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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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 자선: 자선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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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20 ㅣ No.503

[교부들의 신앙 – 자선] 자선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안녕하세요?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번 달은 성 대 레오 교황을 만나러 이탈리아로 떠납시다.

 

레오 대교황(440-461년 재임)은 야만족의 침입을 두 번씩이나 물리쳤습니다. 452년 훈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하자, 교황은 황제의 사절단과 함께 만투아로 가서 훈족의 왕, 아틸라를 만나 즉시 철수하라고 설득시켰습니다. 455년에는 반달족이 오스티아를 쳐들어오자, 혼자서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를 만나 담판을 지었습니다. 비록 로마의 약탈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살인과 방화 행위는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레오 대교황은 야만족의 침략으로 멸망의 위험에 처한 로마를 구해냈을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그리스도교를 게르만족과 켈트족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레오 대교황이 말하는 ‘자선’의 참된 의미를 살펴봅시다.

 

레오 대교황은 자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자선 행위입니다. 자선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도 선행에 낯선 사람이 되지 맙시다. 나는 가난해서 겨우 먹고 살 뿐 남 도울 겨를이 없다고 말하지 맙시다. 적은 가운데 바치는 예물이 크고, 하늘의 저울은 예물의 양이 아니라 영혼의 확고한 뜻을 잽니다. 복음서에서 과부는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었고, 그것은 부자의 예물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예물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자선이 값집니다. … 그분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재산을 주시지만, 똑같은 사랑을 요구하십니다”(「설교집」, 20,3,1).

 

보잘것없는 동전 두 닢이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친 과부의 행동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자신이 가진 부의 일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적선하는 것이 자선의 전부는 아닙니다.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자신의 생명까지도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자선입니다.

 

 

자선은 주님에 대한 사랑의 행위

 

자선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의무이자 권리이지, 선택이 아닙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자선을 실천하는 의무를 면제받을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냉수 한 잔은 대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오 대교황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목말라하는 가난한 이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사람은 자기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흔한 물을 남에게 준 것도 보상을 받게 된다고 하셨으니, 주님께서는 당신 나라를 얻기 위한 간편한 방법들을 당신 종들에게 얼마나 많이 마련해 주신 것입니까! … 이 일을 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사순 시기 강론집」, 10,5).

 

그리스도인이 실천하는 자선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자비하신 당신 사랑의 손길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십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입니다. 가난한 이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은 신자들로 하여금 주님에 대한 자신들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자선 행위는 자선을 실천하는 사람만의 행위가 아닙니다. 자선 행위에는 제자들의 손을 통해 오천 명을 먹이신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사랑의 손길이 항상 관여하고 있습니다. 자선을 실천할 마음과 재산을 주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자선 행위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로운 사랑을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자비의 모상’(Imago pietatis)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자비로운 보살핌이 있는 곳에서 당신 자비의 모상을 알아보시기 때문입니다”(「사순 시기 강론집」, 10,5).

 

 

자선은 영혼의 치료제

 

레오 대교황은, ‘예수님께서 굶주린 이들, 목마른 이들, 나그네 된 이들, 헐벗은 이들, 병든 이들, 갇힌 이들에게 실천하는 사랑과 자선이 최후 심판의 재판관이신 주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 25,40 참조)라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실천하는 자선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잘못과 죄를 용서해주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고칠 치료제를 주셨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잘못을 저지른다면, 자선이 그것을 말끔히 지워 버립니다. 자선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준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설교집」, 7,1).

 

“‘물이 불을 끄는 것처럼 자선은 죄를 없앤다.’(집회 3,30)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세례의 물(baptismi aquis)과 참회의 눈물(paenitentiae lacrymis)이 죄를 씻어 주지만 자선(eleemosyna)도 죄를 없애 줍니다”(「사순 시기 강론집」, 11,6).

 

 

자선은 하느님 나라에 쌓는 천상의 부

 

레오 대교황은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자선과 돈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 잃어버릴 수 없는 천상의 부가 되며 반드시 하느님의 보상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쓰다 남은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가장 작은 몫”(「사순 시기 강론집」, 10,5)을 남겨 두고 남을 위해서는 큰 몫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후하게 대접받으신 그리스도께서 후하게 보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남아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하여 나누어주면 결국 잃어버릴 수 없는 부를 얻는 것입니다. … 이렇게 재산을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복된 일입니다”(「설교집」, 92,3).

 

 

자선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본받는 행위

 

레오 대교황은 자선을 실천할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자선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본받는 것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자선은 주님께 드린 것이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과 관대한 마음으로 자선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이의 관대함이 큰 부가되기 때문입니다.

 

“관대함 자체는 하나의 큰 부이며, 관대함의 기회는 없을 수 없으니, 거기에는 우리를 먹여 주시면서 동시에 친히 대접을 받으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사순 시기 강론집」, 10,5).

 

신자 여러분,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으로 알아보게 하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자선입니다. 따라서 자선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증언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모두 자선의 강물에 몸을 담가 주님의 자비를 입읍시다.

 

* 노성기 루보 - 광주대교구 신부로 목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가 사랑한 교부들」, 「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등을 펴냈고, 「교부들의 성경 주해-마태오 복음서 1-13장」, 「4천년의 기도, 단식」, 「대 바실리우스-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 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노성기 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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