거듭 매료됩니다”(「복음의 기쁨」, 264항).


복음의 기쁨을 전하려고 할 때의 자세는 무엇인가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을 우리 안에 가두어놓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서 그것을 전하는 “기쁨의 전령”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 기쁨의 선포자가 지녀야 할 삶의 태도 가운데 세 가지가 저에게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첫째, 각 사람의 고유성,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려고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저는 부활시기의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에 이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복음 묵상에서 최근에 제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체험한 것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 20장에서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만난 막달레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540?-604년) 교황은 이 본문에 대한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야!’그분은 ‘여인’이라는 보통명사로 그녀를 부른 뒤에, 그녀의 고유한 이름을 불렀습니다. 마치 ‘너를 알아본 그분을 알아보아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안다.’(탈출 33,1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보통명사이지만 ‘모세’는 그의 고유한 이름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너를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너를 특별히 알고 있다’”(「복음 강론」).

우리는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고자 노력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의로움을 위한 경우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복음과 해설은 이런 종류의 피상적인 복음화(?), 또는 가벼운 자선과 선행이 우리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깔려있지 않은지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사람들에 대해 ‘특별하게 구체적으로, 마음으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강 압니다. ‘그 남자, 그 여자’로 알 뿐이지, 그 사람의 이름과 고유성은 잘 모릅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더 알게 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복음의 기쁨을 전할 때 우리에게는 일방적인 전달보다는 참된 이웃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체험합니다. 내 편에서 일방적인, 때로는 자기만족과 자기성취로 끝나는 선행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그 사람의 고유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겠지요.

하느님께서 나보다 더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사람을 염려하시고, 그 사람을 위해 당신 섭리에 따라 좋은 길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께서 일하시도록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이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함께 연대하는 공동체 정신(영성)이 필요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연대의 모범을 우리 순교자들에게서 찾으십니다. “한국의 첫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모범처럼, 신앙의 풍요로움은 사회적 신분이나 문화를 가리지 않고 우리 형제자매들과 이루는 구체적인 연대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다인도 그리스도인도 없기’(갈라 3,28) 때문입니다”(2014년 8월 16일, 평신도 사도직 지도자들과 만남 연설).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신앙적인 자원이 부족했던 이 연대의 정신을 가로막는 것은 ‘무관심과 상대주의’가 우리 문화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유혹과 압력은 바로 이런 “자기중심적 생활태도에 대한 찬양”임을 바로 보게 하십니다. 복음을 위해서 함께하는 모임이 공동선을 위한 삶과 계획을 어떻게 증언하는지 늘 질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영혼의 간호사, 영혼의 스승, 영혼의 정치인, 다른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있겠다고 마음속 깊이 결심한 이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사생활에서 분리시키면, 모든 것이 잿빛으로 바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273항).

셋째, 교황님께서는 모든 활동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호소하십니다. “마치 곤궁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주님과 더 가까이 사는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들을 밀쳐내지 마십시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간청에 연민과 자비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2014년 8월 17일, 제6차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 강론).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 활동, 성실함, 관대한 행위들을 통해 그분이 지니신 하느님 생명(divine life)의 신비를 고스란히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교황님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유대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한 실제로 그것을 늘 유념하면서 개인으로든지 공동체로든지 자신의 상황에서 이것을 의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편안하게 우리 뜻과 우리 수준에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우리만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공동체가 아무리 교회와 사회 안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더라도 이웃 사랑이 배제되어 있으므로 신앙이 없는 세상의 여느 모임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황님께서는 저에게 복음을 사는 사람은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기쁨을 간직한다는 것을 보여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교황님께서 지니신 고유한 특성은 “하느님의 자비 체험에서 흘러나오는 몸에 밴 기쁨, 습관이 된 기쁨”입니다. 저는 교황님을 보면서 하느님의 빛을 기쁘게 받고 복음의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은 한 사람의 인생에 크나큰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공동체의 성공은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키워내려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얼마나 함께 연대하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 임숙희 레지나 -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다수의 성경교재를 번역했다. 현재 엔아르케 성경삶 연구소 대표이며 대전가톨릭대학교 부설 혼인과 가정 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5월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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