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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자캐오가 살았던 성경의 도시 예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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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2-13 ㅣ No.1801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자캐오가 살았던 성경의 도시 예리코

 

 

- 호텔에서 본 예리코와 유다 광야.

 

 

마태오, 마르코, 루카의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다가 “때가 차자”(루카 9,51)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우선은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야 합니다.

 

사마리아는 구약 시대에 솔로몬 임금이 죽은 후 이스라엘이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지고 나서 북 왕국 이스라엘이 수도로 삼은 도시 이름이자 그 일대 지역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야훼 신앙에서 벗어나 이민족의 신들을 섬기는 종교 혼합주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대면하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이는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사마리아 여인이 유다인인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는 요한복음의 이야기나 사마리아의 한 마을이 예수님 일행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는 루카 복음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요한 4,9; 루카 9,53 참조). 그래서 북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이 있는 남부 유다 지방으로 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에둘러서 가곤 했습니다. 이렇게 에둘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가 예리코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40km쯤 떨어져 있는 예리코는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에 속합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예리코는 기원전 9000년쯤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고, 기원전 7000년쯤에는 원시 상태이기는 하지만 이미 도시 형태를 갖추었다고 하지요. 예루살렘이 있는 산악 지방이 아니라 황량한 광야에 있는 예리코에 이렇게 일찍 도시가 형성된 것은 어쩌면 지형적 위치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예리코 시내.

 

 

 

예리코는 수량이 풍부해 오아시스의 도시라고도 불려

 

예리코는 ‘종려나무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종려나무가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종려나무가 많다는 것은 물이 많다는 것인데, 실제로 예리코는 수량이 풍부해 오아시스의 도시라고도 부릅니다. 예리코에 물이 많은 이유는 고도가 낮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예리코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유다 광야 동쪽 끝자락에 있는 예리코는 해발 고도가 –258m입니다. 해수면보다 258m나 아래에 있는 도시인 것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물이 많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예리코는 또한 구약성경에만 60번 이상 나오는 성경의 도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다가 요르단 강을 건너 처음으로 점령한 가나안 땅이 바로 예리코였습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기 6장은 예리코 성읍 점령에 관한 이야기를 잘 묘사하고 있지요. 또 열왕기 하권에는 엘리사 예언자가 예리코 읍성 주민들의 청원을 듣고는 생명력을 잃어 죽은 물이 돼 버린 예리코의 샘물을 다시 살아 있는 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2열왕 2,19-21). 엘리사의 샘물이라고 부르는 이 샘물은 오늘날까지도 예리코 주민들의 주된 식수원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리코는 사제 계급과 레위인들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사제와 레위인 합쳐서 1만2000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에서 강도를 당해 초주검이 된 사람을 외면하고 가는 사람으로 사제와 레위인을 언급하신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로 시작하지요. 이때 ‘내려간다’라는 표현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뜻보다는 실제로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간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발 750m에 있는 예루살렘과 해수면 아래 258m에 있는 예리코의 고도 차이가 무려 1km나 되기 때문입니다.

 

- 엘리사의 샘(좌), 예리코 자케오의 나무.

 

 

예리코는 우리에게 누구를 찾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깨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예리코에 들르시는데, 이곳에서 대단히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요. 자캐오 이야기입니다(루카 19,1-10).

 

예리코에 돈 많은 세관장 자캐오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려고 했으나 키가 작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자캐오는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지요.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묵으신다며 못마땅해 했습니다. 하지만 자캐오는 예수님께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횡령한 것이 있다면 네 곱으로 갚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자캐오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는 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을까? 세관장이라면 기관장인데 왜 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을까. 부유한 그가 재산의 절반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횡령한 것의 네 곱까지 갚겠다고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캐오가 올라갔다고 하는 돌무화과나무는 예리코 시내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자캐오가 오른 그 나무는 아닙니다. 그러나 수령 천 년이 넘었을 커다란 돌무화과나무는 자캐오 이야기를 되새기게 해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소재입니다.

 

복음서들은 또 예수님께서 예리코에서 바르티매오라는 소경을 고쳐 주셨다고 전합니다(마태 20,29-34; 마르 10,46-52; 루카 18,35-43). 소경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에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사람들이 제지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큰소리로 요청하고 마침내 눈을 뜨게 되지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체면도 아랑곳없이 달려가 돌무화과나무 위로 오른 자캐오. 사람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절규한 소경. 그리고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일어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 예리코는 이렇게 우리에게 누구를 찾아야 하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웁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2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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