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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교회건축을 말한다3: 빛의 성당 I - 로마네스크 교회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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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27 ㅣ No.106

[교회건축을 말한다 3] 제1화 - 성당 : 공동체와 빛의 건축 (3) 빛의 성당 I : 로마네스크 교회 건축

빛 머금은 육중한 돌이 만드는 빛의 공간


로마네스크 성당의 빛.
 

나는 로마네스크 교회건축을 이 장면<사진1> 하나로 이해하고 있다. 너무나도 겸손한 작은 제대 뒤로 빛나는 작은 창문이 하나 나 있다. 이 창은 아주 작지만 돌은 꽤 두껍고 나팔처럼 안쪽으로 비스듬히 벌리고 있어서 작은 창을 뚫고 들어오는 빛은 강렬하다. 그리고 창을 둘러싼 비스듬한 돌마저도 밝은 빛이 돼 버렸다. 이 빛은 둥그렇게 에워싼 벽면을 타고 번진다. 그러나 그냥 번지지 않고 벽면을 끊는 구조가 가로막은 어두운 선을 넘어 차례로 번진다.

제대를 감싸는 볼트(vault, 둥근 천장)와 벽에는 빛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장면에 눈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대로 빛이 볼트와 벽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도 느껴진다.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빛이 창에 응고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 빛이 창에 응고하고 벽에 번지는 모습은 빛의 기울기와 세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얇거나 유리 같이 투명한 재료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빛의 공간, 이 공간에서는 돌이 빛이 된다. 오직 육중한 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이것이 로마네스크 성당의 진수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바실리카 평면을 따라 가운데 회중석을 길게 두고 그 좌우에는 아치가 있는 기둥 열을 세웠으며, 다시 그 위 높은 곳에 창을 뒀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 지붕은 목재로 만들어져서 회중석의 폭도 한정됐고, 내구성이 없었다. 그러던 것을 로마네스크 성당에서는 넓고 높은 공간을 만들려고 그 위를 돌로 만든 로마 건축의 볼트로 덮었다.
 
그런데 이 돌로 된 둥근 볼트는 무게가 대단했다. 알자스 성 베드로ㆍ성 바오로성당<사진2>에서 보듯이, 이를 지탱하려면 긴 볼트를 가로지르는 아치가 천장을 돌아 좌우에 줄지어 선 아치 기둥에 붙어 내려와야 했다(전동성당이 이와 비슷하다). 회중석 옆에 뚫려 있는 아치는 보통 두세 겹이다. 각기둥으로 받치는 아치가 있고, 그 밑에 약간 폭이 좁은 아치가 이를 보강하면서 반원형 기둥을 타고 내려온다. 위에 있는 아치의 단면은 넓고 아래에 있는 반원기둥의 단면은 좁아서, 그 차이를 주두(기둥머리)가 자연스럽게 줄이고 있다. 주두에는 흔히 성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조각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하고도 건물 전체가 옆으로 밀려나지 않게 성당 외벽을 두껍게 해 지탱하게 했다. 내부는 견고한 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견고한 돌벽이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고, 성당의 안과 밖이 각각 다른 세계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벽이 위에서 내려오는 무게를 다 받아야 했으므로 로마네스크 성당에는 창문을 마음대로 크게 낼 수 없어 내부 공간이 어둡고 어두운 중량감이 감돈다. 그러나 성당 안에 있으면 처음에는 어둡던 공간이 우리 눈이 천천히 열리면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돌벽과 기둥, 천장이 흐릿하게 빛을 반사하며 자기를 주장한다. 그리고 돌은 빛을 자신 안에 담는다. 거칠고 무거운 돌이 공간을 부드럽게 피막처럼 감싼다.

- 알자스 성 베드로 · 성 바오로 성당.
 

고딕 성당에서는 물질이 빛을 위해 있고 유리벽으로 빛나고 있다면 로마네스크 성당에서는 빛이 돌의 질감을 드러내고 형태를 드러낸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빛은 말하는 돌과 침묵하는 돌, 매끄러운 돌과 거친 돌, 재빠르게 움직이는 형태가 들어있는 돌과 내면의 깊이를 전하는 모양을 낸 돌을 모두 다 조용히 드러낸다. 돌은 빛을 위해서도 있고, 빛은 돌을 위해서도 있다. 이에 비하면 고딕 건축에서는 돌의 형상은 그다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로마네스크 성당에는 순례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녀도 미사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제대 주변에 통로를 두고 방사하는 모양으로 제실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성당 뒷면 마당에서 보면 반원형의 구조체가 빙 돌아 붙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관은 고딕과 달리 입방체, 원기둥, 원추 등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 요소들은 중심은 높고 크며, 그 주위로 작고 낮은 부분이 차례로 덧붙는다. 때문에 만드는 방식의 논리가 명쾌하고, 땅에 의연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느낌이 아주 강하다. 또 형태는 단순하고 형태의 윤곽이 뚜렷하며, 공간은 기하학적이다.
 
고딕 건축은 다양한 장식으로 벽의 물질적 존재감을 가능한 한 없애면서 거대해지고자 했다. 그러나 로마네스크 건축은 밖으로는 닫혀 있지만, 그 대신 안에서는 따뜻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더욱이 고딕 대성당처럼 도시 안에 세워지지 않고 시골 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예가 많아, 현존하는 로마네스크 성당은 전원이나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과 일체가 된 예가 많다. 또 그 지방에서 나는 돌을 사용해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은 규격화된 느낌을 주는 고딕 성당과 크게 다른 점이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대체로 10세기 말에서 13세기 초 사이 약 200년간 건설된 교회건축이다. 이 시기에 유럽은 로마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중세로 탈피하고자 했다. 이때는 사회ㆍ경제 안정, 농업기술 진보로 생산력이 증가하고, 인구도 급속히 증가해 그리스도교가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 탄생 1000년에는 하느님 심판이 다가온다고 믿었기에, 세상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이에 따라 순례라는 '걷는 열광'과 수도원이라는 '숨는 열광' 형태로 성당과 수도원이 많이 세워졌다.
 
중세에는 건축이 눈에 보이는 '문화'의 형태였다. 그리고 건축은 시대와 지식의 구조적 상징으로 읽혀지는 텍스트였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서구가 성립하기 시작하던 시대의 전형적 예술 공간이다. 흔히 로마네스크 건축은 고딕 건축으로 발전되기 이전의 준비 단계에 있는 건축으로 잘못 알기 쉬우나 결코 그렇지 않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건축의 구조와 재료 안에서 이러한 '문화'의 형태를 눈에 보이게 하고, 조각ㆍ회화ㆍ성물ㆍ장식ㆍ기도서 등 다양한 표현 영역을 처음으로 표현한 거대한 텍스트였다. 중세의 건축과 조각과 회화를 분리할 수 없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2년 2월 12일,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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