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최양업 신부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에 대한 치유의 글쓰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2 ㅣ No.883

최양업 신부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에 대한 치유의 글쓰기

 

 

국문 초록

 

본고는 최양업 신부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의 서술 양상에 관해 논의한다. 최양업 신부는 서한을 통해 조선으로 입국 과정 혹은 목격 · 조사한 신자들의 처참한 삶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최양업 신부가 작성한 서한은 단순히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넘어선다. 이들은 특정한 문체를 활용한 경험 서술을 통해 서한의 의미를 형상화한다. 이때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서는 자신의 경험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신자들의 삶에 대해 고백적 문체를, 그리고 목격이나 조사를 통해 기록한 신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전(傳) 양식의 문체를 활용하여 서술한다. 이를 통해 전자에서는 자신과 신자들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선한 목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자기 인성에 관한 담화적 이미지를, 후자에서는 고난의 현실을 극복한 교훈적 인물을 형상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최양업 신부는 서한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고난의 상흔을 경험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치유의 글쓰기를 지향한다. 최양업 신부는 고난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선한 목자로서의 희망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 대해 종교적 믿음을 활용하여 대처한다. 그리고 이를 통한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자기 자신의 좌절된 희망에 대한 복원과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고난을 이겨낸 공동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지식을 활용한 수행적 치유의 가능성을 서술한다. 그리고 박해를 극복한 인물에 대한 소통 공동체의 공감과 정서적 몰입을 바탕으로 그러한 가능성으로의 참여를 촉구한다. 이를 통해 서한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공동체 모두에 대한 치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처럼 최양업 신부의 서한은 고난 경험의 서술을 통해 자신과 신자 공동체 모두에게 치유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다성적 텍스트성을 형성한다.

 

 

1. 서론

 

본고는 최양업 신부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의 서술 양상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최양업 신부가 천주교 관련 상흔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고난 경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신과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을 치유하려 했는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며, 김대건에 이어 두 번째 조선인 신부가 된 최양업은 귀국 후 12년간 활동하며 ‘땀의 증거자’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많은 신자와 함께 생활하였다. 이러한 와중에도 앵베르 주교가 작업한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를 다블뤼, 베르뇌 주교와 함께 보완 · 정리하여 신자들에게 필사본으로 보급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순교자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들의 행적에 관해 스스로 조사하여 기록하는 등 수많은 저술 활동을 펼쳤다. 아직 성인품에 오르지 못하고 있지만, 다양한 활동을 통해 초기 조선 천주교회의 기반을 다지는 데 미친 최양업 신부의 영향력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동안 최양업 신부의 다양한 저술과 삶 그리고 영성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1) 이 과정에서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 시절 스승 신부에게 보낸 19통의 서한은 그의 생애와 활동 내용, 신심과 업적에 대한 이해는 물론, 조선 입국로 개척의 역사, 박해 시대 교우촌의 모습과 생활상, 신자들의 신심과 복음의 확대 과정, 조선의 정치 현실과 풍습 등에 대해 알려주며 다양한 연구 분야의 기본 자료로서 기능한다. 특히 샤를르 달레 신부가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를 저술하기 위해 최양업 신부 서한의 많은 부분을 인용한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2), 그의 서한은 초기 천주교회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史料)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때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과정은 사건에 대한 객관적 재현을 넘어선다. 사건을 기록하는 서술자의 기억 메커니즘에 의해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3) 그리고 이것에 대한 글쓰기의 과정은 그 자체로 자율적인 담론의 세계를 구축하며, 의식을 재구조화한다.4)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과정에는 사건을 바라보는 서술자의 윤리성이 개입될 수 있다.5)

 

이는 최양업 신부의 서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그동안 최양업 신부 서한의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고난 경험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즉 ‘글쓰기 양상’에 관한 논의는 조선의 사제로서 최양업 신부가 지닌 윤리적 지향점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2. 이론적 전제 : 경험 서술에 대한 구성주의적 접근

 

최양업 신부는 자신의 경험 혹은 목격한 사건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경험 서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관되게 순교자를 비롯한 신자들과 자신의 삶을 서술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최양업 신부의 고난 경험 서술 의지는 조선에 입국하기 전부터 찾아볼 수 있다.6)

 

이렇듯이 훌륭한 내 동포들이여, 이렇듯이 용감한 내 겨레인데, 저는 아직도 너무나 연약하고 미숙함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나 저도 신부님들의 그다지도 엄청난 노고와 저의 형제들의 고난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수난에 부족한 것을 채워, 구원 사업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만일 저의 미소한 지위와 능력 부족이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많은 글을 써서 우리 회의 장상들과 지도자들에게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형제 신자들에게 이 사정을 두루 알려 드렸을 것입니다(두 번째 서한 中).

 

위 서한은 최양업 신부가 조선으로 입국을 기다리던 팔가자(八家子)에서 작성한 것이다. 인용을 통해 최양업 신부가 동포들의 순교에 동참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능력 부족이 가로막아’ 조선 천주교 순교자들에 대해 기록하여 알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조선 입국 전부터 지니고 있던 사제로서의 소명 의식과 자신에 대한 성찰은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기념하게 하려는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최양업 신부가 헌신적으로 신자들의 삶에 대해 정확하게 서술하려는 모습은 서한 전체를 관통하여 나타난다.

