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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의 성모 성당: 산 치리아코 성당 기적의 성모 성화(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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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08 ㅣ No.471

[세계의 성모 성당] 산 치리아코 성당 기적의 성모 성화

 

 

앙코나는 이탈리아 로마 북동쪽 280km 지점에 위치하며, 중부 마르케(Marche)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이 앙코나의 항구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구아스코 언덕(Guasco hill) 위의 옛 아크로폴리스 부지에 성당이 세워져 있어 앙코나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멀리 바다에서도 바라다 보여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가 되고 있다.

 

2016년 발굴 조사에 따르면 이 성당자리에는 아프로디테 여신께 봉헌된 고대 이교도 신전이 기원전 3세기 초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자리에 6세기경에 처음으로 성 라우렌시오에게 봉헌된 성당이 세워졌다. 13~14세기경에 다시 성당이 지어지며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아르메니아 출신의 주교 성 치리아코(San Ciriaco)에게 봉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아직도 초기 성당의 일부 모자이크 포장 및 경계 벽 등이 남아 있다. 이 성당은 비잔틴과 로마네스크 양식, 그리고 고딕 양식을 혼합하여 지어졌으며, 비록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은 아니지만 이 성당에 모셔진 성모성화에서 성모님의 눈이 움직이는 기적이 일어나면서 더욱 유명해지며 성모순례성지가 되고 있다.

 

원래 이 성모성화는 1615년 베니스인 선장 바르톨리가 아드리아해에서 폭풍을 만나 아들이 바다에 빠지게 되자 성모님께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아들이 무사히 구조되자 성모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37cm×45cm의 성모 마리아 성화를 교회에 기증한 것이었다. 이 성화는 제대 뒷벽에 걸려 제단화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1706년 성모님 눈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이 사제들에 의해 25차례나 발견되고 교황청에 보고되었지만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1796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인들이 북부 이탈리아를 침공한 후, 여러 지역을 정복하고, 가는 곳마다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며 이 앙코나에도 들어왔다. 그들의 약탈은 이 도시에서도 그리고 이 대성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1796년 6월25일 저녁 프랑스 군인들은 대성당안의 온갖 거룩한 성물들은 물론 값이 나갈만한 것들을 모조리 떼어내고 쓸어 담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때 병사들 중 하나가 제단 가까이에서 약탈을 자행하다 이 성모성화를 바라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너무도 분명하게 성모님의 시선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놀란 병사는 혼비백산하여 성당을 뛰쳐나가 동료들에게 알렸으며 성모님 성화의 기적 소식은 다시금 알려지고 빠르게 확산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성화 속 성모님의 눈이 움직이는 기적은 이 일이 있은 후 6개월이나 계속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게 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대성당의 의전관들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개인적으로 그 그림을 엄격하게 조사하기를 원했다.

 

 

성모 성화의 성모님 눈의 시선이 움직이는 기적일어나

 

1796년 11월25일에 기적이 끝나고 빈첸죠 라우찌 주교는 공식 조사에 들어가 다음 해 1797년 2월11일까지 계속하였다. 교회에서는 일반인 및 자격을 갖춘 조사관들을 엄정하게 선정하여 이 성화를 보호하는 유리 덮개를 벗기고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떠한 인위적 조작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7월21일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성모님께서 눈만 뜨신 것이 아니라 입가에 미소까지 띠고 있었고, 이상한 빛이 그 성화에서 뿜어져 나오자 신자들은 경건하게 충격을 받고 기도와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앙코나의 산 치리아코 성당은 새로운 성모성지가 되어 수많은 이들이 찾게 되었다.

