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샤르트르 대성당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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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30 ㅣ No.252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4)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


구약에 목말 탄 신약

 

 

샤르트르 대성당 남쪽 란셋창. 중앙의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목말을 타고 한 쌍을 이룬 인물상들이 두 개씩 자리하고 있다. 붉은 선 안이 다니엘과 마르코가 새겨진 란셋창과 그것을 확대한 모습. 13세기, 샤르트르 대성당, 프랑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의 난쟁이(nanos gigantium humeris insidentes)이다. 따라서 그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먼 곳에 있는 것까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시야가 더 예리하거나 신체적으로 특출나기 때문이 아니라 거인들이 그들의 키만큼 우리를 높이 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중세 프랑스 스콜라 철학자 샤르트르의 베르나르).

 

학기 초 학교 게시판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과거’라는 문구를 보고 꽤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다. 인천교구 ‘열린 교회사 학교’의 주제 문구였는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화하지 않고 지속되며 흘러가고 있는 삶의 깊은 뿌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요즘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늘 미래만을 이야기하며 근간이 없는 모래성 위에서 허황된 낙관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과거가 없는 현재, 현재가 없는 미래가 있을까. 오늘 함께 살펴볼 샤르트르 대성당 남쪽 장미창 아래에 놓인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 도상(圖像)은 진정한 역사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샤르트르 대성당에는 모두 3개의 장미창이 있다. 그리고 각각 ‘예수님의 강생’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영광의 그리스도’를 표현한 3부작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남쪽 장미창 하단의 다섯 개의 란셋창(꼭대기가 뾰족한 높은 창문)에는 중앙의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로 2명이 목말을 타고 한 쌍을 이루고 있는 인물상들이 두 개씩 자리하고 있다. 성모자상 좌측에 예레미야와 루카, 이사야와 마태오 그리고 우측으로는 에제키엘과 요한, 다니엘과 마르코가 표현된 이 도상은 구약과 신약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부활의 신비를 상징하는 성경 말씀을 표현하고 있다. 각 인물을 연결하는 「공동 번역 성서」의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대성당 남쪽 란셋창에 새겨진 다니엘과 마르코.

 

 

“앞으로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나 야훼가 분명히 일러둔다”(예레 31,31).

 

“음식을 나눈 뒤에 또 그와 같이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하셨다”(루카 22,20).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

 

“이제 너는 이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에제 37,12).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1.9).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다”(다니 7,13-14).

 

“예수께서는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마르 14,62).

 

과거 역사를 토대로 더 나은 현재와 미래가 존재함을 역설한 샤르트르의 베르나르의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에서 영감을 받은 구·신약의 인물상은 그리스도 강생과 부활의 신비가 예언되어 드러나고 계속되고 있음을 빛과 색채를 담은 이미지로써 보여 주고 있다. 예술적 영감의 단초가 된 텍스트에 신학적 메시지를 담아 이미지화한 중세인들의 상상력과 재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게 된다.

 

[평화신문, 2016년 5월 1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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