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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34: 성화 은총과 조력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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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01 ㅣ No.752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34) 성화 은총과 조력 은총

'하느님 은총' 없이는 '구원'도 없다


 

그리스도인이 성덕을 완성하여 완덕에 도달하고자 온전히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평소에 수덕 생활을 열심히 실천했다고 해서 자신의 노력과 공로만으로 성화돼 하느님과 합일하는 체험을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표면적인 곳이든 내면 깊숙한 곳이든 어느 곳에도 스스로 초자연 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습니다. 초자연 질서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연 질서를 무한히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초자연 질서에 속한 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연 질서에 속해 살고 있는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412년에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인간이 강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결국,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원죄 때문에 타락해 죄에 물든 인간이 다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지를 넘어서 작용하는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푸시는 은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천명하면서 펠라기우스주의를 단죄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수덕 생활을 실천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자유 의지를 가지고 공로를 쌓아 구원받고자 하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더 이상 죄에 물들지 않기 위해 악습을 끊는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고 하느님만 온전히 바라보는 데에 커다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거룩해질 수 있도록 도와줄 ‘성화(聖化) 은총’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9항). 이 “성화 은총은 우리를 당신의 생명에 참여시키려고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선물”(「가톨릭 교회 교리서」 2023항)이고, 이 “성화 은총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가톨릭 교회 교리서」 2024항)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에게 매우 특별한 것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초자연적 능력인 은총이 자연 질서에 속한 하급 존재인 인간에게 작용해도 인간의 본성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자연 질서에 참여할 수 있게 성화시켜 준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성화 은총은 인간에게 일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항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상존(常存) 은총’이라고도 부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000항).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로 거듭 태어나는지를 자세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로마 8,14-17).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 중에 하나가 때로는 당신마저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주신 자유 의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 안에서 자신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하느님의 은총에만 의지하여 성화 되고자 했던 이단도 체험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인간을 속박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강제로 성화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작용 안에서도 인간 스스로 자유롭게 응답하며 당신께 다가오기를 바라셨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회개의 시작이나 성화 활동의 과정에서 하느님의 개입을 가리키는 조력(助力) 은총”(「가톨릭 교회 교리서」 2000항)을 언급했습니다. 따라서 시작 단계에서 일시적으로 작용하는 은총이기는 하지만 ‘조력 은총’으로 자극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더욱 수월하게 신속히 응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력 은총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여전히 수덕 생활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은총보다 인간의 자유 의지가 선행되었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성화 은총을 통해야만 비로소 초자연 질서에 참여하고 하느님과 합일할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1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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