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86: 18세기 (3) 이단 사조를 극복하는 이탈리아 영성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5 ㅣ No.1235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6) ③ 이단 사조를 극복하는 이탈리아 영성


수덕생활과 신비생활 조화로 올바른 영성의 길 제시

 

 

- 이단 사조를 극복한 이탈리아 영성가들. 그래픽=문채현.

 

 

17~18세기에 이탈리아는 이단 사조의 발원지였던 프랑스에 비해 정적주의와 얀센주의 영향을 덜 받았습니다. 이는 이탈리아의 지리적 여건과 이단 사조와 맞서는 이탈리아 영성가들의 활발한 활동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영성은 상대적으로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전례학자이며 영성 작가였던 시토회 보나

 

이탈리아 북부, 몬도비(Mondov) 출신인 보나(Giovanni Bona, 1609~1674)는 군인으로 명성을 쌓길 바랐던 아버지의 의향과 달리 근처 예수회 대학에서 몇 년간 수학한 후, 1624년 인근 피네롤로(Pinerolo)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1633~1636년 로마에서 공부한 보나는 신학 교수가 됐으며, 아스티(Asti) 수도원장과 몬도비 수도원 아빠스를 역임하고 1651년 시토회 총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9세(Clemens PP. IX, 재임 1667~1669)는 1669년 보나를 추기경에 서임했습니다.

 

보나는 당대에 전례학자로도 명성을 알렸지만, 수덕과 신심에 대한 영성 작가로도 유명했습니다. 물론 보나는 교부들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 및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cio de Loyola, 1491~1556),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567~1622)의 가르침을 광범위하게 다루었지만, 단순하고 견고하며 전통적인 영성의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보나는 저서 「하느님께 다다르는 간결한 길(Via Compendii ad Deum)」에서 하느님과의 일치가 하느님에 대한 실제적인 사랑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 설명하면서 절규하는 기도를 제안했습니다. 또한, 그는 저서 「천국으로 안내(Manuductio ad Coelum)」에서 정화, 조명, 일치를 주제로 다루었으며, 저서 「영적 식별(De Discretione Spirituum)」에서 영적 식별은 성령의 은사이지만, 체험을 통해 습득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인간 영혼은 자신을 이끄는 영이 인간적인 영인지 악마적인 영인지 신적인 영인지를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윤리신학자이며 영성 작가였던 예수회 스카라멜리

 

이탈리아 로마 출신인 스카라멜리(Gio-vanni Battista Scaramelli, 1687~1752)는 1706년 예수회에 입회했고, 1717년 사제로 수품했으며, 주로 이탈리아 국내에서 설교하는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무대 연출 기법을 사용해 설교한 스카라멜리는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주었습니다. 영성신학자로서 스카라멜리는 신비생활과 대비해 수덕생활을 언급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영적 식별에 관해서도 연구했습니다.

 

그는 저서 「영의 식별(Discernimento degli Spiriti)」에서 영적 지도자들에게 특별히 유용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올바른 규정을 언급했습니다. 또한, 저서 「수덕 지침서(Direttorio Ascetico)」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완덕과 덕행에 대해 다루면서 영적 지도자에게 은총의 통상적인 방법으로 영혼을 인도하는 길을 가르쳤으며, 저서 「신비 지침서(Direttorio Mistico)」에선 관상의 단계와 감각과 영의 수동적 정화를 다뤘습니다. 특히 스카라멜리의 작품 중에서 「신비 지침서」는 신비생활 분야에서 고전이 됐습니다. 스카라멜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수덕생활이 발전하면 신비생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덕생활과 신비생활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성생활에서 독자적인 두 측면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덕행을 실천하는 수덕생활에 정진할 것이고, 소수의 그리스도인만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비적인 상태에 도달하기에 의도적으로 신비생활에 전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자이며 영성 작가였던 구속주회 설립자 알폰소

 

나폴리 왕국 북부, 마리아넬라(Maria-nella) 출신인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o Maria de’ Liguori, 1696~1787)는 1708년 나폴리 대학에 입학해 1713년 교회법 및 민법 박사 학위를 받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방황하던 중에 신비체험을 하고 사제가 되고자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타협으로 알폰소는 교구 사제였던 토르니(Giulio Torni)에게 집에서 신학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선교 활동에 관심을 두고 1724년 사도 선교 단체에 합류했습니다. 알폰소는 1726년 사제품을 받고 고해 사제와 설교가로 활동하다가 1729년 나폴리의 중국 신학원으로 옮겨 활동했습니다. 이후 스칼라(Scala)로 거처를 옮겨 그리스도를 본받고 복음을 선포하고자 1732년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Congregatio Sanctissimi Redemptoris)’를 설립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설교를 통해 교리교육과 영성교육을 하면서 얀센주의와 대립했습니다. 1762년 산타 아가타 데이 고티(Sant’ Agata dei Goti) 교구장으로 임명된 알폰소는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을 더욱 널리 권장했습니다.

 

알폰소는 윤리신학자로도 알려졌지만, 영성신학과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으며 모든 설교와 작품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영성생활을 권고했습니다. 알폰소는 영성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은 모든 인간에게 구원과 성화의 가능성을 주신다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계시하면서 얀센주의를 대적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을 전개했으며, 저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훈련(Pratica di amar Ges Cristo)」에서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송가(1코린 13장 참조)를 주석하면서 사랑의 영성을 완벽하게 집대성했습니다. 알폰소는 저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신부(Vera sposa di Ges Cristo)」에서 종교적인 완덕을 다뤘으며, 저서 「위대한 기도 방법(Del gran mezzo della Preghiera)」에서 구원경륜에서 중심부를 차지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알폰소는 저서 「성체조배(Visite al Santissimo Sacramento)」에서 그의 영성의 중심에 성체 신심이 자리하게 했으며, 저서 「마리아의 영광(Le Glorie di Maria)」에서는 구세사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고찰함으로써 마리아론과 성모 신심을 정립했습니다. 한편 알폰소는 저서 「고해 사제 훈련(Pratica del Confessore)」에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주부적(注賦的)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신비스러운 일치에 도달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실 초세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수덕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수덕생활의 연장선에서 얀센주의를 바라봤기 때문에, 다소 혼란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얀센주의를 추종했습니다. 17~18세기 이탈리아의 영성신학자들은 수덕생활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한 수덕신학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영성신학을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으로 균형 있게 구성함으로써 이탈리아에서 얀센주의 및 정적주의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8월 5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1,64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