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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교회건축을 말한다11: 성당건축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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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17 ㅣ No.122

[교회건축을 말한다 11] 제3화 - 교회 건축 실무, 성당건축 프로그램

공동체 공간으로서의 기능 구현하도록 고민해야


기존 이슬람의 모스크를 가톨릭 성당으로 탈바꿈시킨 스페인의 모스크 성당.
 

스페인 코르도바에 가면 '모스크 성당'(Mezquita Catedral)이란 특이한 이름의 성당이 있다. 1492년 스페인이 그리스도교 국가로 재통일하면서 아랍인과 유다인을 몰아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후 연쇄적 파동으로 유럽 근대 역사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이전에 모스크로 쓰던 건축이 성당으로 바뀌었고, 모스크 성당이란 변종의 종교 공간을 만들었다. 신앙을 위한 구조는 비슷한 것인지, 두 가지 종교 공간의 중첩이 주는 감동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이다. 물론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은 반대의 운명을 맞게 됐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크리스털 성당'(Crystal Cathedral)이라는 또 다른 특이한 교회 건축을 볼 수 있다. 자동차 극장에서 목회를 시작한 로버트 슐러 목사가 복음주의 기치 아래 현대인의 종교적 지향점을 최대한 반영한, 시대적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대형 교회 건축을 창안했다. 이전 상식으로 크리스털 성당은 교회 건축이라 평가하기는 어렵고, 극장ㆍ박물관ㆍ쇼핑센터 등 근대 이후 나타난 모든 건축 유형이 망라되고 통합된 새로운 변형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일본 고베 로코 산에는 노출 콘크리트로 유명한,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바람의 교회'가 있다. 그의 설계 소묘에는 로마네스크의 공간, 종탑과 회랑의 번안, 빛과 자연에 대응하는 방식 등 교회 건축에서 고민해야 하는 모든 요소가 녹아 있다. 전작 '빛의 교회'가 보여줬던 단아함을 잇는 수작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바람의 교회는 호텔에 부속된 결혼의식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내용은 빠지고 형식만 남은 교회 건축의 특이한 모델이다.


프로그램

건축에서 일반적으로 프로그램이라는 말은 규모 등으로 제시되는 지극히 수치적 개념이다. 성당 건축 프로그램 역시 일반적으로 정의하면 건축 설계를 위해 본당이 몇 석이고 교리실이 몇 개, 사제관이 몇 평 등을 숫자로 정리한 내용을 이른다. 물론 그들이 어떻게 엮여있는지 그들 상호간 의존적 관계 등 정보를 포함해 건축의 프로그램이라 이른다. 본격적 설계의 전 단계로서 건축주가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자료이다. 건축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득세했던 1970년대에는 세부적 치수를 포함해 여러 가지 기준들, 예컨대 실의 높이, 비례, 온도와 조도의 조건, 필요한 기기, 가구 등을 계량화하는 작업 전반으로 프로그램의 정의를 확대시켰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교회 건축의 특이함을 이해하는 근거 역시 건축가의 성취 이전에 어쩌면 프로그램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란 수치화된 결과이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프로그래밍)에는 무수히 많은 가정과 판단이 작용하게 된다. 그중에는 기존 모스크를 새로운 교회의 바탕으로 공존을 받아들인 모스크 성당 사례나, 대형 공간을 현대적 일상의 관점에서 재배치한 크리스털 성당 사례, 혹은 극단적으로 예배 공간의 본질을 극적 행사 공간으로 차용한 바람의 교회 사례에서 보듯, 건축적 아이디어 이전에 프로그램 단계에서 교회 건축 자세의 중요한 결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프로그램을 단순히 크기나 관계의 의미로만 본다면, 교회 건축 역시 초기 바실리카가 그러했듯 대규모 집회 공간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의미는 우리 삶을 수치로, 혹은 효율로 번안하는 일련의 과정 전반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교회 건축이 도서관, 쇼핑센터, 사무소, 심지어 나이트클럽으로까지 변용되는 사례를 보면 우리도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 단계에서 보다 적극적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당위성도 생긴다.


적극적 프로그램

앞서 세 가지 교회 건축 유형을 적극적 프로그램의 관점에서 유추해 보면 대개는 기능이라는 변수와 현실이라는 변수, 그리고 컨텍스트(정황)라는 변수 정도를 규정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단면에는 수치로 치환되는 과정에 좀 더 근원적 가정으로서 이들 변수가 녹아 있다는 얘기다. 프로그램이란 기능과 현실과 컨텍스트가 번안된 수치를 만드는 과정과 결과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답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기능이 단순히 용도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단지 돈 문제만은 아니며, 컨텍스트가 바로 옆집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012년 일상의 현실에서, 우리가 처한 대도시 밀집의 컨텍스트에서 우리가 모여서 공동체의 공간을 지향하는 기능을 가장 적절히 구현하는 방식에 대해 설계 이전에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된다.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어떤 의미인지, 우리 본당에 적합한지, 프로그래밍의 역할이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간 축적해왔던 성당 건축 전반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아닌가 싶다.
 
오래 전 박노해 시인이 경동교회 건축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알다시피 경동교회는 우리나라 교회 건축의 한 획을 그은 작업으로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수작이다. 그러나 그의 이해는 달랐다. 예전 청계천 피복 노동자들의 쉼터와 모임의 중심 역할을 하던 경동교회가 지금의 건축으로 새롭게 태어난 후, 그들이 가기 힘든 머나먼 교회가 됐다는 그런 비판이었다. 건축적 해석이나 교회 건축의 가시적 성과 이전에 프로그램의 비중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교회 역할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기능과 현실과 컨텍스트의 번안은 무엇인지, 거기에 우리 모두가 개입해야 하는 프로그램의 적극적 자리가 있는 셈이다.

[평화신문, 2012년 6월 3일, 김영준(베드로, 김영준도시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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