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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교회의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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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08 ㅣ No.652

[현대교회의 가르침] (56)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상)


“이웃 향해 항상 ‘열려 있는 교회’ 돼야”

 

 

2013년 11월 24일 발표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은 프란치스코 현 교황(재위 2013~ )의 신학적 · 사목적 전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적 교회 문헌이다. 그동안 이미 여러 기회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문헌이 자세히 소개된 바 있지만 여기에서는 신학적 관점, 특히 교회론적 관점에서 이 문헌의 핵심 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마디로,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주어지는 삶과 영의 충만함, 즉 ‘복음의 기쁨’을 모든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그분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러한 신학적 기조 사상은 전체 5개의 장으로 구성된 문헌 중 특히 제1장(19-49항)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출발하는 교회 

 

「복음의 기쁨」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출발하는 교회’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한다(20-24항 참조). 그리고 이를 위해 ‘첫걸음 내딛기’(primerear)라는 핵심 단어가 강조되며, 이러한 기조 사상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교회 상이 제시된다. 

 

첫째, 교회는 하느님을 향한 응답으로 항상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 모범은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명이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1-3절) 이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 식별하고 순종하여 그분께서 가리키시는 곳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매일매일 결행해야 할 ‘회심’인 것이다. 그리고 이 회심의 차원에서, 여러 측면의 교회 쇄신이 요구된다. 사목 쇄신을 위한 구조 개혁 등을 말하면서, 심지어 “교황직의 쇄신”(32항)이 언급되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처럼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쇄신이 교회 안에서만 끝나지 않으려면 선교를 그 목표로 삼아야 함”(27항)을 또한 강조한다. 

 

둘째, 이러한 하느님을 향한 회심의 ‘첫걸음 내딛기’는 이제 이웃을 향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이웃을 향해 사랑과 봉사의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1요한 4,19)이다. “복음을 전하는 이 공동체는 주님께서 이 일을 먼저 시작하셨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아는”(24항) 까닭이다. 

 

셋째, 이처럼 이웃을 향해 “출발하는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교회”(46항)이다. 여기에서는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론적 표상들이 교회론적 차원으로 전환되어 적용됨으로써 교회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가 잘 제시된다. 먼저, 죄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회심하여 돌아올 수 있도록 교회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자비의 복음서’로 일컬어지는 루카복음서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11-32장)가 그 성서적 근거로 제시된다. 교회는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고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와 선뜻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을 열어 둡니다.”(46항) 

 

나아가,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해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47항)이 되어야 한다. 이는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에 근거한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요한 14,2)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이러한 개방성을 보여 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표시가 바로 모든 성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자 성당을 찾아왔을 때 차갑게 닫혀 있는 문을 마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닫혀 있지 말아야 할 문들은 또 있습니다. 누구나 어떻게든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성사들의 문도 어떠한 이유로든 닫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47항) 사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는 집이 되어야 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29) 

 

넷째, ‘출발하는 교회’는 이제 “열린 마음(심장)을 가진 어머니(a mother with an open heart)”(46-49항)가 되어야 한다. 뜨거운 심장 속에 사랑의 마음을 지닌 어머니는 불 속에 있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며, 또한 진흙 속에 있는 자식을 구해내기 위해 자기 몸을 내어던진다. 이미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명한 다음 진술은 이러한 모성적 교회 상에 기초한 것이다. “이제 출발합시다. 가서,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합시다. 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제들과 평신도들에게 자주 드렸던 말씀을 온 교회를 위하여 되풀이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저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고 마는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49항)

 

 

여러 도전에 직면하여 

 

「복음의 기쁨」 제2장(50-109항)은 “공동 노력의 위기 속에서”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제1장에서 제시된 ‘출발하는 교회’가 마주하게 될 여러 도전들에 대하여 설명한다. 크게, “오늘날 세상의 도전들”(52-75항)과 “사목 일꾼들이 겪게 되는 유혹들”(76-109항)로 나누어진다. 