 

금년에는 하느님의 허락하심으로 다행히 연례 공소 순회를 일찍 마쳐서 잠시 동안 휴가를 얻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렵니다. 순교자들의 행적을 여러 증인들의 말을 토대로 하여 정확히 기록하려 합니다. 저의 형제들과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이 제공한 증언도 포함하여, 순교자들과 함께 살았던 증인들, 또한 순교자들과 함께 감옥에서나 형벌을 당할 때 함께했던 동료들로부터 들은 증언들, 그리고 순교자들이 순교하기 전에 살았던 생활에 관한 증언들을 가능한 대로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충실하게 서술하도록 제 능력껏 힘쓸 작정입니다(여덟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힘들고 바쁜 일정 속에서 얻은 짧은 휴가 기간에도 순교자들이 고난을 경험하는 모습과 순교 이전의 삶에 대해서 조사하여 가능한 ‘정확하게 묘사하고 충실하게 서술하도록 제 능력껏 힘쓸 작정’이라고 다짐한다. 이처럼 최양업 신부의 서한은 단순히 자신의 생활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친교적 기능을 넘어선다. 이것은 자신과 신자들의 ‘고난 경험을 기록하고 소통하기 위한 글쓰기’로 평가할 수 있다.

 

최양업 신부가 작성한 19통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 서사는 《기해일기》나 《병인치명자전》과 같은 순교자 약전이나 증언록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현실을 알리고, 신자들의 삶을 기억, 전승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작은 책의 끝쯤에 가서는 많은 순교자들의 행적이 간략하게 기록되거나 어떤 것은 아예 몽땅 빠졌습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완전한 역사를 위해서나 신자들의 교화를 위하여 재미있고 중요한 것이 적지 아니할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자비로 오랫동안 서원으로 맹세했던 대로 저의 동료들에 대하여 더욱 주의 깊게 고찰하고, 저의 조상들의 순교 사실을 더욱 세심하게 조사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위에 언급된 순교록에 보면 저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매우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여덟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기존 순교록이 ‘세심하게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것을 보완하겠다고 말한다.7) 다시 말해, 공동체에 순교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여 그들의 삶을 기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난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신자들의 교화를 위하여 재미있고 중요한 것이 적지 아니할 것입니다’와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재미있고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려 한다. 즉 신자 공동체를 유지하고 신심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선택하여 기존 순교록보다 더욱 사실적이며 구체적으로 고난 경험에 대해 서술한다.

 

이처럼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경험 서사는 박해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전승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자 공동체를 교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서술된다. 따라서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 서사는 서한이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글쓰기 규범 속에서 외부 세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적 사건을 특정한 서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진다.’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에 따르면 “주어진 과거 사건들의 집합은 그 자체로 비극이나 희극 또는 풍자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는 사건들에게 하나의 서사 유형을 부여함으로써 사건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8) 그에게 있어 역사적 사건의 의미는 사실을 올바로 재현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구성했는가, 즉 ‘구성 형식 그 자체’에 있다.9) 따라서 화이트는 19세기 유럽에서 나타난 역사 서술의 의미에 관하여 논의하기 위해 사건의 사실성이 아닌, 플롯과 논증 그리고 이데올로기 사이의 서사적 연관성10)을 통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관해 살펴본다. 다시 말해,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역사가가 서술하고 있는 사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상의 구성주의적 역사 서술의 관점을 바탕으로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이 서술되는 양상에 관해 논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양업 신부가 고난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연구할 것이다.

 

 

3.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의 서사화

 

1) 고난 경험 서사를 통한 자기-인성의 형상화

 

먼저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자신의 경험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신자들의 삶’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겠다. 이때 최양업 신부는 자신의 경험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자들의 삶을 수신자와의 친밀성과 신뢰도를 전제로 하는 ‘고백적인 문체’를 통해 서사화한다. 서한과 같은 장르는 자신의 내면을 고백할 만한 수신자와의 친밀성과 신뢰도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서한은 일반적인 형식의 글쓰기보다 내면적 심정에 대한 고백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최양업 신부는 서한을 시작하면서 수신자의 안부를 물어보는 과정이나11), 이후 마무리하는 과정12)을 통해 스승 신부와의 친밀성과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믿고 따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내면 심정에 대해 고백한다.

 

아직도 어쩔 수 없이 이 귀양살이하는 눈물의 골짜기에서 또다시 신부님께 서한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근심을 신부님과 함께 나눔으로써 괴로움을 덜어서 마음이 좀 가벼워지려는 것입니다(네 번째 서한 中).

 

위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최양업 신부는 스승 신부에게 ‘귀양살이’로 표현되는 조선에 입국하지 못하는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면서 내면적 심정을 고백하고,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저의 근심’을 일으키는 자신의 경험과 사건에 대한 심정을 서술한다.

 

이러한 모습은 먼저 최양업 신부가 조선으로 입국하는 과정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금 우리는 두 번째로 해로 원정을 시도하였습니다. 지난 1년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허송세월만 하였습니다. …금년에는 양편에서 미리 약속을 하고 우리는 마카오의 선박 한 척을 타고 백령도로 향하였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친애하는 자랑스러운 전우였고, 지금은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충실한 천상 수호자가 된 김 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되었던 곳입니다. …우리의 선장은 영국인이 작성한 해도를 따라서 항해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해도에 그려진 섬을 찾기는 하였으나, 그 해도가 정확하지 못하여 잘못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다시 상해에서의 귀양살이로 되돌아와 있습니다. 아마 우리를 영접하러 오던 저 가련한 신자들이 포졸들의 손에 붙잡혔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우리의 포교지 전체가 또다시 박해자들의 참혹한 광란으로 마구 난폭하게 짓찢겨졌는지도 모릅니다(여섯 번째 서한 中).

