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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전례]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1: 성교예규와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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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03 ㅣ No.1019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1) 성교예규(聖敎禮規)와 전례(Liturgia)


전례, 교회 활동 지향 정점이자 힘의 원천

 

 

전례는 가톨릭교회가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마당’이다. 교회 안에 생동하는 그리스도를 느끼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장이다. 그러나 대부분 신자들은 전례가 ‘형식적이다, 지루하다, 따분하다’고 느낀다.

 

한국교회는 2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전례생활에 토착화를 이루면서도 보편교회의 전통을 지켜왔다. 가톨릭신문은 신자들이 전례를 생활화해 전례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고자 가톨릭전례학회와 공동으로 ‘가톨릭 전례이야기’를 진행한다. 한국교회의 역사적인 주제를 선정해 보편교회 전례와 연결지음으로써 전례의 참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이번 기획이 신자들이 전례를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삶 속에서 전례의 참 기쁨을 맛보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성교예규(聖敎禮規) 혹은 줄여서 예규(禮規)란 초기 한국천주교회에서 전례(Liturgia)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것은 중국천주교회의 용어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 용어는 17세기 예수회 블리오 신부가 종합전례서로 편찬한 「성교예규」에서 유래한다.

 

예(禮)란 글자를 풀이하자면 시(示)에서 출발한다. 시(示)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보이다, 알리다, 가르치다. 보이고 알리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책이 있어야 하고 그 책의 내용은 법전이 된다. 따라서 가르침 혹은 법이라는 전(典) 아래에 제단에서 두 손을 들어 입을 모아 제사 드리는 그림을 형상화한 것이다.

 

규(規)는 규칙이라는 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사내 부(夫)는 시중하는 사람 혹은 봉사하는 사람이란 뜻이 있다. 여기서는 시중하는 사람이며, 볼 견(見)자가 붙어 봉사하고 시중드는 사람은 이것을 보고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성교예규’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전례서를 매일 통독(通讀)하고 다독(多讀)하며 그것을 실천하고 가르치고 모범이 되었다. 늘 자신의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찬양과 봉헌이 보여지는 전례로 드러남을 인식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전례에 참여하기 위한 철저한 교육과 생활태도를 갖추었다.

 

우리는 그러한 선조들의 전통을 따르는 분들을 구교우(舊敎友)라고 부른다. 구교우들은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인 조과(朝課), 만과(晩課)를 외워서 기도하였고 위령기도인 연도 또한 모두 암송하였다. 그리고 당시에 늘 기도서와 전례예규를 암송하고 실천하는 엄격함을 유지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전례란 단순히 참여한다는 개념을 뛰어넘어 익히고 배우고 실천하고 가르치고 보여주는 예규의 정신을 살았던 것이다.

 

성교예규의 중요한 가치는 초기 한국교회가 전례를 일상화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교우들은 자신의 일상생활과 전례생활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해서 초기 한국천주교회 교우들은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인 연도를 모두 몸으로 익히고 실천하며 다른 이에게도 가르치면서 삶으로 살았다. 비록 전례(Liturgia)의 근본적인 정신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의 전례헌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전례거행에 능동적인 참여라는 중요한 사목적 방향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Liturgia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leiturgia에서 나온 말로서 ‘의미있는 일이나 행위를 개인이나 가족이 자발적으로 백성, 국가, 도시를 위해 행한 봉사’를 뜻했다. 지금에 와서 이 용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전례헌장 7항)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완전한 공적 예배를 말한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지향을 지니고 거행하는 예식들이 모두 포함된다고 하겠다.

 

넓은 의미로는 개인 기도와 신심 행위들도 포함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칠성사와 준성사, 전례주년과 시간전례(성무일도) 등을 말한다.

 

교회는 전례를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고 하신 예수의 현존성에서 기인한다.

 

그러기에 “어머니인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전례헌장 14항)를 통하여, 거기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의 사제직을 수행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런 바람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교구와 본당 사목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교우들의 전례양성에 힘써야 하며, 본인 스스로가 초기 한국천주교회 교우들처럼 전례를 생활화해야 한다. 이 글이 그런 의미에서 작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가톨릭신문, 2011년 9월 4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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