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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프란치스칸 영성 -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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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3 ㅣ No.599

프란치스칸 영성 - 사랑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이러한 부르심 안에는 선교와 이웃사랑의 소명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하라는 소명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이사 64,7)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에게 첫째가는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31)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고 계신다.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모여 사는 커다란 공동체인 생태계. 인간은 이러한 커다란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살아간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생태계의 주보성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성인이 살아갔던 삶이 생태계와 어우러져 살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작품이고 그 때문에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바로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보고 있다.

 

“프란치스코의 가장 높은 지향과 주된 바람과 최고의 결심은 복음을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실행하는 것이었고,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열의를 다하여 애타게 갈망하는 온전한 정신과 뜨겁게 타오르는 온전한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었다.”(1첼라노 84) 이러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은 그를 따르는 형제들을 위한 생활양식, 즉 회칙에 우선적으로 반영되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나에게 거룩한 복음의 양식(樣式)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 교황님께서 나에게 확인해 주셨습니다.”(유언 14-15) 그래서 인준 받은 회칙의 처음과 끝은 복음을 실행하고 따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 안에, 소유 없이, 정결 안에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인준받은 회칙 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할 것입니다.”(인준 받은 회칙 12,4) 복음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프란치스코에게는 소명이었고, 사랑의 실천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였고 하느님께 나아갔다.

 

“어디에서나 그는 늘 예수께 사로잡혀 있었다. 마음에 예수를 품고 있었고 입에도 예수, 귀에도 예수, 눈에도 예수, 손에도 예수, 나머지 다른 지체에서도 늘 예수를 모시고 다니었다.”(1첼라노 115) 프란치스코 성인을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이는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랑의 힘은 너무나 크기에 모든 덕 가운데에서도 으뜸이 되는 “덕”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사랑을 지닐 때 인간은 부유해지고 다행스럽고 행복하며,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벌거벗고 비참한 거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온 영으로도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신 하느님

 

프란치스코의 삶을 말할 때 하느님께 대한 갈림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성인이 그렇게 살았고, 형제들에게 권고한 하느님 사랑의 길은 무한하신 하느님 사랑에 대해 응답하는 것이었다. 하느님 사랑에 빠진 프란치스코는 사랑하는 하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게 된다. 프란치스코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 분위기, 영성의 특징, 형제회의 첫째가는 법은 사랑의 법이 되게 된다. 이는 “서로 사랑하라”는 첫째가는 계명을 말씀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함이다.

 

“세속을 떠난 우리에게는 이제 힘써 주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밖에 다른 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는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로 된 땅이 되지 않도록 온갖 주의를 다합시다”(인준받지 않은 회칙 22,9-10)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성인의 삶은 하느님 사랑에 둘러싸인 생활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온 몸과 온 마음과 온 생명을 주셨고 지금도 주시는 주 하느님을,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속량하셨고 오직 당신 자비로써 구원하실 주 하느님을, 불쌍하고 비참하며 썩었고 악취가 나고 배은망덕하고 악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셨고 지금도 주시는 주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과 용맹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모든 기운과 온갖 노력과 온갖 정열과 온갖 애와 온갖 욕망과 뜻을 다하여, 우리 모두가 사랑하도록 합시다.”(인준받지 않은 회칙 23,8) [성모기사, 2018년 2월호, 최상유 막시모(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프란치스칸 영성 – 사랑

 

 

영혼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가난과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하고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다. 굳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나와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사람보다야 나와 의견도 맞고 사고도 비슷한 사람과 만나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을 진정 사랑했다. 성인이 자유로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아가기 위해 청빈을 강조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물질적인 청빈만이 아니라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그것이 사랑으로 형제애로 드러나게 되고 나아가 피조물을 향한 사랑과 우주적 사랑으로 심화되게 된다.

 

성인은 아시시 주교 앞에서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놀라운 마음의 자유를 체험하였다. 성인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기를 원했다. 이는 지극한 가난의 정신을 입음으로써 세상의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기를 원했고, 이를 통해 하느님께 깨끗하고 자유로이 나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성인은 사랑의 정신이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는 자유의 길을 택하였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글 안에 드러난 사랑

 

권고 9 사랑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박해하고 중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따라서 자기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당하는 해(害)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가슴 태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줍니다.”(권고 9)

 

프란치스코 성인은 영적인 권고에서 이와같이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박해하며 저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고한다. 이는 하느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그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슴 아파하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권고 24-25 참된 사랑

 

“형제가 건강하여 보답해 줄 수 있을 때 그 형제를 사랑하는 만큼, 형제가 앓고 있어 보답을 받을 수 없을 때도 그만큼 형제를 사랑하는 종은 복됩니다.”(권고 24)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 행위는 보답을 바라고 하는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사랑의 행위여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참된 사랑이고, 보상을 바라거나 보답을 원하는 행위는 거짓 사랑이라는 것이다.