 

이 마지막 원정은 그 이전의 여행들에 비하여 지루하고 길었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더욱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희망은 훨씬 더 적어 보였습니다마는, 그럴수록 저로서는 내적으로 더욱 큰 신앙을 불러일으켰습니다(일곱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자신이 조선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친애하는 자랑스러운 전우’나 ‘참혹한 광란’ 같은 표현을 통해 사건에 대한 자신의 내면적 심정을 보여준다. 또한 입국 과정에서 고난을 경험하였지만, 그 속에서 더 큰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즉 입국 과정에서 거쳐 간 장소, 경험한 사건을 통해 ‘조선 입국로 개척에서 경험한 고난’을 서술하면서, 동시에 그와 연관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다.

 

이러한 모습은 입국 후 교우촌을 순회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천주교 박해를 서술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저는 하루 동안 주교님과 담화를 나눈 후 잠시도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곧바로 전라도에서부터 공소 순회를 시작했습니다. …두 군데에서만 약간의 위험을 겪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제가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서양 사람인 줄로 의심하여 즉시 마을 이장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마을 이장이 그날 밤 안에 저를 잡아 죽일 의논을 하자고 그 마을의 모든 연장자들을 소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외교인들의 고함소리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체하면서 밤새도록 저들이 쳐들어오기만 대비하고,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려 우리가 아침에 그 마을을 떠나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그 세 여교우들을 보러 갈 수가 없었고, 이 때문에 의기소침한 그들을 외로움 속에 버려두고 떠나왔습니다. …저는 교우촌을 두루 순회하는 중에 지독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비참하고 궁핍한 처지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들을 도와줄 능력이 도무지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일곱 번째 서한 中).

 

조선에 입국한 후 최양업 신부는 많은 교우촌을 순회한다. 이때 종종 자신이 서양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아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경험한다. 이 외에도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고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박해로 인한 고난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교우촌의 참혹한 실상’에 관해 서술한다. 이때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서는 박해 사실에 대해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와 같은 내면적 고백을 함께 서술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최양업 신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타나는 ‘자기-인성’에 관해 서술하며 담화 속 이미지, 즉 담화적 에토스를 형상화한다.13) 즉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 서사는 부족한 능력과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을 사랑하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희망’에 대한 자기-인성의 담화적 이미지를 형상화한다.14)

 

이처럼 고난 경험 서사를 통해 선한 목자로서의 자기-인성을 형상화하는 양상은 신자들의 참혹한 삶을 서술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를 비롯한 신학자들의 관점에서 인격을 가진 인간은 타자 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특히 인격의 역사는 인간의 상호주관성으로 인해 타자들의 전기(傳記)가 되는 부분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나르시즘적 기획을 거부한 서술자라면 타인에 대해 기록하지 않고 자신의 인성에 대해 기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15) 이러한 맥락에서 최양업 신부는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신자들의 삶의 역사를 함께 기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성에 관해 서술한다.

 

그 마을 전체가 외교인들이었고, 그 집안 식구들도 모두 외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즉 고해소를 꾸밀 곳도 마땅치 않았고, 성체를 안치할 천막을 설치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저는 앉은 자리에서 그것을 읽고 즉시 안나의 집으로 들어가, 안나를 바깥 사랑방으로 불러내 재빨리 사죄경을 염해 주고 성체를 영해 준 다음 도망치다시피 나왔습니다(일곱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교우촌을 순회하면서 많은 신자를 만나고,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기록한다. 위 인용과 같이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온 자신의 고난스러운 경험과 신앙을 실천하기 어려운 신자들의 삶을 함께 서술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양업 신부는 박해받는 교우촌의 모습과 이에 대응해 나가는 자신의 상호작용을 서술한다. 이를 통해 신앙생활 과정에서 박해받는 신자들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은 자기-인성의 역사를 보여준다. 즉 타인에 대한 서술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처럼 고백적 문체를 활용해 서술된 경험은 담화 속에서 구축된 자기-이미지, 즉 담화적 에토스를 바탕으로 작성자의 자기-인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는 자신 혹은 신자들의 박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고난의 현실 속에서 형성되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자기-인성에 대한 담화적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2) 고난 경험 서사를 통한 교훈적 인물의 형상화

 

다음으로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목격이나 조사를 통해 기록한 신자들의 삶’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겠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난 경험의 서술은 시복 자료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후세에 전승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을 선별하여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서술한다. 이를 위해 최양업 신부는 전(傳) 양식의 문체를 활용한다.

 

최재학은 전(傳) 양식에 대해 “傳은 傳?이니 事跡을 記?야 後世에 傳?이라. 漢人 司馬遷이 史記를 作?야 列傳을 後世에 此를 繼?야 凡朝廷大臣으로 山林隱德에 至?기?지 可法可戒? 行이 有?면 悉皆傳을 作?야 其事를 傳?며 其意를 寓??니…作者는 其宜를 隨?야 其事實을 詳??을 務?지니라”16)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설명에 따라 전(傳) 양식은 ‘후세에 기록하여 가르침이 될 만한 인물의 행적을 사실에 따라 상세하게 서술하는 글쓰기 형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傳) 양식에서는 공동체에 소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의 삶과 도덕적 가치에 대한 기록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적 성격으로 인해 대상에 대한 관찰자적 서술 양상이 나타난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신자들의 고난 경험 서사 역시 후세에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선택하여 관찰자적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기록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에는 한 사람에 대해서만 신부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1839년에 조선 교회 전체를 휩쓴 기해 대박해 때 순교한 사람입니다. 그는 시골에 살았던 관계로 왕도 사람들에게는 별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해의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던 때에 그 순교록에서 빠졌습니다. 다행히 그의 행적에 대한 구술 내용을 적어 놓은 종이를 발견하였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와 아내와 아들 및 잘 알려진 친구들이 생존해 있으므로 저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열두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신자들의 삶을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겠다고 다짐한다. 특히 전승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기존 순교록에 빠진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조사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행적에 대한 구술 내용을 적은 종이’와 생존자들을 통한 ‘충분한 증거’에 바탕을 둔 관찰자적 서술을 한다. 즉 기록의 목적과 대상 선정에서는 주관성이 개입될지라도, 그 과정에서는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또한 신자들이 경험한 다양한 고난 사건 중 후세에 교훈이 될 만한, 즉 도덕적 가치가 있는 것을 서술하려는 모습 역시 나타난다.

