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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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01 ㅣ No.860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고요

 

 

오늘날 많은 사람이 고요를 갈망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그저 조용히 있고 싶어합니다. 동시에 많은 이가 고요를 두려워합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에 잠기면 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집니다. 그들은 머릿속에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려워합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면서 지나쳤던 것이나 잘못한 많은 것에 대한 감정이 떠오를 것입니다. 죄책감이 올라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쫓아 버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우리는 오직 진리 앞에 설 때 참으로 고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리 앞에 설 수 있을까요? 영혼의 혼란을 바라보거나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 앞에 서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스스로 그것을 평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진리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 내 안에서 떠오르려고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여 내가 하느님께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진리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해도 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내적 혼란, 우리가 억압해 버린 죄책감, 우리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가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과 함께 우리를 받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내면에 숨어 있는 것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니 우리도 내면에 숨어 있는 것들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이미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비밀을 공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되고 싶어 하는 그렇게 이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았을 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으면 고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조용한 성당에 앉아 있거나 산길을 거닐면서 절대적인 고요를 경험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자동차 경적 소리도 없고, 기계 소리도 없고, 비행기 소음도 없는 곳 말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순결한 고요를 경험합니다. 그런 고요는 아주 귀중한 것입니다. 고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자기 자신으로 있으면 됩니다. 멈추어 서서 고요를 온전히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를 둘러싼 고요가 치유해 줄 것입니다. 고요는 어떤 것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게 해 줍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정당함을 증명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고요하게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오로지 온전한 자신과 완전한 자유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고요는 우리 안에 있는 고요의 공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아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는 고요의 공간이 있습니다. 수도승들은 이 공간을 ‘하느님의 거처’라고 불렀습니다. 내 안에 하느님이 살고 계신 곳입니다. 일부러 내 안에 이러한 고요의 공간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끔 이 공간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됩니다. 너무 많은 걱정과 분노가 이 공간을 덮고 있습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모든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을 뚫고 이 고요의 근간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느님이 거처하시고, 하느님의 나라인 내 안의 그 공간에 이르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의 기대나 요구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하는 말이나 생각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둘째, 나는 건강하고 온전합니다. 상처 주는 말들이 나를 여전히 감정적으로 찔러댑니다. 그러나 침묵의 공간은 상처 입은 감정 아래에 있어서 상처 주는 말들이 거기까지 들어오지 못합니다. 거기서 나는 보호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곳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내적 피신처입니다. 셋째, 나는 근원적이고 ‘진짜’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뒤집어씌운 상(像)들은 사라집니다. 자기 비하나 자만의 상이 없어집니다. 나는 하느님이 만드신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해도 됩니다. 그것은 해방하는 경험입니다. 하느님은 순수하십니다. 그리고 고요 속에서 나는 나를 순수한 존재로 경험합니다. 억압하거나 나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는 그저 나로서 존재합니다. 넷째, 거기서 나는 순수하고 맑습니다. 거기에 죄책감이나 자책감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비록 내 생각과 감정의 조각들이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거기서는 정말 깨끗합니다. 나는 가장 내적인 자아와 일치합니다. 다섯째, 비밀스러운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내 안의 그 공간은 나에게 집이 되어 줍니다.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그곳이 정말 집이고 그곳에서 나는 보호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겨울의 고요한 시간에 고요의 공간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자신 안의 고요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고요는 여러분을 품고 치유하시는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깊은 근원으로서, 당신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공간으로서 고요를 만끽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일 때보다 더 깊은 곳에 계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이 경험에 대해 쓴 바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경험한 해방하고 치유하시는 하느님을 여러분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5년 겨울호(Vol. 32), 안셀름 그륀 신부(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번역 김혜진 글라라(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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