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1월 2일(금)-공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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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1-01 ㅣ No.563

공현 전 1월 2일

 

        1요한 2,22-28        요한 1,19-28

    2004. 1. 2. (금)

주제 : 우리를 위해 움직이신 하느님인데.......

 

하느님에 대해서 올바른 생각을 갖고 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아무리 많은 설명이 반복되더라도 그 하느님을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이상하게도 자기 눈으로 보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당연한 것인데도 부정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도 이런데서 크게 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1월의 둘째 날, 성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축일입니다.  지금의 터키지방에서 350년대 전후에 살았던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살던 시대는 ‘아리아니즘’이 한참 팽배하던 시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그 이론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가끔씩은 신앙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그 내용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리아니즘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부정한 이론입니다.  즉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받아들이되 그가 한 일은 하느님으로서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는 예수님은 특별한 인간이었다는 정도의 주장일 것입니다.

 

오늘 들은 요한의 첫째 편지 독서에 나오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예고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주장은 하느님의 일을 하신 분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일을 하신 분이 아니라는 주장은 그리스도 예수를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그 말은 요즘 시대에 ‘내가 하느님을 뵙는다면 믿을 텐데.......’라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보는 일은 사람이 가진 생각에 따라서 쉽게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눈은 있는 것도 없애버리고 없던 것도 있다고 우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소에 가진 자세에 따라 많은 것을 다르게 봅니다.  

 

세례자 요한의 행동에서 뭔가 남다른 것을 느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답을 얻기까지 요한을 괴롭힙니다.  자기들 생각을 적용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반복되는 ‘예수그리스도를 봐야 믿겠다’는 주장도 그런 것의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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