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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춘천교구의 새 등록문화재: 인제 성당과 구 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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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12 ㅣ No.615

춘천교구의 새 등록문화재 (1)

 

 

춘천교구의 건물 두 곳이 새로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에 부쳐

 

지난해 문화재 등록 신청을 했던 우리 교구의 건물 두 곳(인제성당과 구 교육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2019년 2월 14일에 등록증을 교부 받았다. 이에 특집으로 연재 중이던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 게재를 잠시 멈추고, 문화재로 등록된 두 곳에 대한 역사와 건축적 의의를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인제성당 / 등록문화재 제742호

 

인제성당은 1954년 6월 26일 홍천본당에서 분가되었으며 주보는 ‘묵주기도의 모후’ 이다.

 

인제성당은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 394번지, 해발 400m의 태백산맥 줄기 기룡산 중앙 아래에 위치한다.

 

인제본당은 설립 당시 미국 가톨릭 구제회(National Catholic Welfare Conference)의 물자와 식량의 원조와 의료지원을 통해 지역 주민에게 구호사업을 펼치며 전교하였다. 처음에는 현재의 성당 뒤쪽 공터에 천막을 설치하여 임시성당으로 사용했는데, 화재로 전소되자 미군의 지원으로 콘센트(Quonset) 가건물을 설치해 1956년 5월 새로운 성당이 건축되기 전까지 임시성당으로 사용하였다.

 

본당 공동체는 2년간 사용해온 콘센트형 임시성당이 불편하여 오남성 후베르토 신부가 설계한 현재의 성당을 완공하여 1956년 6월 7일에 축성하였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사용하던 극장 건물이었는데, 한국 전쟁 때 포격으로 파괴되어 벽체만 남게 되었다. 그 기초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군의 원조를 받아 인제성당이 완공되었고, 전쟁 중에 지어진 건물의 형태 그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당이 되기 전에 있었던 극장 건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개월 후 미8군 그리스텐 베리 장군의 요청으로 1950년대 최고의 할리우드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가 미군들을 위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여 공연을 한 장소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이 건축물의 등록 사유를 “성당의 건축과정에서 한국전쟁 직후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본당과 사제관을 하나의 건물로 축조한 방법은 동시대 기타 성당건축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인제성당만의 중요한 건축적 특징으로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2019년 3월 10일 사순 제1주일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춘천교구의 새 등록문화재 (2)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 수련소 / 등록문화재 제743호

 

우리 모두에게 낯선 이름이겠지만 이 명칭은 그동안 우리 교구 신앙교육의 요람이었던 교육원 건물의 첫 명칭이었다. 이 건물은 1939년부터 강원도 지역을 담당하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의해 1959년에 지어졌으며, 그 목적은 선교를 담당할 수녀 양성을 위한 것이었다. 실제 건축 과정에는 주교관 건축을 담당했던 중국인 기술자 가(賈)씨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인란(Thomas F. Quinlan) 주교는 이 수련소를 지어 같은 해 10월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 2명(강 베드로, 최 후밀리따스)에게 맡기고 1969년까지 수녀회 지원자와 청원자들을 위한 수련교육의 장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1948년 대구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춘천교구 양덕원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면서 교회사 연구에 몰두하였던 주재용(바오로, 朱在用) 신부가 1959년 구 주교의 요청으로 수련소 지도신부로 부임하였다.

 

그 후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에 의해 여대생 기숙사로 운영되었으며, 1977년부터는 기숙사를 폐쇄하고 가톨릭 교육원으로 개칭하였다. 이후부터는 신앙교육인 꾸르실료 교육은 물론, 공동체 묵상회(MBW), 가톨릭 농민회, 야간학교인 ‘청솔학원’ 운영, 사제피정 및 연수, 대학생 연합회 등 교육활동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1979년 3월부터 1985년 11월까지는 박토마(Thomas Stewart) 주교에 의해 착한목자수녀회가 입주하여 미혼모 보호소인 ‘마리아의 집’ 을 운영하였다. 이후 일부 공간을 가톨릭 대학생 기숙사로 사용하며 신앙교육의 장소(카나혼인 강좌, 평신도 신앙학교, 성모신심 세미나, 레지오 교육, 성령기도회, 교리교사 양성학교, 신앙인 사회학교, 구반장 피정 및 교육, 가톨릭 서원, 학생 교육 및 피정 등)로 계속 사용했다. 또한 이웃주민들과 함께 하는 ‘낙엽축제’ 와 춘천교구 사회복지회의 자선바자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수녀원 수련소와 여러 수도회 수녀들이 이곳을 사용하였기에 춘천 토박이들은 교육원 건물 앞 도로를 아직까지 ‘수녀원 골목’으로 기억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건물의 등록문화재 지정 사유를 “강원도 지역 선교를 담당할 수녀 양성을 위한 시설로 1959년 신축 이후 1962년 증축되는 과정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2동의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낸 건축기법 등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강원도 지역 선교활동 중심지라는 장소적 측면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도와 신앙교육의 공간으로 춘천교구의 역사와 함께 한 이곳이 교구 역사박물관과 사료실 및 교회 유물의 전시실과 수장고로 활용된다면 건물의 역사성을 잇게 될 것이다. 이곳이 다시금 신앙선조들의 삶을 기억하고 배울 수 있으며, 그 거룩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2019년 3월 17일 사순 제2주일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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