 

신부님께서 저에게 서한을 보내 주셨을 때 유럽 신자들에게 감동이 되거나 표양이 될 만한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이 있으면 적어 보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사건들을 수집 중에 있습니다(열두 번째 서한 中).

 

그러나 종교 박해의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모든 난관을 극복하며 용맹하고 굳세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한 가지 예로, 우리나라 최고 양반 집안 출신인 김 베드로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열다섯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 서한에서는 자신이 목격하거나, 조사한 신자들의 고난 경험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유럽 신자들에게 감동이 되거나 표양이 될 만한’ 혹은 ‘종교적 박해를 극복한 인물’의 한 예로서 서술된다. 이 외에도 신자들의 경험을 “그럼 고난에 찬 예를 한두 가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을 더 잘 설명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사건들을 수집 중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한 사람에 대해서만 신부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와 같은 문장에 이어서 서술한다. 그리고 이 문장의 앞부분에는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물, 혹은 구체적인 교우촌의 모습에 대해 서술하겠다는 의도를 밝힌다. 즉 고난받는 상황 속에서 기억할 만한 교훈적(instructive) 가치와 능력에 관한 사례를 선택하여 최대한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해받는 현실 속에서 배교하거나 좌절한 신자의 삶보다는, 그러한 고난을 극복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경험을 보여준다.17)

 

따라서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전(傳) 양식의 문체를 활용한 고난 경험 서사에서는 참혹한 고난의 실상에 대해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로 신자들의 삶에 관해 서술한다.

 

지금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있으면서도 이 진리를 추구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자기들의 가엾은 처지에서 한숨짓고 있는 지극히 가련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에 관한 한 가지 실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상도 안강이라는 고을에 상당한 세력을 가진 오 씨라는 관원이 있었습니다. 그의 동생이 천주교 신자가 되어 안드레아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 씨는 동생이 영세한 것을 알고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단숨에 한 손에 칼을 잡고 한 손으로는 동생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당장 목을 자르겠다고 위협하면서 천주교를 배교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안드레아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목을 내밀고 어서 치라고 대답했습니다. 동생의 굳센 태도에 흉악한 형이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그 잔인한 오 씨의 아내는 이런 용감한 힘을 주는 천주교 진리에 탄복하여 자기도 전심전력으로 천주교를 믿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여덟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가엾은 처지에서 한숨짓고 있는 지극히 가련한 영혼’에 대해, 즉 고난을 받고 있는 신자들의 현실을 오 씨라는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한 손에 칼을 잡고 한 손으로는 동생의 멱살을 잡는’ 형의 모습을 통해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을 서술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고난의 현실을 의연하게 극복하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을 전교까지 하게 되는 ‘용감한 힘’을 지닌 교훈적인 모습으로 인물의 경험을 서술한다. 이를 통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교훈적 인물로 오 씨를 형상화한다.

 

이러한 모습은 서술된 경험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1) 제가 지난번 서한을 신부님께 드리던 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새 교우촌으로 떠날 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주의를 기울일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으면 공소 순회를 마친 후 신부님께 다음번 편지를 쓸 때 보고하겠다고 약속드렸었습니다. 오늘 그 약속을 이행하겠습니다. …주인 마나님이 이 종을 통하여 차차 천주교의 진리를 알게 되어 열심으로 신앙을 실천하던 중 남편에게 발각되었습니다. 남편이 분노하여 엄포와 매질까지 해가면서 자기 아내의 마음을 우리 천주교에서 떨어지도록 노력하였으나 아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남편이 그 아내를 읍내 가운데로 끌고 가서 배교하지 아니하면 관가에 고발하여 죽임을 당하게 하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충실한 이 여종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기로 마음먹고 억지로 재판소인 관가로 끌려갔습니다. …(2) 이제 슬픈 소식은 이쯤에서 끝내고 좀 더 기분 좋은 소재로 넘어가겠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그의 읍내에서 걸어서 여러 날 걸리는 간월이라는 마을에, 일반 종교와는 색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알아볼 마음이 생겨서 직접 그 마을의 회장을 찾아가 그 좋은 교리를 가르쳐 주기를 청했습니다. …젊은이는 다시 한 번 거절당하고 갔다가 세 번째 또 왔습니다. 마침내 공소 회장은 젊은이의 성화에 못 이기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진실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천주교의 기본 교리를 설명해 주고 기본 교리서와 기도서와 교리문답책을 주기까지 했습니다(열세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의 열세 번째 서한에서는 여러 신자가 경험한 고난이 서술된다. 이때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남편에 의해 가해진 협박 속에서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천주교 신앙을 지켜나가며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교훈적 인물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2)에서와 같이 (1)을 통해 고난을 일으키는 박해의 현실에 관한 ‘슬픈 소식’을 먼저 보여준 후,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열심히 믿는 신자들의 모습을 서술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즉 (1)과 (2)를 함께 서술하는 과정을 통해 우선 고난의 현실을 제시하고, 이후 그것을 극복하는 서사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한의 앞부분에서 제시된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생적으로 나타나는 신자들의 신앙심에 대해 서술한다. 다시 말해, 고난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여건을 극복하고, 그곳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신앙에 대해 열정적인 능력을 지닌 교훈적 인물을 형상화한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는 고난을 극복하는 신자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배교에 관한 서술 역시 나타난다.

