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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평신도: 한국 교회사를 통해 본 평신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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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21 ㅣ No.79

[지금 여기 평신도] 한국 교회사를 통해 본 평신도 선교사

 

 

평신도 선교사의 현황

 

‘선교사’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단의 사제와 수사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중국에 복음을 전한 예수회 회원이나, 1836년 이후 조선에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의 회원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교사들이다.

 

그러다가 19세기 이후에 선교 임무를 수행하는 수녀들이 선교사의 범위에 포함되었고, 이어 교회 내에서 점차 평신도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오늘날에는 선교 활동을 하는 평신도까지도 선교사로 일컫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으로 파견되는 평신도는 ‘선교사’, 국내에서 비신자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전교 회장’ 또는 ‘전교사’로 구별하다가, 1986년 이후에 국내에서 선교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포괄적으로 ‘선교사’라고 칭하게 되었다.

 

1986년에 가톨릭교리신학원(서울)에서 수여하는 자격증의 명칭이 ‘전교사 자격증’에서 ‘선교사 자격증’으로 바뀐 것이 계기가 되었다(「사목」 제206호, 1996.3). 그러나 주교회의에서 발행하는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는 2011년까지 ‘전교사’라는 용어를 썼고, 2012년부터 ‘평신도 선교사’라고 표기하고 있다.

 

오늘날 평신도 선교사는 각 교구에서 설립한 교리신학원을 졸업하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다. 해외 선교사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와 같은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양성 과정을 통해 파견된다.

 

2017년 12월 현재 국내에는 118명의 평신도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으며,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서는 1990년에 처음으로 평신도 선교사를 해외로 파견한 이래, 2015년 11월까지 열다섯 번에 걸쳐 필리핀과 대만, 피지, 미얀마 등에 평신도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평신도 선교사들은 본당의 교리 교육과 신자 재교육을 담당하거나, 공소에서 선교 대상자와 함께 생활하며, 냉담하는 신자들을 돌아오게 하고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소뿐만 아니라, 평신도 선교사들은 사제나 수도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지만 교회의 배려가 필요한 곳에서 묵묵히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박해 시대의 전교 회장

 

평신도 선교사라는 명칭은 1986년 이후에 사용되었지만, 그러한 역할을 하는 평신도들은 박해 시대부터 있어 왔다. 전교 회장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바로 평신도 선교사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은 교회의 설립을 주도했고, 100년의 박해 시기 동안 교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 선교사들을 도와 활동하던 대표적인 평신도가 바로 회장이었다.

 

조선 교회의 회장제는 1795년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가 도입하여 시행하였다. 주문모 신부는 사목상의 필요에 따라 총회장, 공소 회장, 명도회장, 여회장 등 여러 회장들을 임명했는데, 그중에 전교 회장도 있었다. 주문모 신부가 활동하던 시기의 전교 회장은 명도회의 회원들이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신도 선교사들이 교리신학원에서 공부하듯이, 박해 시기의 전교 회장들도 교육을 통해 양성되었다. 명도회원들이 교리 연구를 했다거나, 1827년에 순교한 이경언 바오로가 북경 주교의 명령에 따라 남·여 회장들을 선발하여 양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베르뇌 주교는 1856년 11월에 전교 회장을 양성하는 학교의 설립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박해 시대 때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회장규조」에는 교우들의 영혼을 구하는 일, 비신자들에게 전교하는 일, 병든 사람을 보살피고 위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 어린아이들에게 대세(代洗)를 주는 일 등을 회장의 본분으로 제시하였다.

 

이 본분은 공소 회장에게 요구되던 것이었다. 따라서 「회장규조」에 따르면 박해시대의 전교 활동은 전교 회장만이 아니라 공소 회장의 역할이기도 했다. 다만 공소 회장은 일정한 장소에서 활동하는 반면, 전교 회장은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근·현대의 전교 회장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하면서 한국 교회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순교하거나 중국으로 탈출했고, 지도급 신자들은 대부분 순교하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신자들은 생활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다가 1876년 2월 조선이 일본과 수호 조약을 체결하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1876년 5월에 블랑 신부와 드게트 신부가 입국하였다.

 

10년 만에 재입국한 선교사들은 교회를 재건하려고 예전의 신자들을 찾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의 전교 활동을 통해 교회의 정착과 성장을 도모했다. 그러나 신자들은 전교에 무관심했고 열의도 없었다. 이에 블랑 주교는 1889년에 전교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유급(有給)의 ‘순회 전교 회장’을 양성할 계획을 세웠다.

 

‘전교 회장 학교’는 1889-1890년에 설립되었고, 시골에서 선발된 아홉 명의 신자가 두세 신부의 후원 아래 서울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891년에는 전교 회장으로서 지방으로 파견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많은 비신자를 입교시켰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그들에게 복음의 길을 터놓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전교 회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1923년에 간행된 「회장직분」에 따르면, 당시 한국 교회에 존재했던 회장으로는 본당 회장, 공소 회장, 전교 회장, 여회장이 있었다. 이 가운데 전교 회장은 본당 신부의 지시에 따라 본당이나 다른 어떤 공소에서든 전교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냉담한 교우를 찾아가 그들을 다시 신앙으로 인도하고, 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쳐서 신앙을 갖게 하였다. 「회장직분」은 전교 회장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일에 힘쓰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이 직분을 수행하려면 애덕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불같은 열성, 묵상과 기도, 착한 표양과 덕이 넘치는 행실, 어떤 사람이든 겸손하고 부드럽고 인내로써 대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필요한 교리를 배우고, 성경과 여러 가지 교회 서적들을 부지런히 공부할 것도 요구하였다.

 

한편 한국 교회는 1911년에 대구대목구가 분할된 이후 여러 번 선교지의 분할이 있었다. 그리고 신설된 교구들은 선교지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에서 전교 회장을 활용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주인 의식과 평신도 선교사

 

「회장직분」의 ‘전교 회장’ 항목에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일, 비신자들에게 전교하는 일, 대세 주는 일을 전교 회장의 역할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박해 시대의 「회장규조」에 수록된 내용과 거의 같고, 오늘날 평신도 선교사들의 임무와도 유사하다.

 

아울러 전교 회장과 평신도 선교사들은 애덕과 열성, 착한 표양, 겸손과 인내심, 교리 지식 등 요구되는 조건과 덕목도 비슷했다. 따라서 평신도 선교사는 전교 회장의 전통을 잇고 있고, 그들과 같은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교 회장을 비롯한 박해 시대의 평신도들은 교회를 설립한 자부심과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주인 의식이 있었다. 전교 회장들이 성직자가 부족한 박해 시기에, 목숨을 걸고 활동한 것도 이러한 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 교회가 오랜 시련에도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주인 의식으로 무장한 평신도들의 활동과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러한 주인 의식과 역사의식을 지닌 평신도가 얼마나 될까? 평신도 선교사들은 이러한 의식을 토대로 실천하는 신자 집단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도적, 경제적 뒷받침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감내하고 이전 시기의 전교 회장처럼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헌신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리고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평신도 희년의 ‘전교의 달’에, 평신도로서의 올바른 역할이 무엇인지를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 방상근 석문 가롤로 - 내포교회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역사와 고문서 전문가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19세기 중반 한국천주교사 연구」, 「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0월호, 방상근 석문 가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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