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전례ㅣ교회음악

뚝섬까지울려퍼졌던명동성당의종소리

스크랩 인쇄

정영일 [nana0101] 쪽지 캡슐

2001-03-30 ㅣ No.370

자유게시판 3/29에 #18937에 올렸던 내용입니다.

 

어린시절 대축일에 쳤던 명동성당의 종

 

 

 

나에게는 어린시절이 떠오르는 은은한 명동성당의 종소리는 잊을수가 없다.

 

내가 소년시절 이침미사에 참례 할려고 명동성당에 가서, 성당 안에서 들리는 6시의 삼종소리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명동성당의 종소리는 뚝섬에까지 은은하게 울려 퍼졌던 종소리였다.

 

내 나이가 60이 넘었기때문에 나보다도 연배인 당시의 서울교구의 구교신자들은 아마도 잘 기억하실 것이다.

 

아침미사에 참례하러 오는 신자들에게 달려드는 성당안의 무서웠던(?)개들.....

 

추운 겨울에도 일체의 난방시설도 없는 명동성당 안에서의 미사참례....

 

항상 내자리는 제대를 향해서 오른쪽 3번째 기둥 바로 아래로(지금은 제대를 향해 왼쪽 첫번째 기둥에 있는 강론대가 그 당시 내가 아침미사에 다닐적에는 오른쪽 3번째 기둥에 있었다.) 정하여 미사에 참례하였다.

 

당시에는 몸이 불편하시고 걸인 생활을 하셨던 베드로 아저씨도 매일 미사에 참례하셨다.

그는 지금 오웅진 신부님과 함께 음성의 꽃동네에 계신다.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모르시는 종소리에 대한 부분에 대하여 기억나는대로 소개하여 보고자 한다.

 

서울가톨릭합창단원의 막내로서 활동 하였을 시(1957-), 대축일때에는 종의 추를 가지고 종의 몸통을 치지않고, 종의 몸통을 흔들면서 종에 달린 추를 쳤던 그 시절이 그립다.

 

종의 몸통을 흔들면서 종의 추를 칠려면 3명이 달려 들어서 온몸의 힘을 다해 서서히 움직여야만 한다.

 

 틀림없는 33번의 종을 정확한 리듬에 맟추어서 몸통이 추를 쳐야 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것이 아니다.

 

3-4번의 종소리에 어느정도 리듬감이 생기면 2명이 매달려서 종을 치는데, 약2 - 2.5미터 높이까지 사람이 매달려 올라가고, 내려 올적에는 3명이 매달려서 다음번에 올라갈때를

대비하여 빈틈없는 리듬으로 종소리의 간격을 맟추어 나간다.

 

생각들을 하여 보시라.

 

 명동성당의 종을 치는데에 있어, 몸통을 움직이면서 종의 추를 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가를....

 

음악을 전공하고 음향학에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지금도 있을 수 가 없는것은,

추로 종을 쳤을때의 종소리와, 몸통을 흔들어서 추를 쳐서 나오는 종소리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한 종소리가 명동성당에서 다시한번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역대 서울가톨릭합창단의 남성단원들은 거의가 대축일때에는 12시 삼종때에 종을 쳤다.

 

그러나 우리들 후배부터는 종탑과 종의 균열, 그리고 종을 받치고 있는 나무 받침목들의 노후로 몸통을 치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글을 쓰다 보니 같이 종을 쳤던 당시의 친구들과 선배 형님들이 보고 싶어진다.

 

김몽량, 김안정, 조성욱, 김영일, 양영일, 진성만, 김비호, 큰비안네형, 작은비안네형, 베드로형, 영수형, 상호형,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않는 여러 형님들과 친구들....

 

천주교회의 음악은 불교의 음악과는 표현방법에 있어서 다르기 때문에 종을 교체하는데에 있어서도, 문화재에 관계하시는 분들은 이점을 먼저 이해하면서 접근을 하여 주시기 바란다.

 

종교의 고유한 문화가 서로 다르다보니 이를 잘못 이해 함으로 인하여 공연한 오해를 나을 수도 있다.

 

특히 천주교회의 사제들 중에는 외국에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공부하고 귀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이점도 참고 하시면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들도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릴 적에는 너무 극단적인 표현은 삼가하는것이 어떻한지 한번 정도 생각들을 하시고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란다.

 

 단 시어로서의 표현방법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당시의 PIPE ORGEL은 구형이었기 때문에 성가를 연주할려면 종탑에 연결되어져 있는 바람통에 2명이 가서, 힘껏 바람을 잔뜩 넣어야만 한곡-두곡정도 연주를 할수가 있었다.

이 모든것은 남성단원들 중에서 가장 만만한(?) 우리와 같은 막내들의 담당이었다.

 

명동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자랐던 우리들과 당시 매우 친하게 지냈던 복사단의

여러 형님들과 동생들 (이들 중에서는 여러분의 신부님도 계심)....

 

정말로 보고 싶구려....

 

 

 

서울대교구 제11지구장좌 역삼동성당

 

  VOX DEI 성가대 지휘자 정 영 일

 

 E MAIL :nana0101@Catholic.or.kr

 



1,99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