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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평신도: 가톨릭 불모지 스웨덴에서 신자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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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20 ㅣ No.78

[지금 여기 평신도] 가톨릭 불모지 스웨덴에서 신자로 산다는 것

 

 

나는 쉰을 넘겼으니 중년이다. 하지만 아내를 따라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지는 이제 고작 10년이니 유년이다. 신앙의 질풍노도 시기, 곧 사춘기일 가능성이 높을 때다. 10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절실하고 치열한 신앙생활을 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얄팍하고 어쭙잖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1년 반 전에 단행한 나의 스웨덴 이민은, 일상의 생활뿐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엄청난 모험이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루터교가 국교이며, 가톨릭의 존재감이 미미한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마음이 끌렸을까….

 

 

지난날의 스웨덴 가톨릭교회

 

스웨덴의 가톨릭은 오랜 시간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스웨덴에 가톨릭이 처음 전래된 것은 대략 서기 830년이다. 본격적으로 스웨덴이 가톨릭 국가가 된 것은 1100년대로 본다. 당시 스톡홀름 북쪽에 있는 스웨덴의 옛 수도 웁살라에 교구가 설립되고 주교도 임명되었다. 그러다가 1523년 스웨덴의 국부로 추앙받는 구스타브 바사 왕이 덴마크 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국가를 세운다. 그러면서 스웨덴은 루터교를 국교로 삼았다.

 

스웨덴의 루터교는 ‘스벤스카 시르칸’(Svenska kyrkan)이라고 부른다. ‘스웨덴 교회’라는 뜻이다. 명칭에서부터 느껴지지만 교회가 국가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다. 교회의 수장은 스웨덴 국왕이다. 교회의 모든 조직은 국가가 통제한다. 영국의 성공회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스웨덴은 1593년 가톨릭교회의 모든 활동을 강제로 중지시켰다. 그리고 1617년에는 왕명으로 가톨릭교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는 루터교를 내세운 스웨덴 정부를 피해 숨어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1781년 스웨덴 정부는 외국인 가톨릭 신자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푸는 법령을 공포한다. 2년 뒤 대목구가 조직되고, 1873년에 이르러서야 루터교 신자인 자국민도 개종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

 

하지만 스웨덴이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1951년. 마침내 스웨덴 정부는 가톨릭을 포함한 모든 종교의 선교 활동에 자유를 보장했고, 종교 선택의 자유도 부여했다.

 

1953년 스웨덴 가톨릭교회가 새롭게 교구를 설립할 수 있었다. 당시 대략 3천 명에 불과하던 스웨덴 내 가톨릭 신자는 1960년 이후 외국의 노동 인력이 대거 유입되면서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약 400년 만에 현 교구장인 안데르스 아르보렐리우스를 스웨덴 주교로 임명했다. 안데르스 주교는 지난해 북유럽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오늘날의 스웨덴 한인 신앙 공동체

 

현재 천만 명의 스웨덴 인구 가운데 가톨릭 신자 수는 공식적으로 11만 9천 명으로 파악되지만, 실제로는 약 15만 명으로 추정된다. 스웨덴 전국에 45개의 성당이 있고, 그중 절반 정도가 스톡홀름에 있다. 주교좌성당은 스톡홀름의 쇠데르말름이라는 지역에 있다. 한국인 신자 공동체가 형성된 곳도 이곳이다.

 

1950년대 말 한국 전쟁 이후 스웨덴 이민을 시작해 1960년대와 1970년대 걸쳐 독일로 파견된 노동자와 간호사 가운데 일부가 이주하면서 스웨덴에 한국인은 급격히 늘었다. 이 시기 스톡홀름의 주교좌성당을 중심으로 한국인 가톨릭 신자 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했다. 현재 스웨덴에 거주하는 한국인 가톨릭 신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전국에 2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스톡홀름을 제외한 지역에 사는 한인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 성당을 찾을 수 없거나, 찾아도 거리가 너무 멀어 냉담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어떻게든 냉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웨덴 루터 교회의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경우도 있다. 루터교의 전례가 우리와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영성체도 행해진다.

 

현재 스웨덴 내 공식적인 한인 가톨릭 공동체의 모임은 스톡홀름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이뤄진다. 2017년 11월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소속의 전상률 오상의 비오 신부가 부임했다. 12월 17일 첫 한국어 미사를 시작으로 다달이 첫째, 셋째 주일에 한국어 미사를 봉헌한다. 보통 50여 명의 신자가 모이는데, 그동안 성탄과 부활 판공성사, 피정 등의 활동을 했다. 공동체에 함께하는 신자는 아주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다.

