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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경의 · 동해선 철도 · 도로 연결 착공식을 계기로 본 북한 철도와 성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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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06 ㅣ No.1139

[특집] 경의 · 동해선 철도 · 도로 연결 착공식을 계기로 본 북한 철도와 성당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기차 타고 자유로이 북녘 땅 여행하고 북녘 성당에서 종소리 울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 남북 공동조사단이 북측 철교를 걸어 건너며 철로와 궤도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물길을 따라 문명이 생겨나고, 철길을 따라 근대 도시들이 만들어졌다. 근대 들어 천주교회 공동체도 철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형성됐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의선이든, 경원선이든, 동해선이든, 함북선이든 철길이 닿는 곳마다 도시가 세워지고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12월 26일, 북측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 철도ㆍ도로 연결과 현대화사업이 착공됨에 따라 ‘평화ㆍ협력의 새 시대’의 기적이 울렸다. 설계에만 2∼3년이 걸리는 사업이라 김칫국부터 마실 필요야 없겠지만, 남북이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경의ㆍ동해선 연결사업이 연내에 닻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약속’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남북은 2018년 11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6일간 개성-신의주 구간 400㎞를, 12월 8일부터 17일까지 10일간 금강산-두만강 구간 800㎞를 공동조사했다. 중간 이동 거리를 합치면 18일간 2600㎞를 오가는 강행군이었다.

 

현지 조사에 함께한 박상돈 공동단장(통일부 과장)은 “처음으로 다녀온 북한 철도를 통해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남북을 오가면서 대륙을 향한 한반도의 꿈을 꾸게 되리라 생각한다”며 “이런 이야기를 북측과 같이 나누면서 철도 연결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고 회고했다.

 

대북 제재에 따른 우여곡절을 딛고 시작된 남북 철도ㆍ도로 연결과 현대화 사업은 남북 간 신뢰가 한층 굳건해지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리 철도와 연결될 북한 철도, 나아가 그리운 내 마음의 북녘 성당을 돌아본다.

 

함경도, 곧 관북 천주교회의 핵심 선교 거점이던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 뒤로 덕원역을 출발한 열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동해선을 타고 달리고 있다. 출처=「눈먼 이들에게 빛을」.

 

 

경의선 역사마다 신앙의 숨결은 이어지고

 

다시 잇게 될 남북 철도 중 먼저 경의선을 가보자. 1905년 개통된 경의선은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첫 국제 철도로,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의 대동맥’을 이룬다. 원 노선은 서울역에서 능곡역→일산역→문산역→개성역→사리원역→평양역→신안주역→신의주역으로 이어진다. 서울역에서 경부선과 연결되고, 개성역에서 해주선과 연결되며, 평양역에선 남포선이나 평원선과 연결되고, 압록강을 넘으면 중국횡단철도와 이어진다.

 

서울역을 출발, 군사분계선을 지나 만나는 첫 번째 역은 개성역으로, 휴전선에서 12㎞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개성역과 가까운 개성본당은 1942년에 방유룡 신부가 부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설립했던 교회사의 현장이다. 원래는 38선 이남이었지만, 6ㆍ25전쟁으로 북한땅이 됐다.

 

개성역을 지나면 사리원역에 닿는다. 사리원시를 관할한 사리원본당은 황해도감목대리구가 교구로 승격될 것을 염두에 두고 미래 주교좌성당으로 지은 큰 성당으로, 순교자도 나왔다. ‘사리원의 돈보스코’라고 불린 전덕표 신부로, 전쟁이 터져 피신하던 중 성체를 옮기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려 성당으로 돌아갔다가 인민군에게 잡혀 1950년 10월 순교했다. 현재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사리원을 지나면 평양을 앞두고 중화역에 다다른다. 중화역 인근 중화본당은 원주교구장을 지낸 지학순 주교의 출신 본당으로, 중화는 천주교가 평안도에 진출하는 데 ‘관문’ 역할을 했다.

 

‘관서의 심장’ 평양에 도착하면 평양역과 서평양역, 서포역, 선교리역 등 네 역사가 있다. 평양역에서는 평양교구 주교좌 관후리성당이, 서평양역 인근엔 기림리성당이, 서포역에선 서포성당과 메리놀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지금의 서평양역은 평양시 서성구역으로 옮기는 바람에 기림리본당 관할 구역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평양역에서는 지선인 승호리선을 통해 대동강을 건너면, 선교리역이 나오는 데 이곳 동평양에는 대신리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서포역은 평양역에서 서북쪽으로 11㎞가량 떨어진 경의선과 평원선의 분기점으로, 1931년 준공된 서포 메리놀센터와 한 해 앞서 1930년에 지은 서포성당이 자리했다. 경기도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 옆에 지어진 민족화해센터가 서포 메리놀센터를 모델로 복원됐다.

 

경의선은 평양을 기준으로 철도 상황이 다르다. 개성에서 평양까지는 시속 20∼30㎞로 선로와 궤도 상태가 좋지 않지만, 평양에서 신의주까지는 국제열차가 운행돼 시속 50∼60㎞로 좀더 빠르다.

 

서포에서 다시 올라가면 어파역이다. 이 역에서 6㎞가량 떨어진  영유읍은 평원군 중심이다. 1927년 평양지목구 설정과 함께 영유성당은 지목구 체제를 갖추는 데 밑거름이 됐다. 영유본당 사제관은 규모가 컸을 뿐 아니라 영청학교도 세워져 있어 메리놀외방선교회에서 새로 파견된 사제들이 우리말과 풍습을 익히는 터전이 됐고, 수녀원은 메리놀수녀회 한국지부로 쓰였다.

