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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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금쪽같은 내 신앙24-25: 유아 세례와 신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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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15 ㅣ No.1994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 신앙] (24) 유아 세례와 신앙교육 (1)


신앙의 기쁨과 환희를 자녀에게

 

 

청년들에게 유아 세례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면 종종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저는 유아 세례 안 받게 하고, 아기가 커서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도록 할 거예요. 아기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언뜻 합리적인 말로 들린다. 실제로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주일학교에 보내서 신앙교육을 받게 했는데, 막상 자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왜 나의 의견도 묻지 않고 나를 신자로 만드셨나요?”

 

특히 ‘자유’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감수성은 이전 세대와는 크게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유아 세례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니면 자녀가 성인이 될 때를 기다렸다가 스스로 신앙을 선택하도록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한 강론에서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기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그 아기에게 세상에 오고 싶은지 의사를 물은 적이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성탄」, 바오로딸, 2010, 128쪽)

 

물론 자유는 중요하고 고귀한 가치이지만, 인간의 자유에 대한 환상은 버릴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 중 누구도 자기 의사로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다. 나의 가정, 부모, 이름, 성별, 기질, 성장 배경 등…. 모두는 태어나면서 타고난 조건이지 나의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서양의 근대 정신이 꿈꿨던 것처럼 인간은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 돌봄과 교육을 필요로 한다. 성인이 되면 자동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시련과 고통은 끊이지 않으며 죄와 악의 유혹이 늘 주변에 도사린다. 유아 세례는 아기가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 보호를 받아 영혼과 육신이 건강히 성장하기를 바라며, 교회와 부모가 아기를 그렇게 키우고 돌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 앞에 놓인 아기에게 그저 생물적 삶만 보장해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아기에게 삶의 역경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의미를 제시해야 합니다. … 세례는 바로 그 의미에 대한 답을 줍니다.”(「성탄」 129쪽)

 

유아 세례와 함께 시작되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아기가 죄악과 폭력, 역경과 시련 등으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줄 것이다. 아기는 거기서 신앙이 주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체득할 것이며, 어느 순간 부모의(교회의)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하게 될 것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 스스로 자기 삶을 영위하기 위해 긴 시간의 양육을 통해 삶이라는 여정에 입문해야 하는 것처럼, 신앙을 자기 것으로 살기 위해서는 신앙이라는 삶의 여정에 입문해야 한다. 실제로 신앙의 삶을 살아보면서, 삶의 역경과 어려움이나 기쁨과 환희를 신앙을 통해 관통하면서, 신앙이라는 여정 앞에서 자유로이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자녀가 성당에 나가기 싫어하고 부모에게 신앙에 대해 불만을 터트릴 때,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자녀가 신앙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찾아올 때, 그것이 열병과도 같이 왔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부모와 자녀는 서로 인내하며 그 시기가 지나기를 기다린다. 열병이 지나면 자녀는 다시금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더 성숙한 상태로 말이다. 신앙도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 중요한 것은 신뢰 관계 안에서 자녀가 신앙의 삶에 입문하도록 가까이서 동반하는 것이다. 신앙이 주는 삶의 기쁨과 환희를 함께 전해주면서 말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1월 12일,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 신앙] (25) 유아 세례와 신앙교육 (2)


죄와 악에 맞서도록 도와주는 유아세례

 

 

교회는 오래전부터 유아세례를 행해왔다. 그런데 유아세례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한 물음 역시 오래전부터 제기되었고,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교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답해왔지만, 모든 이를 설득할만한 답을 찾기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유아세례가 야기하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원죄 교리와 상관한다. 아기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죄의 사함을 받는 세례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교회는 유아세례 때 아이에게 씻길 죄를 ‘원죄’라고 부르며, 그것이 ‘아담의 죄’에서 기인한다고 가르쳐 왔다. 현대 신학은 이를 아담이 지은 죄가 마법이나 바이러스와 같이 아기에게 전해진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인간이 태어나면서 죄 안에서 모든 인간과 연대하여 살게 되는 인간 조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 아이에게 유아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젊은 부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다가온다.

 

사실 원죄는 모든 이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진리다. “사는 게 죄지”라고 하시는 어떤 어르신 말씀처럼, 인간은 악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며,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악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손상된 본성을 타고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이 짓는 죄는 개인의 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까지 전해져, 인간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죄의 사슬을 이루게 된다. 교회는 이러한 사실을 신앙과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에 유아세례를 독려해 온 것이다. 유아세례는 아이가 이러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새 인간’(에페 4,24; 콜로 3,10 참조)으로 태어나 은총의 빛 안에서 살도록 배려하는 예식인 것이다.

 

다른 한편, 유아세례의 의미를 심화하기 위해 ‘죄 사함의 필요성’ 말고 다른 논거도 조명될 필요가 있겠다. 프랑스의 성사신학자 루이-마리 쇼베 신부에 의하면, 유아세례에 대해 두 가지 근거가 교회 안에 존재해 왔는데, 하나는 아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죄의 사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데 나이의 제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갈라 3,26-28 참조)

 

두 번째 논거에 따르면, 유아세례는 원죄의 씻김만이 아닌, ‘그리스도께 속함’과 ‘성령에 의한 성화’를 위한 것으로, 자녀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양육하겠다는 다짐도 담겨 있다. 아이에게 육적인 생명만이 아닌, 아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마련해주는 것도 교회와 부모의 역할과 책무에 속한다. 물론 영원한 생명이 한 번의 예식으로 취해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세례를 통해 죄의 사함을 받은 아이가 은총의 빛 안에 살면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따르며 영원한 생명으로 숨 쉬고 양육되며 그 생명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종의 심리적 위안을 위해 유아세례를 선택하는 것은 유아세례를 통해 부모에게 주어지는 책무를 망각할 위험이 있다. 유아세례는 단순히 죄를 씻는 예식도, 영원한 생명을 위한 티켓도 아니다. 악으로 기울기 쉬운 연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앞으로 죄와 악에 저항하여, 그리스도의 빛 속에 사는 신앙의 길을 걷도록 하는 예식이다. 교회는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도록 함으로써, 아이가 죄와 악의 현실에 맞서 하느님 자녀로서 고귀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교회와 부모에게 거룩하고 기쁨 넘치는 책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1월 19일,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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