 

하루는 전라도의 진밧들이라는 마을로 갔는데, 그곳은 얼마 전부터 거의 마을 전체가 교리를 배우며 세례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례받을 준비를 다 마치고 선교사 신부님이 오기만 초조하게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백 명이 넘는 포졸들이 마귀 떼같이 몽둥이를 들고 쳐들어왔습니다. …그 배교자는 첫 배반자인 유다 이스가리옷을 본받아 저를 체포하려고 우리 공소를 습격한 것이었습니다. 그자는 배교한 후 내통자와 박해자로 변신하였습니다. 그 배교자는 이번 습격을 하기 전에도 자기 친척들인 두 사람의 예비 신자들에게 온갖 방법으로 모욕과 핍박을 가하면서 자기를 본받아 배교자들이 되도록 강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내심이 강한 그 두 예비 신자들은 끝끝내 요지부동으로 항구하였습니다. 관가에 잡혀간 우리 신자들은 용감하게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열두 번째 서한 中).

 

당시 조선의 신자 공동체에는 심한 박해를 견디지 못해 배교하는 신자들이 존재하였다. 최양업 신부 역시 사실적인 맥락에서 이러한 신자들의 모습에 대해서 빼놓지 않고 서술한다. 하지만 단순히 배교 행위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위 인용에서와 같이 밀고와 습격과 같은 배교자들로 인한 피해와 함께 그 속에서도 신앙을 이어가는 신자들의 경험에 관해 서술한다. 즉 배교 행위 자체가 아니라, 배교로 인한 박해를 극복하고 꿋꿋하게 신앙을 유지해 가는 신자들의 모습에 서술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18)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서는 목격 혹은 조사를 바탕으로 기록한 신자들의 삶에 대해 박해받는 고난의 현실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앙을 유지하는 모습을 서술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이 독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비신자들로 하여금 감동의 효과를 일으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신자들은 천주교의 진리에 관하여 떠도는 소문을 듣거나 또는 신자가 당한 어떤 환난 등의 사건을 통하여 마음속으로 감동을 받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스스로 신앙을 가지게 되며, 신자들 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조 씨라는 매우 지체 높은 양반이 입교한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천주교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나, 그때에는 천주교를 한낱 지극히 사악하고 반란을 선동하는 종교로만 알고 있었답니다. …조 씨는 이 말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고 만족하여 곧 천주교를 믿기로 결심하고, 기도문과 교리문답을 배우며 천주교회 법규를 실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최후의 악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또 외교인들이 보기에 우연히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믿게끔 꾸미고 그 집과 우상들을 불 질러 버렸습니다(여덟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화재와 같은 현실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의지하며, 근심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태연한 다른 신자들을 통해 감동받고 천주교를 믿기로 결심한 조 씨의 경험에 대해 서술한다. 즉 신자들의 신앙심 깊은 삶이 비신자들에게 감동을 주어 그들을 전교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 씨 역시 ‘최후의 악’으로 표현되는 현실의 박해를 이겨내고 ‘우상을 불 질러 버리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즉 신자들의 신앙심 깊은 모습에 감동해 서로의 삶에 교화되며 고난의 현실을 이겨내는 능력을 지닌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한의 소통 공동체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감동적인 인물의 삶을 전달한다.

 

이는 그리스 비극에서 고난을 극복한 영웅들의 생애를 회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영웅들이 비극적 삶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 과정에 참여를 통해 비극적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인물들의 영웅적 위대함을 닮는 것, 아니 스스로 위대해지는 것을 기대했다.19) 이처럼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목격 혹은 조사를 바탕으로 서술된 고난 경험은 교우촌 박해에 대한 기록을 넘어서, 참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있는 전형적인 ‘교훈적 인물’로서 신자들의 삶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통 공동체에 감동을 주어 그 삶의 영웅성에 공감하고 몰입하며, 궁극적으로 그 삶의 방식에 동참하기를 촉구한다.

 

 

4.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치유의 글쓰기 양상

 

1) 종교적 믿음을 활용한 자기-치유의 글쓰기

 

최양업 신부는 자서전적 문체를 통해 고난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선한 목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존재로 자신의 인성을 형상화한다. 하지만 고난의 현실과 마주해서는 번번이 자신이 바라는 희망이 좌절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저는 교우촌을 두루 순회하는 중에 지독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비참하고 궁핍한 처지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들을 도와줄 능력이 도무지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일곱 번째 서한 中).

 

조선에 입국한 최양업 신부는 고해성사 등의 활동을 통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이 좌절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 ‘저들을 도와줄 능력이 도무지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라고 고백한다. 즉 고난의 현실 속에서 선한 목자로서의 소명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자신의 능력과 그에 따른 안타까운 심정을 서술한다.

 

이러한 자신의 소명을 수행하기를 바라던 희망의 좌절 양상은 사회 문화적 상황과 함께 서술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 대신들은 세실 함장의 서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회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 만일 라피에르 함장이 이에 대하여 그들에게 명백히 썼더라면 그들이 틀림없이 회답하였을 것입니다. 라피에르 함장은 우리가 머무르고 있던 지역인 전라도의 감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주로 식량과 배만 청구하였고, 조선 왕국 대신들의 회답을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고군산도에 남아 있기를 원하여 함장에게 여러 번 청하였으나 함장은 저의 뜻에 결코 동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원까지 하면서 간절히 소망하여 마지않았고, 또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손안에까지 들어온 우리 포교지를 어이없이 다시 버리고 부득이 상해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다섯 번째 서한 中).

