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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마음이 머무는 피정: 예수고난회 서울 명상의 집 - 독서 피정, 하느님을 향한 책 읽기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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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3 ㅣ No.815

[마음이 머무는 피정 - 예수고난회 서울 명상의 집] 독서 피정


하느님을 향한 책 읽기와 글쓰기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초록에 지쳐’ 단풍이 들었다가 잎을 모두 떨군 채 흰 눈과 매서운 겨울바람 앞에 벌거벗은 풀과 나무들. 푸나무의 한해살이 가운데 겨울은 어떤 의미일까?

 

“절망인가? 천만에. 피정을 아시는지? 잡다한 일상의 사무로부터 조용한 곳으로 피하여 오랜 시간 자신을 살피며 기도하는 일을 일컫는 아름다운 천주교 사투리다. … 그렇다. 푸나무는 다만 피정에 들었을 뿐이다”(「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이윤기, 시공사, 2002).

 

 

고요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

 

서울 강북구 삼양로179길 283. 우이동 종점에서 우이동 둘레길 방향으로 산행길에 들어 30여 분, 1.8㎞를 오르면 산세가 아름다운 북한산 중턱에 ‘명상의 집’이 있다.

 

1977년 문을 연 서울 명상의 집은 같은 이름으로 광주(1969년)와 강원도 양양의 오상영성원(1999년)과 함께 피정을 주요 사도직으로 하는 예수고난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이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속에 자리 잡아 고요하면서도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흙길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소음 공해에서 벗어나 솔향기 가득한 숲속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며 하느님과 깊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명상의 집에서는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을 시기와 대상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먼저 깊은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전통적인 침묵 피정에는 다양한 이들이 찾아와 기도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다. 사순시기에는 예수님의 수난 묵상 피정을 진행한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체험하는 북한산 둘레길 도보 피정, 성경을 읽으면서 ‘나 자신’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다시 보고’ ‘풀어내는’ 성경 통독 피정, 노년의 삶과 죽음을 심리적 영성적 신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일지를 다룬 어르신을 위한 피정이나 성지 순례 피정도 한다.

 

또한 송년 피정이나 설 연휴 피정, 그리고 특별한 주제로 하는 월 피정(토요일), 다양한 형태의 단체 피정도 있다. 다달이 첫째 주 금요일에는 하루 무료 피정을 진행하기도 한다.

 

 

독서 피정은 삶과 신앙 되돌아보기

 

변화하는 교우들의 요구에 응답하고자 새로운 형태의 피정을 연구하고 개발한다는 명상의 집은 올해 피정 목록에 이름조차 낯선 피정을 하나 더했다. 바로 ‘독서 피정’이다. 이름만으로는 거룩한 독서인 ‘성독’(Lectio divina) 피정이나 ‘성경 통독’ 피정이라 오해할 법도 하다.

 

피정을 준비한 방교원 도미니코 사비오 신부는 독서 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과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중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책입니다. 현대인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꾸준히 책을 읽는 교우도 많습니다. 독서 피정은 이렇게 책을 읽고 있는 교우들이 일반적인 독서에만 그치지 않고, 신앙 심화와 신앙 쇄신과 성숙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주는 시간입니다. 또한 이들이 서로 만나는 시간이며, 더불어 읽고 쓰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 주님께 받은 축복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이윤기 씨의 글처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적으로 축기하는 피정을 책과 함께 해 보자는 의도라고 했다.

 

방 신부에 따르면 독서 피정의 핵심은 “인간과 인간의 삶과 하느님에 대한 책을 통해 신자를 재교육하는 것”이다. 여기서 재교육이란 신앙의 성장과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지향한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고 서로 나누면서 스스로 자신들의 삶과 신앙을 키워나가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 피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다네이 글방’과 ‘다네이 고전 읽기’가 있다. ‘다네이’는 예수고난회의 창립자 ‘바오로 다네이’의 성으로,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다네이 글방’이다. 2012년 방 신부가 시작해 지금은 여러 곳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독서 피정은 본디 이들 모임의 친목을 위한 시간으로 기획되었다가 피정으로 바뀌었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까지 열린 것이다.

 

 

첫 번째 독서 피정

 

대중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엄청난 변화를 이루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와 철학을 일깨워 준 책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스승이 아닐까? 하지만 요즘은 정말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 책의 자리는 휴대 전화와 태블릿 같은 전자 기기가 차지했다. 그러고 보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 전통적인 독서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책 읽기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과 사람을 읽고 깊이 성찰하는 독서는 계속 이어져야 하리라.

 

독서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지난 1월 27일 서울 명상의 집에서 열린 첫 번째 독서 피정에 참여했다. 2일 동안의 피정에는 스물한 명의 참가자가 ‘잡다한 일상의 사무로부터 피하여’ 자신을 살피는 시간을 가졌다.

 

‘독서’라는 이름의 피정에 걸맞게 참가자들은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에 대한 나눔으로 피정의 문을 열었다. 박 미카엘 씨는 “내가 힘들고 길을 알 수 없을 때 책은 친구가 된다.”고 했고, 이 데레사 씨는 “빛이 되고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이 책”이라고 했다.

 

피정은 ‘글쓰기와 신앙생활’, ‘하느님을 향한 책 읽기와 글쓰기’란 주제의 강의, 떼제 성가와 성체 강복, 사진 말 나누기 등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휴식 시간이 되면 참가자들은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피정 중에는 책 읽기와 함께 글쓰기도 진행되었다.

 

방 신부는 “글쓰기는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이의 말에 따르면 생각을 명료하게 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글쓰기다.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읽은 것, 생각한 것, 체험한 것을 글로 써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다. 글쓰기는 고통뿐만 아니라 기쁨을 맛보게 한다.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쓰는 기쁨이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생소하지만 나를 돌아보는 시간

 

독서 피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첫 번째 피정, 참가자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미사 때 나눈 이야기들을 옮겼다.

 

“시작할 때는 쇠줄을 단 듯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안개가 걷히듯 환해졌습니다. 하느님을 깊이 만난 시간이었고, 내 안의 쉼표와 마침표를 찍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찾는 시간을 기대했는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생소한 피정이었지만 수필을 쓰듯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어요. 숲속을 거닐다 예쁜 길을 만난 듯한 피정이랄까요.”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특별히 감사한 것은 공기나 햇볕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어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한 것이 아쉬워요. 좀 다듬어서 여유롭게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독서는 주도적으로 자기를 양성하고 성숙하게 할 좋은 기회다. 그래서 본당마다 독서 모임이 생겨 함께 책을 읽고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독서 피정도 좀 더 집중되고 심화해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앞의 책에서 이윤기 씨가 쓴 글을 옮긴다. “겨울은 피정의 철이다. 충전의철, 축기(縮氣)의 철이다. 이 겨울을 힘에 겨워하는 이들을 겨누고 쓴다. 밖에서 겨울을 나지 않은 알뿌리 식물은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못한다.”

 

이른 봄 나무에 돋아난 새싹이 아름다운 건 지난 겨울 가지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매서운 바람을 견뎌냈기 때문이 아닐까?

 

신앙과 이성이 조화롭게 성장해야 한다. ‘신앙만’ 강조하다 보면 절름발이가 될 수 있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 마지못해 신앙생활을 하는 이가 많아지는 이유가 된다. 성경 묵상을 어렵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름진 토양에서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그것은 짧은 시간의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삶이 접목되어야 신앙은 비로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책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독서 피정을 하는 진정한 이유다.

 

* 문의 : 서울 명상의 집 ☎ 02-990-1004 다네이 글방 010-9503-1127

 

[경향잡지, 2018년 3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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