 

모든 형제가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기보다 봉사하고 희생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그래서 형제들이 모두 구별 없이 작은 형제들이라고 불리기를 원하셨다. 작은 형제들이 더욱 작아지기를 원하셨고, 더욱 사랑하기를 원하셨다. 형제회 초기 선교를 떠나고 떠돌아다니는 생활양식을 가진 형제들은 얼굴 보기조차 힘들었기에 서로 어디에서 만나든지 가족임을 기억하고 서로 따뜻하게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다.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도 자기와 함께 있을 때처럼 형제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 형제 앞에서 사랑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을 그 형제 뒤에서도 그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종은 복됩니다.”(권고 25)

 

 

회칙 안에 드러난 사랑

 

수도회가 창설될 때 회칙이 아니라 생활이 먼저 있었고, 이러한 생활을 바탕으로 회칙이 만들어졌다. 복음을 실행하는 형제들의 삶은 복음을 자의적인 해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복음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 작은 형제들의 삶인 것이다.

 

인준받은 회칙 1장 첫 구절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라 살기를 희망하는 형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작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 안에, 소유 없이, 정결 안에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순종, 청빈, 정결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이 바로 형제들의 삶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강조하고 말했던 형제적 사랑에 관한 내용은 회칙의 여러 곳에서 발견 된다.

 

“어떤 형제도 다른 형제에게 악한 짓을 하거나 악한 말을 하지 말 것입니다."(인준받지 않은 회칙 5,13)

 

“모든 형제는 누군가를 중상하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 형제들끼리 혹은 다른 사람들과 말다툼하지 말 것이며 (…)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지며,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니 성을 내지 말 것입니다. (…)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서로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라고 사도가 말하듯이 서로 간에 지니고 있는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중상하지 말 것입니다. 중상꾼과 험담꾼은 하느님의 미움을 삽니다’라고 적혀 있으니, 불평하거나 남을 헐뜯지 말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언제나 온유하게 대하면서 온순해야 합니다. 판단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다른 사람들의 미미한 죄들을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쓰라린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더 큰 죄를 돌이켜 볼 것입니다.”(인준받지 않은 회칙 11,1-12)

 

 

사랑의 이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19)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리스도께서 사랑했던 영혼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을 그리스도의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하느님 사랑에서 출발한 성인의 사랑의 마음은 회칙에서 드러난다.

 

“우리를 박해하고 책망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힘쓰십시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고 중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하고 주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인준받은 회칙 10,10)

 

“다른 이들로부터 핍박을 당하더라도 하느님 때문에 그들을 더욱더 사랑하도록 할 것”(권고 3,8)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사랑은 하느님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느님 때문에 형제들은 어느 누구도 차별이나 구별 없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또한 형제들은 “누가 어떻게 죄를 짓든, 하느님의 종이 이 때문에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흥분하거나 분개한다면, 스스로 과오를 쌓는 것입니다.”(권고 11,2)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발견한 성인은 어떠한 형제와도 하느님은 갈림 없는 사랑과 자비하심을 보여주시는데, 인간적인 시선으로 형제를 미워하고 판단할 수 없기에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방식

 

수도자로서, 프란치스칸으로서 복음은 온전히 따라야할 것이다.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생활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혹은 자신에게 맞게 해석하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착하고 온유한 성격의 소유자는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2)라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성격적으로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자기가 지껄인 쓸데없는 말을 심판 날에 해명해야 할 것이다”(마태 12,36)라는 말씀을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활동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고 하신 말씀을 기꺼이 따를 수 있을 것이다. 검소하고 욕심 없는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면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는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내성적이고 침묵을 잘 지키는 사람 같으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는 말씀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이 즐거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개인적인 성향과 전혀 반대되는 일을 하거나 상황에 처해 있을 때도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어떠한 상황 안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에 하느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를 지녀야 함을 강조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프란치스코

 

예수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구약에서의 사랑의 요구는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마태 5,43)였다. 자기 마음에 들고 자신과 이야기가 통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을 열고 서로 대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은 구약의 내용과 달랐고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계명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라 살기를 갈망한 사부 성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했다. 성인의 이러한 마음은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이 아닌 복음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려고 하였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1베드 3,9)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공동체 안에서의 형제적 사랑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였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어떠한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더라도 기꺼이 이겨낼 수 있는 신심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결과물이다.