 

스웨덴의 한인 가톨릭 공동체는 전상률 신부가 오기 전에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독일의 한 수녀원 소속의 한국인 수녀가 오랫동안 평신도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끌어 왔다.

 

하지만 2016년 고령의 수녀가 독일 수녀원으로 복귀한 뒤 공동체는 그야말로 ‘부모 없는 고아’ 신세였다. 그나마 신심이 두터운 몇몇 신자가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한국인 신부가 정식으로 부임했으니 잃었던 부모를 되찾은 한인 가톨릭 공동체는 새롭게 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 가톨릭 신자로 산다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스웨덴의 루터교는 철저히 국가에 예속된 형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은 교회를 거의 ‘국가 기관’으로 인식한다. 성직자에 대해서도 ‘종교 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성직자에 대한 존경심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도 성직자와 신자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가톨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 평신도들은 교회를 섬기고 성직자에게 존경을 표하지만 한국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순종’의 미덕보다는 ‘필요’의 발현이 강하다. 이런 스웨덴의 신앙 분위기는 한국인 평신도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이주한 세월이 짧은 사람은 몰라도 이주 기간이 적어도 20년 이상 되었거나,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2세는 가톨릭이라도 스웨덴 루터교의 영향이 크다.

 

이런 점은 스웨덴 가톨릭에 익숙하지 않은 초기 이민자이거나 일시적으로 머물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평신도들에게는 정서적인 어려움이다. 사실 사제들도 해결해 주기 어려운 부분이다. 먼저 스웨덴에 살면서 여기에 맞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자칫 신앙의 혼란을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곳에서 평신도 사이의 소통과 조언이 전례와 교리보다 교회와 멀어지지 않게 하는 구실을 하는 셈이다.

 

평신도로서 신앙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낯선 문화와 언어, 그리고 낯선 종교 여건은 적지 않은 신앙의 갈등을 만든다. 하지만 그 갈등을 알아도 해소할 방법이 없다. 이곳에 와 보니 때로는 ‘왜 교회는 그런 갈등을 해소해 주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곳이 낯설고, 또 우리(?)교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면 더 그렇다.

 

언어의 장벽은 미사와 고해성사로도 이어진다. 미사와 고해성사의 장벽은 필수적으로 ‘죄’를 양산한다. 대표적인 게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도 성체를 영하는 ‘모령성체’다. 처음에는 이에 대해 꺼림칙한 마음을 품는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스스로 찾지 못하면 이런 행위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스웨덴에서 겪는 갈등은 또 있다. 혼전 동거와 이혼, 그리고 낙태의 문제다. 스웨덴은 ‘삼부’(Sambo)라고 부르는 혼전 동거가 결혼과 거의 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다. 그래서 일상적이다. 결혼 커플보다 훨씬 많은 것이 동거 연인이다. 또 스웨덴에서 이혼은 결혼의 파기가 아닌 또 다른 가족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회적으로도 이혼은 부끄러운 일도, 죄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 또한 일상적이다.

 

게다가 낙태의 문제도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낙태 합법화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은 물론 교회와의 갈등도 심화되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스웨덴에서 낙태는 불법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낙태가 많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에 낙태는 ‘자기 결정권’의 범주에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 모든 것을 스웨덴 교회에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가톨릭과 상충하는 부분이다. 이는 스웨덴의 젊은이들이 가톨릭과 가까워지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일반 평신도의 입장에서는 이 의식의 틈을 좁힐 방법을 알지 못한다.

 

원론적인 설명으로는 설득하기 어렵고, 오히려 그 틈을 더 넓히게 된다. 스웨덴에서 가톨릭 신자로 사는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평신도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다.

 

스웨덴은 유럽의 중심 문화권이지만, 가톨릭 신앙과는 거리가 먼 문화권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국의 가톨릭이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스웨덴 한인 신앙 공동체가 신앙의 ‘참맛’을 만끽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복지 국가다. 하지만 확언컨대 가톨릭 신앙의 불모지다.

 

수년 전 남미의 페루로 파견되어 지금은 콜롬비아에서 선교하는 한국인 신부가 있다. 페루나 콜롬비아나 모두 가톨릭 국가이지만, 그 신부는 신자를 찾아 길게는 15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지방의 도시를 누빈다고 한다.

 

스웨덴의 한인 평신도들은 차로,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올 수 있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숱하게 많은 한국인 신부가 ‘가톨릭 후진국’인 스웨덴에도 찾아와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싶지 않기 때문에….

 

* 이석원 발레리아노 - 언론인. 25년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스웨덴 스톡홀름에 살며, 여러 언론 기관의 객원 통신원으로 일한다.

 

[경향잡지, 2018년 9월호, 이석원 발레리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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