 

그러나 성당 건물은 이후로 여러 번 파괴와 복원을 거듭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파괴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 5월24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함대의 폭격 때문이었다. 피해를 입은 부분은 1920년에 복구되고 1926년 대성당은 특별한 역사와 중요성이 있는 성당에 부여되는 작은 바실리카 성당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며 다시금 공중 폭격으로 측랑(transept)과 남쪽 지하 묘지 그리고 그곳에 보관되었던 예술적인 보물들이 함께 파괴되었고, 또다시 정비, 복원을 거쳐 1951년에 공식적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1972년 발생한 지진으로 또다시 파괴되어 새로운 복원공사를 거친 후 1976년 공식적으로 문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당은 꼬네로(Conero)산에서 채굴한 흰 돌과 베로나의 붉은 대리석으로 지어졌는데 정면에는 넓은 계단이 있으며, 그 위로 정문 앞에는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둥근 아치형의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지붕이 돌출되어 있다. 그 안쪽 천장에는 4복음사가의 상징을 돌에 새긴 4개의 부조가 부착되어 있다. 이것은 Giorgio da Como가 1228년경 만든 것이다. 이 4개의 기둥들 중 앞쪽 기둥은 베로나의 붉은 대리석으로 만든 2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정문 주위에는 성인들의 흉상 조각, 동물의 형상, 식물의 모티프가 새겨진 홍예 아치가 있는 일련의 기둥들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이들 정면부 닫집 위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테두리 장식이 있는 커다란 채광창이 있다. 모든 외부 표면에는 롬바르디아식 띠 장식이 둘려져 있고, 종탑은 옆에 다소 떨어진 위치에 세워져 있다.

 

 

성당 중앙 돔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둥근 기둥들이 여러 개 세워져 있는데 비잔틴시대의 기둥머리와 로마 시대의 옛 건축물들에서 가져온 기둥들을 재사용했다. 성당의 중앙에는 돔이 얹어져 있다. 이 중앙의 돔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마르가리토네 아레초(Margaritone d’ Arezzo)(1270)가 만들었으며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성당과 베니스의 성 마르코 바실리카와 함께 세례당이 아닌 성당에 세워진 몇 안 되는 예 중 하나이다. 돔의 외부는 16세기에 동판으로 덮었다. 회중석 천장에는 15세기에 배 모양의 목재 볼트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현재 중앙제대 뒷벽에는 피에트로 예콜레 파바가 그린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걸려 있다.

 

1017년 개축된 성당에는 성 치리아코와 성 마르첼리누스의 유해가 모셔졌다. 12세기 후반과 13세기 초반에 그리스의 십자가형의 설계에 따라 앙 측면 날개(transept)가 추가되었고, 이 양쪽 측랑에는 회중석보다 높은 위치에 소성당을 만들어 계단으로 오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반원형의 지붕인 apses도 만들었으며 이들 소성당 아래로 반 지하의 공간을 만들어 성인들의 유해 등을 모실 수 있게 하였다. 오른쪽 측랑에는 십자가의 경당이 있는데, 여기에 오르는 계단 주위에는 1189년 만든 돌로 만든 판넬로 두른 난간이 있다.

 

여기에는 왼쪽에서부터 다윗왕, 복되신 동정녀, 가브리엘 대천사, 세례자 요한, 그리고 예레미아와 하바꾹, 성 치리아코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석류나무 위의 두 마리 왜가리, 독수리, 나무 위의 두 마리 공작새, 그리고 두 마리의 그리핀 등 동물을 묘사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 소성당에는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신다는 14세기의 목조 십자가가 중앙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마주보는 반대편 왼쪽 측랑에는 1739년에 루이지 반 베텔리(Luigi Vanvitelli)가 설계한 화려한 벽감 장식이 있는 성모 경당이 있다. 바로 이곳에 앞서 언급한 기적의 성모 성화가 걸려있다. 1800년 6월21일 비오 12세 교황은 이곳을 방문하여 이 제단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천상모후의 왕관을 봉헌하는 예식을 거행하였다.이 유명한 성모성화는 이후로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공경을 받았는데, 1936년 12월16일에서 17일 사이 성화가 도난 되었다가 한 달이 지난 1937년 1월24일 길거리에서 신문에 싸인 채 발견되어 1월1일 대성당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날 이후 이 성모상에는 눈이 움직이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9월호,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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