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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 엘살바도르 교회 (3) 내전의 후유증 앓는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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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2 ㅣ No.500

[평화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 멕시코 · 엘살바드로 교회] (3) 내전의 후유증 앓는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시성 앞둔 로메로 대주교의 외침 속에 담긴 평화를 보다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방문단과 차베스 추기경이 산살바도르대교구 주교좌 구세주대성당 지하 복자 로메로 대주교 무덤에 조성된 와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멕시코 교회나 엘살바도르 교회는 비슷한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내전의 상처와 폭력, 극심한 빈부격차와 마약 등은 여전히 현안이다. 다만 멕시코혁명이 1910∼1920년대 일이라면, 엘살바도르는 내전이 1992년 평화협정으로 막을 내렸기에 불과 26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러기에 상처는 ‘진행형’이고, 화해는 풀리지 않은 숙제다. 멕시코를 떠나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로 향했다.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1917∼1980) 대주교가 피를 흘린 ‘순교자의 땅’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산살바도르 대교구를 방문한 지 보름 후에 로메로 대주교에 대한 기적 심사가 끝났다는 교황청 시성성의 교령이 발표됐다. 이로써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은 시성식만 남은 셈이다.)

 

개봉된 지 30년도 넘은 영화가 한 편 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6년 작 영화 ‘살바도르’(Sal vador)다. 

 

엘살바도르 내전을 취재한 종군기자 리처드 보일의 기록을 재구성한 영화다. 영화는 1980년 로메로 대주교가 제대에서 성찬 전례 중 총격을 받아 숨지고, 극도의 가난과 경제적 수탈, 극한의 정치적 억압 속에서 연일 수십 명씩 끌려가 사살되거나 실종되는 상황을 생생히 그려냈다. 카메라에 담긴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은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본질적 성찰을 우리에게 안겼다. 

 

- 차베스 추기경이 역사센터에서 로메로 대주교 순교 당시 상황에 대해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방문단에게 설명하고 있다.

 


12년 내전 끝났지만 상흔은 그대로 

 

그 영화의 무대, 산살바도르로 들어갔다. 내전은 끝났고, 노변은 선거운동의 열기로 흥겹다. 그런데 어딜가나 눈에 띄는 건 총기를 든 경비원과 군인들이다. 12년간의 내전은 끝났지만, 다 끝난 게 아닌 듯하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 방문단은 복자 로메로 대주교의 순교 터부터 찾았다. 말기암 환자들의 호스피스 병동인 천주의 섭리 병원 경당이다. 로메로 대주교의 ‘살아 있는 기억’으로 평가받는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주례로 서울 민화위 방문단을 위한 미사가 봉헌됐다. 얕게 비껴드는 오후의 석양에 비친 제대는 순교지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평화롭다. 우리말과 스페인어로 복음 말씀이 번갈아 봉독되고, 차베스 추기경 강론 또한 동시통역을 통해 전해진다.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잡아야 합니다. 그 생명의 길은 아름다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함께하자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으며, 70년 분단을 겪는 한반도와 온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평화를 비는 기도 소리가 제대를 넘어 성당 밖으로 흘러간다. 영성체 직후 마리아 훌리아 가르시아(가르멜전교수녀회) 수녀는 로메로 대주교의 당시 순교 장면을 설명했다. 

 

“그날 한 언론인의 장례 미사가 있었습니다. 사람도 많지 않았고, 젊은 신문기자와 유족만 있었습니다. 독서할 사람도 없었고요. 거양성체를 하는 순간 총성이 울렸고, 로메로 대주교님은 제대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대주교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평화를 빕니다’라는 한마디였습니다. 그 순간, 기자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 로메로 대주교님은 그렇게 이 제단에서 죽으셨지만, 영원히 사실 것입니다.”

 

- 1980년 로메로 대주교가 순교 당시 입고 있던 제의와 장백의, 클러지셔츠.

 

 

하느님 백성 위해 목숨 바친 목자 

 

하느님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로메로 대주교와 피를 흘리는 대주교의 시신을 안은 수녀들의 망연한 표정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미사를 봉헌한 뒤 일행은 병원 옆 로메로 대주교의 주교관이었던 ‘로메로 대주교 역사센터’로 향했다. 센터로 들어서니 소박한 전시물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과 그림, 실물 크기 전신상과 함께 로메로 대주교의 침상과 서재, 소지품들, 주교 십자가와 목장, 순교 당시 입고 있던 제의ㆍ장백의 등이다. 마치 ‘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로 하느님 백성과 함께했던 가난한 목자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북한 교회 위해 함께 기도 

 

방문단은 이어 이튿날 로메로 대주교의 유해가 봉안된 산살바도르대교구 주교좌 구세주 대성당 지하 경당에서 북한 교회 형제들과 엘살바도르, 한국의 가난한 형제자매들을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정세덕 신부는 미사 강론을 통해 해방 당시 5만 8000여 명에 이르던 북녘 천주교회가 와해된 과정과 순교자들을 소개한 뒤 “아직도 북에서 신앙을 고백할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산살바도르대교구는

 

1842년 9월 과테말라대목구에서 분리돼 대목구로 설정됐다. 1831년 9월 조선대목구를 설정한 그레고리오 16세 교황 재임 시기에 산살바도르대목구도 설정됐다. 1913년 대교구로 승격했고, 올해로 교구 설정 176주년을 맞는다.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시를 관할하며, 시민 289만여 명 중 신자가 159만여 명으로, 복음화율은 55%다. 본당은 166개, 사제는 교구 사제 202명, 수도 사제 196명 등 398명이다. 수도자는 수사 318명, 수녀 423명 등 741명, 신학생은 51명이다. 현 교구장은 호세 루이스 에스코바르 대주교, 보좌는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3월 18일, 글·사진=오세택 기자]

 

 

[인터뷰] 호세 루이스 에스코바르 대주교(산살바도르대교구장)

 

“내전의 아픔을 공유하고 형제애를 나누며 평화를 건설하는 데 함께합시다.” 

 

산살바도르대교구장 호세 루이스 에스코바르 대주교는 “엘살바도르에서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아픔에 대한 소식을 많이 듣고 있다”며 “같은 내전을 겪었고, 그 상처도 같이 간직하고 있기에 그 아픔에 깊이 공감한다”고 말문을 뗐다. 이어 “엘살바도르 가톨릭교회는 그런 아픔을 안고 있기에 늘 고통받는 하느님 백성과 함께하며 불의와 부패, 불평등, 특히 부익부 빈익빈의 상황을 개선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긴 엘살바도르 내전은 교회 중재를 통해 평화협정이 맺어지면서 끝났고 민주주의 또한 복원됐지만, 내전 당시 학살이나 반인륜 범죄가 총사면령으로 묻히면서 화해와 치유 문제는 미해결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실 규명을 통해 정의가 이뤄지고, 기억의 정화를 통해 용서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정의가 반드시 처벌을 동반하지는 않지만, 진실이 밝혀져야 정의는 이뤄진다는 것, 그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에스코바르 대주교는 나아가 “내전이 끝난 지 26년이 흘렀지만 엘살바도르의 극심한 가난과 빈부격차, 마약과 폭력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며 “아직도 엘살바도르에는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오늘의 엘살바도르는 내전의 상처 치유와 마약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며 “교회는 그래서 진실 규명과 폭력 종식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3월 18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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