 

신안주역과 정주역도 있다. 신안주역 인근 안주본당은 성모학교와 성모병원을 세워 교세가 크게 신장돼 1937년 무렵엔 교세가 1000명에 이르렀으며,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최창화 신부가 안주 출신이다. 청천강 하류에 끝자락을 걸친 평북 정주는 경의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정주본당은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면서 비현본당 공소로 격하됐다가 1944년 8개월간 평양지목구의 두 번째 한국인 사제 강영걸 신부가 사목한 것을 마지막으로 폐쇄됐다.

 

정주역을 지나 신의주로 향하는 길목에 비현역이 있다. 의주군 비현면(현 피현군 피현읍)에는 1930년대 중반에 신자 수가 3000명에 육박할 만큼 컸던 비현본당이 있었는데, 일제와 공산당의 탄압으로 성심학교가 폐교되면서 본당 활동이 크게 위축됐고, 6ㆍ25전쟁 발발 직후 주임 김동철 신부가 평양교구 사제 중 맨 마지막으로 잡혀가 북녘땅에서 사제가 사라지게 됐다. 비현성당과 성심학교 건물은 지금도 인민학교와 공예당 용도로 일부 변형돼 남아있는 것으로 탈북자들을 통해 확인됐다.

 

경의선의 종착역 신의주역은 중국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로, 신의주에는 붉은벽돌 구조 이면서도 2층의 한옥 지붕을 둔 한ㆍ양 절충식 교회 건축물로 지어진 진사동성당이 있었는데, 이 성당은 2013년 6월 봉헌된 의정부교구 참회와 속죄의 성당의 모델이 됐다.

 

 

 

신앙 거점은 동해선 따라 관북으로

 

동해선은 부산에서 원산까지만 연결할 목적으로 추진되다가 두만강까지 연결된 노선이다. 역시 ‘분단된 철도’다. 2007년 남북 열차 시험운행으로 일시 북측 금강산청년역(옛 외금강역)과 남측 제진역(동해선철도남북출입사무소)을 연결했으나, 영업을 개시하지 못한 채 방치돼 왔다.

 

동해선 구간은 고성 제진역에서 감호역→금강산역→안변역→고원역→원산역→흥남역→신포역→청진역→나진역→물골역을 거쳐 북쪽 끝 두만강역에 이르러 대륙철도와 이어진다. 그러나 함경도 일대 관북 지역은 기후나 풍토가 척박한 데다 강설량이 많아 철도의 노후화가 심각하다.

 

관북에서도 동해선을 따라 신앙의 터전이 펼쳐졌다. 맨 먼저 1914년 경원선 개통과 함께 완공된 원산역은 원산성당과도 가까웠다. 원산성당은 1920년 7월 5일 원산대목구 설정과 함께 주교좌성당으로 기능하면서 관북(함경도)은 물론 간도(연변) 선교의 거점이 됐다. 이 원산성당은 지금도 종탑이 잘린 채 살아남아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해선을 타고 더 올라가면 그 유명한 덕원역이다. 이 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첫 남자 수도회인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은 걸어서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한 덕원수도원과 성당은 중세 독일의 히르사우(Hirsau) 수도원을 모델로 지어져 당시 오틸리아연합회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이자 성당으로 꼽혔다. 지금도 원산농업대학 건물로 쓰이고 있다.

 

평양직할시에 이은 북한 제2의 도시이자 함경남도 도청소재지인 함흥의 관문이 함흥역이다. 이 지역을 관할했던 함흥본당은 1940년 함흥대목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가 분리되면서 함흥교구의 주교좌로 지목됐지만, 일제 탄압과 공산화로 주교좌성당을 짓지는 못했다.

 

함경북도 도청소재지 청진의 관문은 청진역이지만, 그에 앞서 나남역이 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주둔한 일본군 2개 사단 중 19사단이 주둔한 나남 일대는 1928년 서울-청진 간 557㎞ 철도 노선이 개통되면서 산업지대로 급부상했고, 공동체 또한 활성화됐다. 나중에 나남을 합쳐 함북의 최대 도시가 된 청진엔 청진역이 관문 역할을 했다. 청진본당은 덕원수도원이 회령본당에 이어 설립한 두 번째 본당으로, 이웃한 나남본당과 함께 선교 활력이 넘쳤던 공동체였다.

 

동해선 끝자락 나진역과 물골역, 두만강역 일대는 나진웅기본당 관할 구역이었다. 중ㆍ러와 국경을 접한 라선특별시 일대로, 원산대목구장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가 미국의 은인들에게서 후원금을 받아 나진에 대지를 사들인 뒤 1935년 본당을 설립해 운영했지만, 1948년 함흥대목구의 임화길 신부가 쫓겨나면서 침묵의 본당이 됐다.

 

이제 남북 철도를 하나로 잇는 대장정은 가까스로 시작됐지만, 대북제재 때문에 공사가 계속될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비핵화 문제만 진전된다면, 철도 연결 역시 진전이 있을 터이지만, 아직은 시계가 그리 밝지 않다.

 

평양교구 사제단 총무 장긍선(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 신부는 “북녘땅에 교회가 다시 부활하는 그 날이 오면 철도를 따라 성당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철도를 따라서 물류 이동만인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과 축복이 함께 이어지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월 6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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