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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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ㅣ구역반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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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16 ㅣ No.151

[특별기고]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22)



Ⅳ 친교의 교회

5. 세상과의 친교

3) 교회의 ‘자기 복음화(自己 福音化)’


세상의 변화를 말하는 교회를 보고 세상이 뭐라고 할까? “자기들은 바뀌지 않으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가장 필수적이며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바로 교회의 ‘자기 복음화’이다. 이 말은 교회의 자기 변화이다. 필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위대함을 교회의 ‘자기 복음화’에서 보았고 또 감동하였다. 교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복음화’의 차원에서 과거의 교회의 죄와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한 적이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를 향해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청했다. 십자가를 끌어안고 ‘죄의 고백과 용서의 청원’이라는 특별예식을 거행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수없이 학살하면서도 ‘선교’를 빌미로 묵인됐던 그리스도인들의 엄청난 죄악들, 그 이전에 저지른 십자군전쟁과 종교전쟁, 이단재판과 마녀 사냥, 갈릴레오 사건과 금서목록 같은 수치스러운 죄과들을 고백하고 겸허하게 고개를 숙인 자리였다.”(가톨릭신문, 2014.4.27)하였다.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복음화’이다. 뜬금없이 생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의 복음 선교>를 통하여 “복음화는 참으로 교회의 고유한 은총이고 사명이며, 교회의 가장 깊은 본성입니다. 교회는 복음화를 위해서 존재합니다.”(14항)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교회는 복음 선포자이지만 먼저 교회 자신을 복음화하여야 합니다. … 교회가 복음 선포를 위한 새로움과 활력과 힘을 지니려면 언제나 교회가 먼저 복음화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상기시켜 주었고, 1974년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재확인하였듯이, 교회가 믿음을 주며 세상을 복음화하려면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자신을 복음화하여야 합니다.”(15항) 한마디로 교회의 ‘자기 복음화’를 말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2의 성령강림이라고 말할 만큼 위대한 성령의 역사임을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열린 20차례에 걸친 공의회는 언제나 이단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단죄나 파문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어떤 것에 대하여도 단죄나 파문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단죄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쇄신되고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 얼마나 기막힌 성령의 역사하심인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고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고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자기 복음화’는 교회의 회개와 쇄신을 말한다. 회개와 쇄신을 위해서는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복음화이고 세상의 복음화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과연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소공동체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소공동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교회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말로는 바뀌어야 한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가 너에 대한 정의의 심판보다, 나에 대한 자성과 심판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개혁할 것이 없는지 깊이 생각하고 생활을 바꿔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이다. 즉 각자가 자기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는 자기 삶을 반성하고 뉘우치고 고쳐 나가기보다 타인을 비판하고 비난하는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김 추기경은 일찍이 각자의 각성 없이는 한국 천주교회와 한국 사회는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타인에게 반성을 요구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반성하기는 어렵다.”(매일신문, 2014.5.26)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이후 매스컴 여기저기에서 나온 새로운 용어가 하나 있다. ‘관피아(官+마피아)’이다. 필자는 이 말을 보면서 우리 교회가 생각났다. 혹시 우리 교회에도 ‘관피아’같은 ‘교피아(교회+마피아)’와 같은 것은 없는지? 조폭과 신부들과 닮은 점이 있다는 농담이 있다. 아직도 우리 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 권위주의식 교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직자가 교회의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런 나머지 사제들의 독선과 오만에 의하여 본당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신자들의 무조건적인 순명과 복종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나머지 생각 있는 많은 신자들은 ‘교피아’에 물들어 있는 교회를 더 이상 봐줄 수 없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리고 남아있는 신자들은 노인들이 대부분이거나 피동적이며 소극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열정과 역동성과 창조성과 자발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다른 말로 교회의 미래가 어둡다는 말이다. 만일의 경우에 우리 교회 안에 이런 ‘관피아’와 ‘교피아’같은 것들이 남아있다면 하루 빨리 일소하고 척결해야 할 것이다.

현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과거의 특정한 가톨릭 양식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복음화하는 대신에 남들을 분석하고 분류하며 사람들의 요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이는 선으로 포장된 끔찍한 타락이다. 하느님, 껍데기뿐인 영성이나 사목으로 치장한 세속적인 교회이다.”(평화신문, 2014.12.8) “출세주의와 교회 내에서의 권력 추구욕은 교회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죄악이다.”(가톨릭신문, 2013.6.2)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사제나 수도자, 주교, 추기경, 교황이라 하더라도 이 세속성의 길을 걷기 원한다면 살인자의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물질 중심의 세속성은 영혼도, 사람도, 교회도 죽일 것입니다.”도 말씀하셨고 또 사제는 양 냄새나는 목자가 되어야 할 것을 주문하시면서 “사제들이 부를 쫓거나 헛된 것을 찾으면 목자가 아니라 늑대가 된다.”(평화신문, 2014.5.11)고 경고하셨다.

지금 우리 교회의 자기 복음화를 위해서는 리모델링이나 내부수리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가 개혁이 아니라 국가 개조를 말하고 있다. 우리도 개혁이 아니라 개조의 차원에서 교회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개혁(改革)은 ‘뜯어서 고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조(改造)는 ‘고치어 새로 만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혁보다 개조가 훨씬 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혁보다 개조가 더 어렵다. 우리 교회도 개혁보다는 개조차원에서 ‘자기 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공동체는 지금까지 하던 신심행위나 기도형태를 하나 더 만든 신개발품이 절대로 아니다. 소공동체는 신앙생활의 패러다임(Paradigm)을 바꾸자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월간빛, 2014년 7월호, 박성대 요한(제2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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