 

위 인용은 최양업 신부 자신이 조선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고난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의 일부이다. 그는 조선 입국에 대한 자신의 희망이 좌절된 상황에 대해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라고 표현한다. 이때 최양업 신부는 자신의 희망이 좌절된 원인을 정치적 이유로 선교자의 입국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라피에르 함장과 관련된 상황을 통해 서술한다. 즉 자신이 희망한 소명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좌절된 상황에 대한 심정을 고백한다.

 

이처럼 최양업 신부는 선한 목자로 살고자 하는 자신의 희망과 그것이 좌절된 모습에 대해 자신의 부족한 능력 혹은 그러한 사건을 일으키는 사회 문화적 상황을 통해 서술한다. 하지만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 서사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바라던 희망의 좌절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종교적 믿음을 활용해 좌절된 희망이 다시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직도 낙담하지 않으며, 여전히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고 하느님의 전능하시고 지극히 선하신 섭리에 온전히 의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하느님 안에서 항상 영원히 희망을 가질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려고 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의 손에 맡겼으니, 그분을 언제나 믿을 것입니다(다섯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천주교에 배타적인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고난받고 조선에 입국하지 못하는 경험에 관한 서사를 위와 같이 마무리한다. 특히 희망을 잃은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고 하느님의 전능하시고 지극히 선하신 섭리에 온전히 의지’하겠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하느님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과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좌절된 희망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서술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종교적 믿음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제시한다.

 

이러한 모습은 최양업 신부 서한에 나타난 다른 고난 경험 서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그냥 참고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이 충실한 여교우에게 가까이 가서 그에게 성사를 집전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는 않았으나, 저는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하고 안나의 진심을 신뢰하였습니다. 지극히 착하신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마침내 그토록 간절한 안나의 애원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처럼 충실한 당신의 여종에게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집전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제게 알려주시리라고 희망했습니다(일곱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천주교 박해로 인해 신앙생활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는 신자들의 삶에 대해 서술한다. 최양업 신부는 현실적으로 안나에게 성사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착하신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즉 최양업 신부는 자신의 희망이 좌절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아닌, 종교적 믿음에 바탕을 둔 인식적 변화를 통해 해결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 서사에서는 선한 목자로서의 삶에 대한 희망이 좌절된 상황과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적 믿음을 함께 제시한다. 이를 통해 현실의 고난 속에서 자신의 능력 부족이나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좌절된 선한 목자에 관한 희망을 종교적 믿음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인식적 치유 가능성’을 서술한다. 즉 종교적 믿음을 통해 자신의 희망이 좌절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정감과 인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양업 신부는 자신의 경험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자들의 삶에 관한 서사, 선한 목자로서 살기를 바라는 자신의 희망에 관한 서사 그리고 고난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종교적 믿음에 관한 서사의 상호작용을 통해 고난 경험을 서술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양업 신부는 고난을 극복하고 좌절된 자신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에 바탕을 둔 인식의 변화를 통해 서술된 고난의 상황을 극복하고, 선한 목자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기-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2) 현실적 지식을 활용한 공동체-치유의 글쓰기

 

최양업 신부는 자신이 목격 혹은 조사한 신자들의 고난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박해를 극복하는 교훈적 인물을 형상화하여, 그 삶에 몰입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양업 신부는 신자들이 경험한 처참한 박해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그 순교자의 이름은 최해성 요한입니다. 그는 충청남도에서 신자 부모로부터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극도로 비참한 가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항구한 인내심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 가난 중에서도 자기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애긍 시사와 자선 사업 등을 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천주교의 모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뛰어난 열성을 다하고, 신자들을 격려하며 비신자들을 권면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포졸들한테서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던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여서 몸을 가누기조차 힘겨워하였습니다. …재판관이 크게 분노하여 곤장과 편태의 가공할 만한 형벌을 명하면서 말했습니다. “너의 종교를 위해 죽겠다는 말이 참말이라면 네가 죽을 때까지 치도록 하마.” 요한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뼈가 드러났으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붙은 그의 영혼은 기쁨으로 용약하였습니다(열두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박해를 이겨낸 신자들의 삶을 서술하면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는’ 참혹한 고난의 현실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이를 통해 경험 서사의 독자들은 고난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함께 이후 이것을 인내하고 극복해내는 인물들의 삶과 능력에 감동하게 된다.

 

또한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서는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고난을 일으키는 사회적 원인에 대한 서술이 더해지면서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 낸다.

 

이처럼 변변치 않은 사소한 원인이 큰 혼란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비신자들 사이에 돌아가는 이야기들은 신자들의 체포, 투옥, 형벌, 사형 등 처참한 이야기뿐입니다. 또는 신자들의 집안이 몰락하여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산다는 것, 사람이 살 수 없는 산속이나 산골짜기에 숨어서 비참하고 치욕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비신자들 사이의 이러한 험담은 날이 갈수록 더 커져서 증오와 멸시로 이어집니다. 그리하여 어떤 신자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라도 알려지면 주변 사람들 전체가 온갖 방법으로 신자들을 괴롭히려 달려듭니다. …이런 공적 박해와 위험 외에도 흉년이 닥치면 신자들의 처지는 더욱 비참해집니다. …조선에는 모든 법이나 습관이나 풍습이 오로지 교회법을 지키지 못하게 방해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 같습니다(여덟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위 인용의 앞부분에서 가족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신앙을 유지해 가는 인물에 관해 서술하였다. 그리고 이후 이러한 박해를 일으키는 사회적 분위기와 요인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즉 가족들 사이에 박해가 일어나는 이유로 비신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천주교에 대한 ‘처참한 이야기’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들고 있다. 또한 ‘조선에는 모든 법이나 습관이나 풍습이 오로지 교회법을 지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최양업 신부는 이러한 서술을 통해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신자들이 처해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와 함께 인용의 앞부분에 나타난 서사를 통해 이러한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오로지 천주교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가는 인물을 보여준다. 즉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신앙을 위해 고난을 극복하는 도덕적 삶을 서술한다. 이처럼 최양업 신부는 신자들이 극복해야 하는 고난을 사회적 원인과 함께 서술하여 서한의 소통 공동체로 하여금 그 상황 형성에 대한 사실성과 신뢰감을 높이게 된다. 이를 통해 고난을 극복한 삶의 모습에 더 효과적으로 몰입하여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최양업 신부는 고난을 극복하는 인물의 삶을 서술하면서, 동시에 신앙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신자들이 경험하는 혹독한 박해를 일으키는 사회 문화적 요인에 대해 설명한다. 이때 그들이 경험한 박해의 실상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박해가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 요인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참혹한 현실을 극적인 묘사나 사회적 요인에 대한 분석적 설명으로 제시하는 서사를 통해 고난을 극복한 인물의 삶이 주는 감동의 폭을 확장시킨다.

