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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50: 신앙과 이성과 과학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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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09 ㅣ No.740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50) 신앙과 이성과 과학의 대화


신앙도 이성도 하느님에게서 왔다

 

 

교회는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 여러 분야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교황은 이와 같은 대화 중, 두 번째로 신앙과 과학의 대화를 언급하였다.

 

 

배타적 사상의 위험성

 

과학은 이성의 산물이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과 신앙이 양립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는 편견이 깔려 있다. 신앙은 과학적 기초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주장이 옳은가? 그들 중 대부분은 ‘실증주의’와 ‘과학주의’라는 이데올로기(Ideologia)를 들고 나온다. 오직 실증 가능한 학문만, 오직 과학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교황은 이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며 차분히 자기 생각을 설명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배타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교황은 이와 같은 사상을 경계한다. 오직 그것만을 신뢰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것만을 신뢰하고, 다른 것은 배척하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틀리기도 하다. 아직 검증되지 않았으나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실증과학의 영역도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다. 제한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실제로 모든 것을 경험할 수도 없다. 따라서 다른 형태의 지식의 타당성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교황은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학문의 성과를 존중하면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태도를 요구했다. “경험 과학의 방법론들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면서, 이를 신앙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신학과 같은 다른 학문과 종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242항). 

 

교황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신앙’과 ‘이성’의 관계 정립부터 시작했다. 이성적인 것은 신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다른 것이라는 인식을 불식시켰다. 신앙은 이성과 분리된 초월적인 것에만 관심을 둔 어떤 것이 아니다.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은 둘 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에, 둘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있을 수 없다. “신앙은 이성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신앙은 이성을 추구하고 신뢰합니다” (242항).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교황이 주장한 권고문의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태도가 필요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모든 내용을 다 파악하고 나서 믿겠다고 하는 태도보다는 그 모두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단 믿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습니다”(Credo ut Intelligam).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분을 탐구하십시오. 그분을 항상 탐구하기 위하여 하느님을 발견하십시오.” 

 

중세 시대의 성 안셀모(1033~1109)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신앙을 설명하면서 “이해(깨달음)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을 말씀하셨다. 신앙은 늘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신앙인은 계시 진리의 내용을 믿으면서 끊임없이 그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들이다.” 교황은 권고문에서 신앙의 참된 가치를 이렇게 표현했다. “신앙은 인간 존재를 자연과 인간 지성을 초월하는 신비에 이르도록 드높여 줍니다”(232항).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과학의 놀라운 진보를 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 정신에 주신 크나큰 잠재력을 깨닫게 되어 기쁘고 또 즐거워합니다”(243항). 교회는 과학의 진보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신앙과 자연의 빛으로 과학의 새로운 진보를 해석하며 기뻐한다. 그리고 과학의 진보가 인간 삶의 모든 단계에 있어서 참된 가치를 찾도록 도움을 준다. 언제나 그 중심에는 인간이 존재해야 하고 생명과 구원의 최고 가치가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렇게 과학과 대화할 때, 사회 전체는 사상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이성의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10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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