 

모든 선을 내려 주시는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게한다. “그리고 형제들은 어디에 있든지 어디서 만나든지 한 가족임을 서로 간에 보여 줄 것입니다. 그리고 신뢰심을 가지고 필요한 것을 서로 간에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기 육신의 자녀를 기르고 사랑한다면 형제는 자기 영신의 형제들을 한층 더 정성되이 사랑하고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형제 중에 누가 병이 나면 다른 형제들은 자기 자신을 돌보아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에게 봉사해야 합니다”(인준받은 회칙 6,7-9)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나그네와 떠돌이처럼 생활하기를 원했던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따라 형제들이 복음을 실행하면서 세상을 두루 다녔기에 한곳에 모이기 힘들었지만 이러한 가족의 정신은 그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되었다.

 

 

피조물 사랑

 

생태계의 주보성인이라는 호칭을 받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특별하다. 성인의 삶은 철저히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따르는 삶이었다. 사랑이신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던 프란치스코는 피조물의 사랑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성인에게 있어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장소가 되어 주었다. 하느님을 향한 전적인 사랑의 마음이 창조된 모든 피조물 안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창조주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의 형제, 자매들이여”(1첼라노 81)라는 말에서 프란치스코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성인은 미미한 피조물조차도 똑같은 기원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형제, 자매라고 부를 수 있었다. 피조물을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수 있었던 근거도 한 분이신 하느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신 것에 있다.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성인의 눈에는 세상 모든 창조된 피조물이 하느님의 손길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기뻐하였다. 특별히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그를 창조주의 모상을 지닌 사람들과 모든 자연에게 더 친절한 형제가 되게 하였다. 태양을 형님, 달을 누님, 별을 자매 등으로 부름으로써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우주론적 형제 관계는 하느님과 동떨어진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의 형제애로 뭉쳐지는 것이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다리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있어서 세상의 모든 창조된 만물은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그는 창작가이신 그분을 찬미하였다. 세상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선하신 하느님의 매우 밝은 표상으로 보았다. 피조물들에게서 무엇을 발견하든 그는 그것을 창조주와 관련시켰다. 그는 주님의 손에서 빚어진 모든 작품 안에서 즐거워하였고, 유쾌한 사물들의 배후의 뜻을 살핌으로써 그 사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이성과 원인을 보았다.

 

그는 아름다운 사물들 안에서 아름다움 자체를 보았다. 모든 사물들이 그에게는 선이었다. 그는 ‘우리를 만드신 분은 가장 좋으신 분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분의 발자국이 서려 있는 사물들을 통하여 그는 어디서나 사랑이신 그분을 따라갔다. 그는 홀로 모든 사물에서 사다리를 만들어 그 사다리를 밟고 옥좌로 올라갔다.”(2첼라노 165)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있어서 피조물은 하느님이 거니신 발자취이고, 하느님의 숨결이 곳곳에 묻어 있는 창조된 모든 세계는 좋기만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피조물을 사다리 삼아 하느님께 나아가려고 했다. [성모기사, 2018년 3월호, 최상유 막시모(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프란치스칸 영성 – 사랑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

 

기도하는 삶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께 특별한 은총을 받아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

 

성인은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마실 때나…”(1첼라노 71) 언제나 하느님께 중단 없이 기도하였다. 이런 프란치스코 성인은 “기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스스로가 곧 기도였던”(2첼라노 95)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모두가 중단 없이 기도하기를 원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은 특별한 하느님 체험과 함께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죄인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필요한 조건에 대해 성인은 중단 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에 대해서 말한다. 이는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이 세상을 위해 직접 오셨으니 우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로 그분께 응답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성인에게 있어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구원사업에 감사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기도의 음률만을 생각해서는 안되고, 하

느님과의 일치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프란치스칸 기도는 정적인 기도 즉, 감정을 포함시키는 기도이고, 자기 자신을 비우고 사랑의 길로 감으로써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목표로 한다.