 

하지만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서는 이러한 참혹한 상황을 극적으로 혹은 분석적인 설명을 통해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현실적 지식’을 활용하여 그러한 상황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서술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라고는 오직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모의 초상부터 탈상까지 입어야 되는 상복의 풍속과 한글이 전교와 교리 공부에 큰 도움을 줍니다. 첫째, 상복이 전교 활동을 도와주는 풍속입니다. …만일 이러한 풍속이 없었더라면 서양 선교사 신부님들이 전교하기 위해 한발짝도 외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조선에 머물러 있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둘째, 한글이 교리 공부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쉬운 한글 덕분으로 세련되지 못한 산골에서도 신자들이 빨리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구원을 위한 훈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여덟 번째 서한 中).

 

최양업 신부는 신자들이 경험하는 혹독한 고난과 그것을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후 조선 사회에 대한 현실적 지식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서술한다. 즉 상복을 활용해 서양 선교사들이 전교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과 한글을 활용해 천주교 교리서를 보급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고난을 받고 있는 신자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박해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신자들의 삶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때 신자들의 삶에 대한 소통 공동체의 몰입을 바탕으로, 최양업 신부는 자신이 제시한 구체적인 현실의 지식을 활용한 대안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참여를 독려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최양업 신부 서한에 나타난 다른 경험 서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처참한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아직도 드릴 말씀이 많지만 이쯤 끝내겠습니다. 이제 다른 비참한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구제책을 강구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생략하고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위생적인 물을 개량할 처방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이 청을 신부님께서 들어주신다면 우리 불쌍한 신자들에게 가장 큰 위안을 마련해 주시는 셈이 됩니다. 신자들은 성물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불같습니다. 상본이나 고상이나 성패를 장만하기 위해서는 아끼는 것이 없습니다(일곱 번째 서한 中).

 

일곱 번째 서한의 후반부에서 최양업 신부는 천주교 박해를 이겨낸 바르바라라는 여인의 삶에 대해 서술한 후, 이후 신자들을 고난의 상황과 그들을 탄압하는 조선의 현실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박해의 상황 속에서 식수와 같이 천주교 공동체의 생활 유지에 도움을 주고, 성물과 같이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다. 즉 고난을 일으키는 사회적 요인과 그것을 극복한 인물에 대한 공감을 전제로, 공동체를 유지하고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지식을 활용한 방안을 서술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 대한 공감을 통해 최양업 신부는 신자 공동체의 고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동참을 촉구한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경험 서사에는 고난을 극복하는 도덕적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닥친 처참한 현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지식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고난을 극복한 인물의 삶에 대해 형성된 공감을 바탕으로 참혹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지식에의 참여를 독려하는 ‘수행적 치유 가능성’을 서술한다. 즉 최양업 신부는 혹독한 고난의 상황에 관한 극적이고 분석적인 서사뿐만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는 열정적인 능력을 지닌 교훈적 인물 서사에 대해 소통 공동체에 형성된 공감대, 그리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현실적 지식에 대한 서사와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경험을 서술한다. 이를 통해 서한의 소통 공동체로 하여금 상흔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조선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에 참여를 촉구하는 ‘공동체-치유의 가능성’을 서술한다.

 

 

5. 결론

 

지금까지 본고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의 서술 양상과 이를 통해 구성되는 치유의 글쓰기에 관해 살펴보았다. 구성주의적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복원과 전달을 넘어서, 서술자의 사건을 바라보는 윤리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고난과 같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사건을 어떻게 서술하는가에 따라 상흔의 글쓰기로 혹은 치유의 글쓰기로도 소통될 수 있다. 최양업 신부가 기록한 19편의 서한에 나타나는 고난 경험 서사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최양업 신부가 작성한 고난 경험 서사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넘어선다. 특정한 문체를 활용한 경험의 서술과 이후 서사 구성을 통해 궁극적으로 고난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복원을 넘어서, 치유의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양업 신부는 고난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믿음을 활용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의 좌절된 희망에 대한 인식적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고난을 극복하는 신자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몰입과 공감대 형성을 바탕으로 그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지식을 활용한 수행적 치유의 가능성을 서술한다. 이를 통해 서한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공동체 모두에 대한 치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따라서 최양업 신부의 서한은 고난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신자들 모두에게 치유의 의미를 내포하는 다성적 텍스트성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다성적 텍스트성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최양업 신부가 고난 경험을 서술하면서 지향했던 고난의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 문헌

 

1. 자료 및 단행본

김상봉,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한길사, 2003.

도미니크 라카프라, 육영수 편역, 《치유의 역사학으로 - 라카프라의 정신분석적 역사학》, 푸른역사, 2008.

