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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 여느 때와 다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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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12 ㅣ No.90

[영화칼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 2023년 감독 엄태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오로 6세 성인 교황의 전기 영화를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황이 마리아 몬티니라는 이름의 젊은 신부였던 때에 교황청 국무원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을 보는 장면이 마음 깊이 남아있습니다. 면접을 담당한 궁무처장 신부는 면접을 보러 온 신부들에게 “아침에 일어나보니 교황청이 러시아 공산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공통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마리아 몬티니 신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무일도를 바치고 아침 미사를 집전하겠다’는 답을 합니다. 영화 속 마리아 몬티니 신부의 저 대답은 여느 때의 우리 모습을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보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더불어 여느 때의 우리 모습이 주님 앞에 합당한 모습일 때, 절체절명의 순간에 끄집어낸 여느 때와 다름없는 우리의 모습이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 안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됩니다.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 속에서 아파트 주민들과 아파트로 몰려온 생존자들 사이의 갈등이 발생합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아슬아슬하게 공존해 오던 생존자들을 아파트 밖으로 내쫓기로 결의하고, 이에 생존자들은 저항하지만 결국 아파트 밖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후 황궁아파트는 견고하게 세워진 바리케이드와 차등적이고 배타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주민 규칙을 바탕으로 황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하나의 성체로 거듭납니다.

 

영화는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자신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여느 때의 모습’에 집중합니다. 생존자들의 수용 여부를 두고 주민투표를 벌일 때 주민 중 한 사람은 황궁아파트보다 집값이 더 높은 근처 타 아파트 주민들이 평소 자신들을 무시했던 기억을 끄집어내며 생존자들을 쫓아내는 것의 정당함을 주장합니다. 또 아파트 주민들은 결정적인 선택을 하거나 각자의 임무를 나눌 때 자가(自家)인지 전세인지에 따라 서로를 구분 지으며 자가인 주민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고자 합니다. 재난 상황 속에서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내리는 선택은 이처럼 평범한 상황 속에서 보였을 여느 때의 모습에서 비롯됩니다. 아파트 시세에 따라, 자신의 집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서로를 판단해 온 모습이 재난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수의 주민들과 다른 생각을 품은 이들의 모습도 비춥니다. 이들은 쫓겨난 생존자들을 남몰래 받아주거나 배급받은 생필품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생존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는 소수의 주민들입니다. 그들은 다수의 주민들에게 손가락질받거나 심지어 물리적인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지만, 다수의 주민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여느 때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향한 물리적인 박해가 거의 사라진 시대에 순교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여느 때의 모습과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을 때의 모습 사이의 괴리 없이 모두 주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으며, 여느 때의 우리 모습이 주님 앞에 합당한 모습인지를 살피고 이 같은 여느 때의 모습이 나의 희생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순간에도 망설임 없이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2023년 9월 10일(가해) 연중 제23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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