 

“목소리의 음률보다는 마음의 울림을 깊이 살펴, 하느님 앞에서 열심히 성무일도를 바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목소리는 마음과, 마음은 하느님과 화음(和音)을 이루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목소리를 곱게 내어 사람의 귀를 매혹하지 마십시오.” (형제회 편지 41-42)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회에 편지를 보내시면서 기도는 하느님과 마음의 일치에 있는 것이지 기도의 음이나 기도의 양식에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셨다.

 

정결한 삶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성인은 마음의 깨끗함과 정신의 단순성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억제하고 마음에 깨끗함을 지닌 영혼은 하느님과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온갖 장애를 멀리하고 모든 근심 걱정을 물리쳐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무엇보다도 주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일, 즉 그분을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정신으로 섬기고 사랑하며 공경하고 흠숭하도록 하십시오.”(인준받지 않은 회칙 22,26)

 

정결의 목적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순수한 마음과 순수한 정신으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정결을 보호하고 유혹을 이기기 위한 프란치스칸 방법은 사랑이다. 사랑에서 포기가 나오고 포기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정결을 거스르는 유혹을 성공적으로 이길 수 있다. 어떤 형제가 정결의 유혹으로 고민하여 지도를 요청할 때,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 형제를 깨끗한 사랑, 신뢰하는 사랑, 자아를 모르는 사랑의 분위기로 인도하였다.

 

“거룩한 사랑은 모든 마귀의 유혹과 육의 유혹 그리고 육의 모든 두려움을 부끄럽게 합니다.”(덕 인사 13)

 

 

태양 형제의 노래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좋으신 주님,

찬미와 영광과 영예와 모든 찬양이 당신의 것이옵고,

홀로 지극히 높으신 당신께만

이것들이 속함이 마땅하오니,

사람은 누구도 당신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당하나이다.

 

내 주님, 당신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찬미받으시옵고,

그 가운데 각별히 주인이신 해님 형제와 더불어

찬미받으소서.

해님은 낮이옵고,

그로써 당신께서 저희를 비추시나이다.

 

아름답고 장엄한 광채로 빛나는 해님은,

지극히 높으신 당신의 모습을 지니나이다.

 

내 주님, 달 자매와 별들을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당신께서는 빛 맑고 귀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나이다.

 

내 주님, 바람 형제를 통하여

그리고 공기와 흐린 날씨와 갠 날씨와

모든 날씨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저들로써 당신 피조물들을 기르시나이다.

 

내 주님, 쓰임새 많고 겸손하고 귀하고 순결한

물 자매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내 주님, 불 형제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그는 아름답고 쾌활하고 씩씩하고 힘차나이다.

 

내 주님,

우리 어머니인 땅 자매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그는 우리를 기르고 보살피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온갖 열매를 낳아 주나이다.

 

내 주님, 당신 사랑 까닭에 용서하며,

병약함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이들을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평화 안에서 이를 견디는 이들은 복되오니,

지극히 높으신 이여, 당신께 왕관을 받으리로소이다.

 

내 주님, 우리 육신의 죽음 자매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살아 있는 어느 사람도 이를 벗어날 수 없나이다.

 

불행하옵니다, 죽을 죄를 짓고 죽는 이들이여!

복되옵니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실천하며

죽음을 맞이할 이들이여,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이다.

 

내 주님을 찬미하고 찬양들 하여라.

감사를 드리고, 한껏 겸손을 다하여 주님을 섬겨라.

 

‘태양 형제의 노래(피조물의 노래)’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피조물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잘 알려주고 있다. 하느님 사랑이 모든 피조물 안에 깃들어 있고 이 사랑을 발견하면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기에 성인은 작은 풀과 풀벌레조차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이러한 사랑은 구별도 차별도 없이 모든 세상에 평등하게 존재한다.

 

그렇기에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형제도 하느님 사랑의 손길 위에 있다. 더 나아가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사랑의 손길을 보았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광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깊은 사랑에 빠진 프란치스코 성인은 지상 생활을 하면서도 천상의 하느님을 끊임없이 찾고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기 좋아하셨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 안에는 하느님의 손길이 묻어 있다. 형제들 안에도 동물과 식물 그리고 말 못하는 자연, 더 나아가 모든 우주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 이를 깊이 인식한 프란치스코는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보는 사랑의 시선은 하느님에게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고, 그를 통해 보편적 사랑과 우주적 사랑의 신비로움이 이루어진다. [성모기사, 2018년 4월호, 최상유 막시모(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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