루시 아모시, 장인복 역, 《담화 속의 논증》, 동문선, 2000.

배티 사적지 편,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 제1집 - 최양업 신부의 서한》, 천주교 청주교구, 1996.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 역, 《기억의 공간》, 경북대학교 출판부, 1999.

월터 J. 옹, 이기우 역,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2003.

전진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 이론과 실천을 위한 기억의 문화사》, 휴머니스트, 2005.

최재학, 《실지응용작문법》, 어문관, 1904.

필립 르죈, 윤진 역, 《자서전의 규약》, 문학과지성사, 1998.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교회사연구》 14,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헤이든 화이트, 천형균 역,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상상력》, 문학과지성사, 1991.

LaCapra, Dominick, Writing history, writing trauma,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1.

 

2. 논문

김수태, <최양업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연구 - 가문의 순교자 전기를 중심으로>, 《교회사학》 10, 수원교회사연구소, 2013.

김은영,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예화(例話)와 조선, 그리고 프랑스 : 전형적인 텍스트에 대한 비전형적인 독서>, 《동아연구》 57,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2009.

육영수, <상흔의 역사에서 치유의 역사학으로>, 《4 · 3과 역사》 11, 제주4 · 3연구소, 2011.

윤인선, <천주교 고난 경험 서사 연구>,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5.

정지민, <도미니크 라카프라의 역사적 트라우마 연구>, 《역사와 문화》 16, 문화사학회, 2008.

허윤진, <18세기 이후 여성 자서전적 글쓰기의 문화시학적 연구>,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4.

 

---------------------------------------------------

 

1) 최양업 신부의 업적에 대한 연구는 교리서와 삶에서 나타나는 영성을 중심으로 신학과 종교학에서, 성직자로서의 경험과 그가 서술한 초기 교우촌의 모습을 중심으로 역사학에서, 천주가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난다. 또한 1999년도에는 최양업 신부 서품 150주년을 맞아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과 영성’이라는 특집호가 《교회사연구》 14집을 통해 기획되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교회사연구》 14,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2) 배티 사적지 편,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 제1집 - 최양업 신부의 서한》, 천주교 청주교구, 1996, 14쪽.

3)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 역, 《기억의 공간》, 경북대학교 출판부, 1999, 60~61쪽.

4) 월터 J. 옹, 이기우 역,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2003, 123~124쪽.

5) 도미니크 라카프라, 육영수 편역, 《치유의 역사학으로 - 라카프라의 정신분석적 역사학》, 푸른역사, 2008, 213쪽.

6) 본고에서 활용하는 인용문은 배티 사적지에서 편찬한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 제1집 - 최양업 신부의 서한》을 바탕으로 한다.

 

7) 최양업 신부가 기존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작성된 교회사에서 불만을 가지고 문제 제기하고 있는 부분 역시 이러한 지점이다. 김수태, <최양업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연구 - 가문의 순교자 전기를 중심으로>, 《교회사학》 10, 수원교회사연구소, 2013, 92~93쪽.

 

8) 헤이든 화이트, 천형균 역,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상상력》, 문학과지성사, 1991, 11~60쪽 참조.

9) 전진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 이론과 실천을 위한 기억의 문화사》, 휴머니스트, 2005, 137~138쪽.

10) 화이트는 이러한 연관성을 ‘선택적 유사성’(elective affinities)이라고 칭한다.

11) 저는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신부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낸 일은 없다고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첫 번째 서한 中).

 

12) 저를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신부님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공경하올 사부님께, 지극히 순종하는 아들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열여섯 번째 서한 中).

 

13) 루시 아모시, 장인복 역, 《담화 속의 논증》, 동문선, 2000, 102쪽.

 

14) 이러한 선한 목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담화적 자기 이미지는 앞서 살펴본 인용문의 세부적인 표현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최양업 신부는 포교지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아마 우리의 포교지 전체가 또다시 박해자들의 참혹한 광란으로 마구 난폭하게 짓찢겨졌는지도 모릅니다’와 같은 표현을 통해 신자들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교우촌을 순회하는 과정에서는 ‘저들을 도와줄 능력이 도무지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와 같은 표현을 통해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5) 허윤진, <18세기 이후 여성 자서전적 글쓰기의 문화시학적 연구>,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14, 22~23쪽.

16) 최재학, 《실지응용작문법》, 어문관, 1904, 34쪽.

 

17) 이는 19세기 당시 종교적 영웅의 전형적인 형상으로 성인들의 삶을 서술하여 공동체에 감동을 주고 교화시키기 위해 인물을 서술했던 ‘예화(例話)적 글쓰기’의 특징과 맥락을 같이한다. 당시 예화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나타난 고난 경험 서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실성과 교훈성을 바탕으로 특정한 자질에 대한 전형적인 양상으로 인물의 삶이 서술된다. 김은영,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예화(例話)와 조선, 그리고 프랑스 : 전형적인 텍스트에 대한 비전형적인 독서>, 《동아연구》 57,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2009, 100쪽.

 

18) 이러한 모습은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 마리아에 관한 서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양업 신부는 이성례 마리아와 같이 배교 후 다시 참회하고, 순교에 이르는 경우를 적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즉 비록 현실적인 이유로 배교하지만, 그것을 후회하고 다시 신앙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공동체에 전승하고 기억할 만한 가치를 지닌 교훈적인 사건인 것이다.

 

19) 김상봉,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한길사, 2003, 60~61쪽.

 

[교회사 연구 제46집, 2015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윤인선(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 본문 중에 ? 표시가 된 곳은 현 편집기에서 지원하지 않는 한자 등이 있는 자리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첨부 파일에서 확인하세요.



파일첨부

2,09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