 

먼저 “오늘날 세상의 도전들”로 거론되는 것은, 모든 것을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놓는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53-54항), 그리고 그로 인해 우상화된 물신주의의 횡행(55-56항), 봉사하지 않고 지배하는 금융 제도(57-58항), 폭력을 낳는 불평등(59-60항), 문화적 측면의 도전(61-67항), 도시 문화의 도전(71-75항) 등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통해, 인간적 면모를 상실한 현대의 경제적 흐름과 배타적 금융 구조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편 “사목 일꾼들이 겪게 되는 유혹들”로 거론되는 것은 이기적인 나태(81-83항), 무익한 비관주의와 패배주의(84-86항), 영적 세속성(93-97항), 분열과 싸움(98-101항), 청년 사목의 문제(105-106항), 성소 감소의 위기(107항) 등이다. 이 가운데 교회론적 관점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영적 세속성’의 위험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한마디로, “신앙심의 외양 뒤에, 심지어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93항)이라 규정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위험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복음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그리고 현대의 구체적인 요구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 생활은 박물관의 전시물이나 선택된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버립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 영적 세속성은 사회적 정치적 쟁취에 대한 환상, 또는 실질적인 일처리 능력에 대한 자만, 또는 자립과 자아실현 프로그램에 대한 집착 뒤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또한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 다시 말해 여행, 회합, 회식, 연회 등으로 가득한 바쁜 사회생활로 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영적 세속성은 또한 통계와 기획과 평가에 매달리는 관리자의 기능주의로 표현되며, 그 주요 수혜자는 하느님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로서의 교회입니다.”(95항) 

 

사실, 이는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1978)의 말씀처럼,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것이 되지 말아야 하는 교회”(Ecclesia in mundo, sed non mundi)가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불가피하게 또 실제적으로 마주하는 도전이며 위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교회 헌장」 8항이 천명하듯,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Ecclesia semper purificanda)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는 당위적 명제 차원에서, 이는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늘 함께 성찰하고 숙고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5일, 박준양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57 · 끝)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하)


“복음선포, 하느님 향한 가난한 이들 열망 고려돼야”

 

 

프란치스코 현 교황(재위 2013- )은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그 도전과 전망에 관하여 설명한다. 지난번에는 전체 5개의 장 가운데 1~2장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3~5장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복음 선포의 방법과 원리들 

 

「복음의 기쁨」 제3장은 복음 선포의 여러 방법과 원리에 대하여 잘 설명한다. 직접적인 강론을 하는 사목자만이 아니라 모든 복음 선포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좋은 내용들이 매우 풍부하게 담겨 있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따로 있고 선교사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모두는 “언제나 선교하는 제자”(120항)여야 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설한다. 

 

먼저, 현대의 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과 부활을 기쁨과 인내심을 갖고 점진적으로 선포하는 예언”(110항)이어야 함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참다운 보편성을 표현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한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 선포에 있어, 올바로 이해된 문화적 다양성과 토착화는 중요하게 숙고되어야 할 요소이다(116~118항 참조). 그리고 이런 차원에서, 토착화된 복음의 열매인 대중신심 안에 담긴 적극적인 복음화의 힘과 성령의 활동이 강조된다. 이는 그리스도교 민족들의 신심 안에서, 특히 가난한 이들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을 향한 열망과 삶을 가리킨다. “신경 구절은 거의 못 외우지만 묵주 기도에 매달리며 병든 아이를 간호하는 어머니들의 강인한 믿음을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간구하는 누추한 집 안에 켜진 촛불에서 퍼져 나가는 큰 희망을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우리의 마음 안에 부어진 성령의 활동으로 힘을 얻는, 하느님을 향한 삶의 표현입니다.”(125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 선포의 차원에서, 강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평신도는 강론을 듣는 것이 어렵고 사목자는 강론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사실 강론은 성령을 강렬하고 기쁘게 체험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쇄신과 성장의 지속적인 원천이신 하느님 말씀, 위로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만나는 것입니다.”(135항) 이처럼 좋은 강론을 위해서, 먼저 “강론자는 자기 공동체의 마음을 알아야 함”(137항)이 요구된다. 순전히 도덕적이거나 교리적인 강론, 또는 성경 해석 강의가 되어 버린 강론을 지양하고,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 이루어져 ‘마음에 불을 지르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142항 참조). 그리고 좋은 강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성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강론 중에 활동하시는 성령을 믿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역량을 다하여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145항) 

 

마지막으로, 좋은 강론이란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강론이 부정적인 것을 지적하려 한다면, 언제나 매력적이고 긍정적인 가치도 보여 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강론이 불평이나 탄식, 비판이나 비난에 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긍정적인 강론은 언제나 희망을 주고 미래를 지향하며 우리가 부정의 덫에 갇혀 버리지 않게 합니다.”(159항)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 

 

「복음의 기쁨」 제4장은 복음 선포가 지니는 사회적 측면에 대하여 설명한다. 「복음의 기쁨」이 사회 교리서는 아니고 복음 선포에 관해 말하는 문헌이지만, 복음화와 인간 증진 사이에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사회 통합”(186~216항)과 “공동선과 사회 평화”(217~237항)에 대하여 특히 강조해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의 사회적 실현을 위해, 매우 중요한 네 가지 기본 원칙이 제시된다. 

