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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 이양등 베드로의 순교와 병인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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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495

대구순교자 20위 시복시성을 준비하며 -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


(19) 이양등 베드로(?∼1868.8)의 순교와 병인박해

 

 

대구대교구 복자성당에 안장된 이양등(李陽登, 베드로)은 허인백(許仁伯, 야고보), 김종륜(金宗倫, 루가) 등과 함께 1868년 9월 하순(*양력) 울산의 장대벌에서 참수치명(斬首致命) 당한 후, 효시(梟示)됨으로써 천주신앙을 증거한 순교자이다.

 

이양등 베드로 등 세분의 순교자가 처형된 것은 1866년부터 무려 8년 동안이나 간헐적으로 지속된 이른바 ‘병인박해’ 기간 중 3기 박해 때였고, 당시 위정자들에 의해서 선언된 일종의 초헌법적 긴급조치인 “선참후계령(先斬後啓令)”에 의해서 처형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병인박해(丙寅迫害)는 당시 천주교회의 문호개방론(門戶開放論)을 배경으로 하여 교회측과 협상을 하던 집권자 대원군(大院君)이, 이 같은 협상을 배척하던 조대비와 노론 벌열들로부터의 비판적 공세에 직면하자, 이를 일시에 무마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단행했던 도덕적 배신행위(背信行爲)이자 정치적 권모술수(權謀術數)에서 비롯되었다. 이 같은 배경 하에서 1866년(고종 3년, 병인년) 초반부터 박해는 조선교회가 중국교회와의 연락통로로 활용하던 서해상의 주요 포구(浦口)를 봉쇄하여, 십자기를 꽂은 당선(唐船)과 조선의 나룻배가 접근하는 것을 엄격히 차단하는 조치가 병행되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선참후계령(先斬後啓令)을 선언하여, 지방관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천주교도를 학살하도록 부추겼다.

 

원래 조선왕조에서는 죄인이라도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하는 나름의 인명존중사상이 깃든 사형제도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른바 ‘사죄수 삼복계 제도(死罪囚三覆啓制度)’가 바로 그것인데, 지방관이 여러 차례의 엄격한 조사를 통해 중앙정부에 보고한 사형수에 대해서 조정에서는 다시 형조(刑曹)와 의정부(議政府)의 대신들이 세 번의 심사를 한 후 그때마다 임금께 보고[覆啓〕를 하여 국왕의 윤허를 얻도록 정한 제도이다. 그런데 ‘선참후계령’이란 이러한 모든 신중한 절차를 무시하고 지방에서 지방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먼저 처형〔先斬〕을 한 후에 그 처형사실을 중앙의 조정에 보고〔後啓〕하도록 하는 일종의 초헌법적 긴급조치에 해당된다.

 

전쟁 때와 같은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군인들에게나 시행할 법한 “즉결처분권(卽決處分權)”과도 같은 ‘선참후계령’은 사실 18세기 초반의 영조 때부터 중국과의 국경무역에서 수입금지품인 고급비단을 몰래 들여오는 장사치들을 단속하기 위해서 선언되면서 1791년 진산사건 때에는 경기도 양근의 양반신자였던 권일신에게도 선언되었지만, 대개의 경우 상징적인 조처로서 강력한 정부의 단속 의지를 표명하는데 그쳤다. 그리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이래 조선왕조의 대전(大典)에 분명하게 기록된 ‘사죄수삼복계제도’의 전통은 ‘선참후계령’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그대로 지켜졌으며, 천주교 신자에 대해서는 병인박해 초기인 1866년 봄에 ‘선참후계령’이 선언되었을 때까지도 여전히 준수되었다.

 

박해로 인하여 베르뇌, 다블뤼 주교와 프랑스 성직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하자, 이에 항의하는 프랑스 군함의 무력시위(1866년 8월)와 강화도 침공·점령(1866년 10월)이라는 병인양요(丙寅洋擾)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양요를 거치면서 프랑스 군함을 인도한 것은 천주학쟁이들일 것으로 단정한 대원군은 1866년 연말에 또다시 ‘선참후계령’을 내리면서 한강변의 양화진(절두산)에서 천주교도를 대규모로 처형하였는데, 이것이 2기의 병인박해였다. 그러나 이때에도 사형수에 대한 ‘삼복계’의 절차가 다소 생략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국왕의 최종윤허를 받고 형을 집행하는 관례가 준수되었다.

