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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사도직단체를 찾아서: 가톨릭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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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29 ㅣ No.108

[평신도 희년] 평신도사도직단체를 찾아서 (9) 가톨릭농민회


이 땅에 ‘생명’ 심으며 하느님 창조 사업 동참

 

 

인권 운동과 농민 권익 운동에 앞장서며 이 땅의 정의를 부르짖는 원천에서, 생명 존중과 공동체적 삶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생명 공동체로. 가톨릭농민회(회장 정한길)가 걸어온 지난 50년 역사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악에 맞서온 항쟁의 역사이자 농민의 권리와 우리 농산물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 온 한국 농민운동의 역사다. 가톨릭농민회는 한국 현대사와 매 순간 함께 호흡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바탕으로 시대의 요구에 응답해 왔다.

 

2017년 5월 15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열린 가톨릭농민회 창립50주년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톨릭농민회 제공.

 

 

농촌 문제 본질을 인식한 청년들

 

가톨릭농민회의 모태는 1964년 10월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안에 설립된 ‘농촌청년부’다. 농촌청년부는 본격적인 농촌계몽활동을 펼치기 위해 1966년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로 독립한다. 농사기술 개발, 협업 농장 구상 등 소박한 운동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던 가톨릭농촌청년회는 1970년대 들어 농민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게 된다. 도시 중심의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농촌과 농민 소외 문제가 본격화된 1972년 4월 5일 가톨릭농민회가 공식 출범한다.

 

 

엄혹한 시절, 정권에 맞선 농부들 

 

가톨릭농민회는 ‘농민의 경제적 정의 실현, 농민의 사회적 지위 향상, 전체 농민의 단결과 공동 활동을 위한 조직 강화’를 구체적 활동 목표로 확인하고 점차 전국 조직으로 발전했다. 1976년에는 6개 도에 걸친 연합회가 구성됐고 1976년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교회 공식 단체로 인준됐다. 

 

가톨릭농민회는 1974년 농지 임차관계 조사, 1975년 민간차원의 최초 쌀 생산비 조사 등을 진행해 정부 농업정책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농민운동의 질적 발전을 이뤄냈다. 또한 엄혹한 유신시대 정권에 용기 있게 맞서 농민운동 탄압 중지, 긴급조치ㆍ유신헌법 철폐 등을 주장하며 사회 정의구현에 앞장서게 된다.

 

특히 1976년 함평 고구마 사건과 1979년 안동 농민회 사건은 농민운동 탄압에 정면으로 맞서며 농민의 인권까지 무자비하게 외면한 채 자행되는 획일적 농정을 비판하고 정권의 도덕성까지 고발한 역사적 사건이다. 유신 말기 고조된 민주화 열기 속에서도 가톨릭농민회는 민주화와 농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에 앞장섰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더 격렬해진 1980년대 가톨릭농민회는 농촌 사회 민주화와 농민 권익 보호를 위한 중심 조직으로 활약했다. 전국 단위 조직을 가진 단체로 6·10민주 항쟁을 주도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확대되는 농민 대중 움직임에 부응하는 농민운동 통일과 단일조직 건설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전국농민운동연합 탄생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7년 여름 도시와 농촌 공동체가 연대해 생명 먹거리를 생산하는 손모심기 체험 행사 참가자들이 모를 심고 있다. 가톨릭농민회 제공.

 

 

생명과 해방의 공동체로 

 

전국농민운동연합 탄생 후 가톨릭농민회는 전환점을 맞는다. 1990년 2월 열린 제20차 대의원대회에서 「생명과 해방의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선언문이 발표됐다. 이 선언문을 통해 가톨릭농민회는 생명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일체의 반생명적 질서를 추방하는 데 앞장서며 땅과 농민을 살리는 생명의 농업에 충실할 것을 결의했다. 민주화 이후 새롭게 열린 지평에서 가톨릭농민회 또한 ‘생명공동체 운동’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생명공동체 운동은 농업은 생명산업, 농촌은 생명의 터전, 농민은 생명 일꾼으로 규정한다. 생명공동체 운동은 ‘나로 시작된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으로 생태적인 방식으로 이웃과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활동이다. 정치 사회적 변화를 통해 농민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 중심이었던 90년대 이전의 활동에서 변화를 맞은 것이다. 

 

1990년대는 생명공동체 운동의 기반을 조성해 나간 시기인 동시에 가톨릭농민회가 한국교회 전체와 더욱 밀접한 유대를 쌓고 도농공동체 운동을 구체화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주교회의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농촌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자 도농이 연대해 농촌을 지키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인준했다. 이듬해인 1995년에는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제정해 교회 전체가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깨닫고 농민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날로 보내왔다.

 

 

50주년, 새로운 미래를 향해 

 

2016년 가톨릭농민회는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2017년에는 50년사를 발간하고 지역 생태계를 살리며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생명농업 실천과 도농공동체 운동을 확대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한국 사회의 모순과 구조적 악에 맞서 싸워 온 50년, 그러나 가톨릭농민회가 걸어야 할 길은 여전히 멀고 오히려 더 험해졌다. 농촌과 농민의 고립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생명 경시 풍조는 꾸준히 확산돼 왔다. ‘해방과 통일’, ‘생명과 평화’의 공동체 건설을 위한 가톨릭농민회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가톨릭신문, 2018년 7월 29일, 정다빈 기자]

 

 

가톨릭농민회 정한길 회장 - “하느님 보시기 아름다운 세상 생명공동체 운동으로 이뤄야”

 

 

서울 봉천동 가톨릭농민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한길 회장은 “생명 농업을 이어가는 농민들의 삶을 지지할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당부한다.“농업이 경시되는 상황에서도 땀을 흘려 농사짓는 농민들이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함께하고 있음을 깨달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농사일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가톨릭농민회 정한길(베네딕토) 회장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농민을 위한 기도문’이 먼저 보인다. ‘농업이 경시되는 상황’이라는 문구처럼 정 회장은 “일용할 양식을 생산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함에도 농민이 소외되고 농업이 천시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사를 지어야 환경이 보존되며 안전한 우리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정 회장은 “농업은 그 자체로 공익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농업의 가치는 폄훼됐고 농촌의 공동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정 회장은 “농민들을 존중하고 특히 생명 농업을 이어가는 농민들의 삶을 지지할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당부했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합당한 생명 친화적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이웃과 모든 생명과 어울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가톨릭농민회’의 존재가 소중한 이유다. 

 

전국 75개 분회, 908세대가 가톨릭농민회의 회원으로 생태적 농촌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고 있지만 농촌 인구의 감소, 고령화 문제는 가톨릭농민회도 예외가 아니다. ‘귀농’, ‘귀촌’ 바람이 불며 농촌을 찾는 이들이 늘고 그 가운데는 가톨릭농민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농민회의 지향을 실천하는 삶은 무척 힘든 과정이기 때문에 귀농인들이 농민회에 합류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비료, 농약을 거부하고 생명 친화적인 농사를 지으며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우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정 회장은 “가톨릭농민회가 펼치는 생명 공동체 운동이 교회 전체로,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로 확대돼야만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체를 이뤄 생태적 삶을 사는 것이 비단 가톨릭농민회 회원들만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값진 조언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7월 29일, 정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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