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강론자료

2018-04-29.....부활 제5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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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4-28 ㅣ No.2203

부활 제5주일 (나해)

사도 9,26-31        1요한 3,18-24      요한 15,1-8

2018. 4. 29. 이태원

주제 : 행동에 진심을 담기

지난 금요일(=/27/18/3차남북정상회담)에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남과 북의 현실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던, 양쪽의 통치자가 만났고, 서로를 적으로 보던 관점을 바꾸겠다고 한 선언이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일이 현실에 실현되게 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협조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상하지 못한 충격으로 다가오기에 놀랍다고 여기지만, 신앙의 일은 세상의 일과 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기에, 놀랍게 여기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입니다.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은 세상의 일보다는 신앙의 일이 더 큽니다만, 사람이 신앙을 같은 형식으로 대하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농부로, 당신을 포도나무로, 우리를 가지로 표현하십니다. 농사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농부와 포도나무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의 삶을 해석하는 이론에 돈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資本主義)’가 등장한 뒤, 나와 관련된 일을 돈으로 감당할 수 있으면 농사를 직접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되었기에 모른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며, 알려고 해도 그 대답을 얻는 일이 쉽지도 않은 것이 또한 사람의 삶이기도 합니다.

 

돈을 삶의 기준으로 계산하는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포도나무와 농부의 비유는 어떤 지혜를 주는 말씀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농부와 포도나무의 비유를 안다고 말하겠지만, 그 표현을 바꾸어서 신앙인으로 살면서 우리의 삶을 하느님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사람이 양식으로 사용하는 농산물은 가지의 끝에 달리거나 뿌리와 함께 있고, 그 모습을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말하는 결실은 줄기와 뿌리의 관계에서 해석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며 줄기와 뿌리를 가꾸는 농부의 손이 없으면 결실이 생기지 않거나 생긴다고 해도 부실하게 됩니다. 시작과 끝이 연결된 모습이고, 시작과 끝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그 존재를 이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듣는 사람이겠습니까?

 

세상에서 복음을 따라 산다거나 그 복음을 실천한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잘 안다고 해도 농부와 포도나무 또 그 결실의 관계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한 관계로 해석해야 하는 얘기를 우리는 사도행전의 독서에서 들었습니다.

 

그리스도교공동체에 박해자로서 모습을 드러냈던 바오로가 삶을 바꾼 뒤, 복음선포자로 예루살렘에 나타났습니다만,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이 예전부터 알던 그의 모습은 복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박해자였기에, 복음선포자로 그를 대한 일이 없었으니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으로 산다거나, 개과천선(改過遷善,=지나간 허물을 고치고 착하게 됨)한 모습을 드러내며 사는 일이 어렵고도 힘든 일입니다. 이럴 때, 삶의 모습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었다고 하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바뀌었다고 하는 사람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일까요? 사람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판단은 말로 표현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 자기의 삶을 드러내는 표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사람의 변화를 확인하는 일에 시간은 필요한 법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옳은 사람이라고 드러내려면, 사도요한이 쓴 편지에 나오는 것처럼, 형식적인 말이 글로서가 아니라 행동과 진실로 보여야 하는 일입니다. 말을 앞세우고 그다음에 앞세운 말을 따라서 행동을 좋게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때 그가 바라는 효과는 그의 삶에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은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동에 담는 것만큼이나 나의 진심이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충격으로 다가왔을 지난 금요일(4/27)의 판문점선언이 우리의 삶에도 드러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하느님께 청하는 일과 함께 행동으로 협력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찾는다면, 우리는 어떤 일부터 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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