 

그러다가 1867년으로 접어들어 박해가 다소간 소강상태가 되었는데, 1868년 봄에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무덤을 파헤쳐 유품을 차지하고 이를 빌미로 대원군과 통상협상을 벌이려 했던 계획(이른바 ‘덕산굴총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뒤 대원군이 다시 한번 천주교도를 “외세와 통하는 불순한 무리”뜻의 ‘통외분자(通外分子)’ 또는 “외적을 불러들이는 무리들”이라는 뜻의 ‘초구지도(招寇之徒)’로 규정짓고 ‘선참후계’에 의한 마구잡이식 처단 [철저한 엄중처벌]을 명하였다.

 

이에 전국에서 다시 맹렬한 천주교도 박해가 진행되었는데, 경상도 지방에서도 박해가 진행되어 실제로 병사(兵使)나 수사(水使), 감사(監司) 등에 의한 선참후계식 천주교인 처단이 보고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8월 4일자 『일성록』에 이정식 등 7명의 천주교 신자가 이미 선참후계로 처단되었던 사실이 기록되었으며, 이어서 8월 15일자에는 당시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였던 윤선응(尹善應)이 김종륜, 허인백, 이양등을 사학죄인으로 몰아 효수경중(梟首警衆 :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이 메달아 둠으로써 군중을 경계함)하였음을 보고(後啓)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경상도에서 서울로 파발을 띄워도 대략 5∼7일 정도의 시일은 소요된 후에야 ‘보고서’가 전달될 수 있었으므로 추측컨대 복자성당의 세분 순교자는 대략 음력으로 무진년 8월 8일 전후에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양력으로는 1868년 9월 24일 전후에 해당) 병인박해는 1871년 신미양요로 다시 한번 흥기하는 데 이를 제4기 병인박해라고 한다. 병인박해는 1873년 대원군의 실권과 함께 8년만에 드디어 종식된다.

 

이양등 베드로는 서울 출신으로 19세기 전반의 간헐적인 박해를 피해 경상도 지방으로 피신하였던 신자로서, 원래 꿀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는 병인박해 훨씬 이전부터 경남 언양에 위치한 대밭(대재, 竹嶺)공소의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김종륜 루가, 허인백 야고보 등의 가족들을 이곳에 맞아들여, 그들과 함께 대재 공소에 은거하면서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평등한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를 영위해 나간다.

 

그러나 시시각각으로 조여오는 박해의 포위망을 피할 길이 없게 되자, 그들 세 가족은 다시 경주군 산내면에 위치한 단석산중 석굴(일명 범바위굴, 소태골)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목기(木器) 만드는 일로 생계를 삼고 있다가 1868년 5월경 경주진영(慶州鎭營)의 영장(營將)이 보낸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양등 베드로는 김종륜 루가, 허인백 야고보 등과 함께 경주 진영의 옥으로 끌려가서 석달간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꿋꿋이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리하여 1868년 8월 경주에서 약 80리 거리의 울산의 장대벌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순교하였다. 이양등 베드로의 시신은 순교 후 그의 동료들의 시신과 함께 형장에 방치된 채로 있다가 허인백 야고보의 부인 박조이에 의해서 형장 부근의 구덩이에 임시로 매장되었으며, 1886년 경주의 진목정 도매산으로 이장되었다. 1932년 5월 대구 월배의 감천리 교회로 이장되었으며 1973년 10월 신천동 복자성당 구내로 이장되었다.

 

당시 이장은 대구대교구 이문희 바오로 보좌주교의 재가를 얻어 신천동 본당주임 이창호 안드레아 신부와 최해달 안드레아 등 본당 사목위원 등을 이장위원으로 구성하여 진행되었다. 박해를 피해 이상적(理想的)인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를 꿈꾸며 서울에서 경상도 산골로, 언양의 대재에서 경주의 단석산중으로 거듭거듭 옮겨다녀야 했던 그의 세상 삶은 춥고 배고프며, 외롭고도 고달팠으나, 용감하게 고문을 이겨내고 순교를 기꺼이 맞이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의 항구한 평화와 천국의 복락을 꿈꾸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신앙인의 영원한 귀감”이 되고 있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마태5,11-12)

 

[월간 빛, 2003년 6월호, 원재연 하상 바오로(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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