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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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평화의 어머니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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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4 ㅣ No.470

[레지오 영성] 평화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 그리스도를 낳아 기르시고 평생 따르신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예수님과의 깊은 일치 안에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고 봉사하는 레지오 마리애는 우리나라에서 1953년에 시작하여 오늘까지 교회 안에서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직 신심단체가 뭔지도 모를 때에도 성당 안에서 어른들이 ‘레지오 마리애’라는 용어를 자주 쓰시는 것을 들을 정도로 어느 본당에서나 레지오 단원들의 활동은 매우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로마에서 유학할 때 같은 기숙사에 살던 스위스 신부가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매주 수요일 저녁 로마 인근 본당에 가서 레지오 마리애 지도신부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친해졌는데, 제가 한국 신자들의 깊은 성모신심과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소개하면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장은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빼고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하자 그 친구가 한국을 언젠가 꼭 방문하고 싶다고 한 일이 기억납니다. 기도하며 봉사하고 전교에 앞장서 온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에게 이런 기회를 드려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레지오는 가장 먼저 성모님과 영적으로 일치해야

 

레지오 마리애는 글자 그대로 ‘성모님을 따르는 영적 군대’입니다. 그래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성모님과 영적으로 일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창세기에서부터 예언된 분이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지 못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느님께서는 장차 인간을 악으로부터 구원할 메시아를 약속하시면서 ‘한 여인’을 메시아와 함께 악에 대적할 인물로 정하셨습니다.(창세 3,15)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 가운데 하느님을 낳아줄 여인을 예언하였고(이사 7,14), 미카 예언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위대한 목자가 될 인물을 낳아줄 여인을 예언하였습니다.(미카 5,1-3)

 

마리아는 이렇게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분이시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에 남다른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받은 것은 아닙니다. 처녀로서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고 깜짝 놀랐지만 천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순명하였습니다. 이것이 하와와 마리아의 차이입니다. 하와는 충분히 행복했지만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유혹에 하느님의 말씀을 거슬렀고,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순명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 일이 주변에 알려진다면 마리아는 요한복음 8장에서 보는 것처럼 군중들 앞에 끌려나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낳은 뒤에도 성모님의 삶은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도 성모님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여러 차례 만나야 했고, 그때마다 오로지 그 일은 마음속에 새겨 두었습니다.(루카 1,28-29; 2,16-19.51-52) 성모님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당장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셨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후에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강림을 체험하셨을 때 성모님께서 평생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아두신 모든 것들이 남김없이 그분 안에서 꽃을 피운 것입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어느 사도보다도 예수님을 잘 아는 분이 되셨습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십니다. 말씀은 태초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때가 차자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에 오시어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성모님께서 말씀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여 세상에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우리 안에 사시게 해야 합니다. 그만큼 말씀과의 깊은 친교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모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면 주님 안에서 행복하고 이웃을 행복하게 해

 

이해하기 힘든 주님의 일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되새기며 사신 성모님은 우리 역시 우선 주님 말씀을 그리고 나아가 우리 이웃의 말과 행동을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모범이 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웃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내 생각과 이익에 따라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때 우리는 주님 말씀을 잘 들을 수 없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을 계속하는 사람이 어쩌면 나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이웃의 언행에 즉각적이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보다 먼저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사이의 사랑과 진정한 평화는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결국 하느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가 되셨습니다. 그것이 성모님이 원하신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인간과는 비할 수 없이 강하신 분이 가장 약한 모습이 되신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돈이 중심이 되고 군사력이 중심이 되는 오늘날 세상의 힘의 논리와는 정반대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용서할 줄 모르고 화해할 줄 모르며 늘 자신이 질서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사람 혹은 집단은 이미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정한 정의나 평화는 이루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믿는 그리스도인, 특별히 성모님과의 깊은 영적 일치 안에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는 것인지, 그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정의와 평화가 어떤 것인지, 성모님의 삶 안에서 깊이 묵상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모님과 깊은 일치 속에서 사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행복하고 또 이웃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9월호, 김종수 아우구스티노(대전교구 총대리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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