 

첫째는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원칙이다. “시간은 우리 앞에 언제나 열려 있는 지평의 표현으로서 충만함과 관련되지만, 개별적인 순간들은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한계의 표현입니다.”(222항) “이 원칙은 눈앞의 즉각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천천히 확실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는 어렵고 적대적인 상황을 이겨 내고, 현실의 힘이 강요하는 계획의 변경을 참을성 있게 견뎌 내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이따금 사회 정치 활동에서 보는 잘못들 가운데 하나는 공간과 힘을 시간과 진전보다 더 중시하는 것입니다. 공간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세우는 권력의 공간들을 독점하고 모든 것을 현재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무모한 시도를 의미합니다. 시간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공간들을 장악하기보다는 진전의 과정들을 시작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223항) 

 

둘째는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는 원칙이다. 사회적 갈등을 진정으로 극복하는 일치는 먼저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이 강조된다. “우리가 차이를 존중하며 평화를 이루어야 할 첫 자리가 우리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을, 언제나 분열과 붕괴의 위협을 받는 우리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천 갈래로 산산조각이 난 부서진 마음으로는 진정한 사회적 평화를 이룩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229항) 

 

셋째는 “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는 원칙이다. 이는 사회 참여에 있어, 실재를 가리는 온갖 수단들을 거부하라는 의미이다. “천사 같은 순수주의, 상대주의의 독재, 공허한 미사여구,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 반역사적 근본주의, 선의가 없는 도덕주의, 지혜가 없는 지성주의”(231항)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는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는 원칙이다. “전체가 부분보다 더 큽니다. 또한 전체는 그 부분들의 단순한 총합보다도 더 큽니다. 따라서 제한적인 개별 문제들에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235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체를 중시하면서도 결코 획일적이지 않고 각각의 고유성을 살리는 다면체적인 통합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모델은 구체가 아닙니다. 모든 점이 중심에서 똑같은 거리에 있으며 그 점들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없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의 모델은 다면체입니다. 다면체는 모든 부분의 집합이고, 각 부분은 그 고유성을 간직합니다. 사목 활동과 정치 활동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다면체 안에 각각의 가장 좋은 부분을 모으고자 합니다.”(236항)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 

 

「복음의 기쁨」 제5장은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 선포자는 두려움 없이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내어 맡겨, 담대하게, 큰 소리로, 언제 어디서나, 또한 시류를 거슬러, 복음의 새로운 역동적 힘을 선포해야 함을 강조한다(259항 참조). 또한 진정한 선교사는 복음 선포 활동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선교사는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걸으시고 이야기하시고 숨 쉬시고 함께 일하신다는 것을 압니다.”(266항)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거에 일어나 사건이 아니라 이 세상에 스며든 생명의 힘을 지니고 있는 신비임을 복음 선포자는 체험해야 한다. “선교는 거래나 투자도 아니고 심지어 인도주의적 활동도 아닙니다. 광고에 따라 모인 관객의 수를 세는 공연도 아닙니다. 선교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이며 그 무엇으로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활동을 통하여, 세상의 어떤 곳에, 우리가 결코 가보지 못할 그곳에 은총을 풍성히 베풀려고 하시는지도 모릅니다.”(279항)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284~288항)에 관해 설명한다. “모든 이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정의를 낳을 때까지 산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표지이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어 우리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고 당신의 모성애로 우리 마음을 믿음으로 열어 주시는 선교사이십니다.”(286항) “교회의 복음화 활동에는 마리아 ‘방식’이 있습니다. 마리아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온유한 사랑의 혁명이 지닌 힘을 믿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겸손과 온유가 나약한 이들의 덕이 아니라 강한 이들의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바라보며, 바로 그분께서 정의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따스한 온기를 가져다주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288항)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12일, 박준양 신부]

 

※ 이번호로 ‘현대교회의 가르침’ 기획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진들과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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