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성경자료

[구약]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나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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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3-06 ㅣ No.6917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나훔서

 

 

열두 소예언자 가운데 일곱 번째로 등장하는 ‘나훔’은 ‘위로받은 사람’, ‘위로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훔서를 보면 나훔의 고향이 “엘코스”(1,1)라는 것 외에는 나훔과 관련한 아무런 정보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훔서는 BC 721년경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아시리아가 BC 663년 이집트의 테베를 점령한 다음부터 BC 612년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네베가 함락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 시리아, 티로, 시돈을 모두 다 함락시켰을 만큼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으며,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뒤 남유다에도 100여 년의 시간 동안 간섭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바빌론에서 아시리아를 거스르는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아시리아 내부에서도 왕권 계승을 둘러싼 내전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BC 625년에 메디아와 바빌로니아 군대가 아시리아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BC 612년에 수도인 니네베가 함락되면서 아시리아는 패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나훔 예언자는 우선적으로 아시리아의 박해를 받고 있던 남유다 백성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니네베의 함락, 즉 아시리아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예언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1장 1-8절은 나훔서의 서론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나훔은 여기서 하느님의 열정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나훔은 하느님을 두고서 열정을 지니고 계시며, 보복하시고 진노하시며, 당신의 적들에게 화를 내시는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서론에서는 우선적으로 심판자로서의 하느님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지만 뒤이어 선하신 분이시며, 환난의 날에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분이라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즉 서론에서 나훔은 하느님이 당신을 거스르는 이에게는 심판자의 모습을 드러내보이시겠지만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자로 그들을 돌보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장 9절-2장 3절에서는 유다와 니네베(아시리아)에 내리는 하느님의 신탁이 전해집니다. 먼저 하느님은 나훔의 입을 빌이 “그들이 빈틈없고 그토록 많아도 잘려 나가 사라지고 말리라. 내가 너를 괴롭혔지만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이제 나는 그가 너에게 메운 멍에를 부러뜨리고 너를 묶은 사슬을 끊어 주리라.”(1,12-13)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괴롭혔지만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말은 니네베가 유다에게 하는 말로, 아시리아의 패망으로 인해 유다를 향한 간섭과 박해가 끝나게 됨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니네베가 유다에게 메운 멍에를 부러뜨리고 묶은 사슬을 끊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아시리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가 주어질 것임을 밝히십니다. 니네베의 패망이라는 구원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축일을 지내고 하느님께 드린 서원을 지켜야 합니다(2장 1절 참조).

 

2장 4절-3장은 니네베의 멸망을 지켜본 예언자의 증언이 이어집니다. 메디아와 바빌로니아의 공격으로 니네베는 함락됩니다. 왕궁은 불안에 떨게 되며 왕후는 끌려 나와 사로잡혔으며 니네베에 있는 모든 보물은 연합군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3장에서 나훔은 니네베가 패망하게 된 이유를 두고서 불륜을 저지르고 마술사가 되어 사람들을 홀린 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아시리아가 행했던 위선적인 정책들, 폭력과 거짓으로 약탈을 일삼던 행동들, 하느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던 것들로 인해 하느님께서 니네베를 벌하셨다는 것입니다. 알몸과 치부가 온 민족들에게 드러나고 사람들마다 ‘니네베가 망하였다.’라고 소리치며, 위로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만큼 하느님께서는 이민족들의 손을 빌어 니네베를 완전히 벌하셨습니다. 이러한 니네베의 멸망은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이시며, 당신 백성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구체적 사례가 됩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4년 3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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