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성미술ㅣ교회건축

내가 뽑은 교회건축: 마드리드 산타 모니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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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17 ㅣ No.123

[교회건축을 말한다] 내가 뽑은 교회건축 - 마드리드 산타 모니카 성당


- 산타 모니카 성당 내부.
 

2002년 준공된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작은 성당이다. 스페인은 아직도 가톨릭 신앙이 왕성한 지역이다. 지난 시기 꾸준히 그러했듯 지금도 새로운 성당이 계속 지어지고 있는, 유럽권에서는 흔치 않은 나라이다. 더구나 과거 유형을 답습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새로운 성당 모델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산타 모니카 성당은 마드리드에서 흔히 얘기하는 좌익이 포진한 동네에 위치한다. 유럽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커다란 기준에는 종교의 유무가 있다. 따라서 교회 건축이 들어오는 지역적 저항이 많았고, 건축가 비센스 엔 라모스는 지역의 요구에 따라 세 번이나 설계를 다시 했다고 한다.
 
작년에 여러 신부님들을 모시고 이 성당을 방문했을 때 벽에 남아 있는 저항의 자국들, 굳건히 닫혀 있는 어딘지 모르는 음습한 분위기, 무엇보다 코르텐 스틸 재료의 낯선 형태에 많은 분들이 거부감을 가졌던 듯하다. 연락도 잘 안 돼서 성당 겉모습만 봤고, 일정을 바꿔 일요일 미사 시간에 다시 방문하면서 이 성당에 대한 모든 인상을 바꾸게 됐다.

교회 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높은 종탑을 휘어서 여러 방향의 빛을 받아들이는 장치로 번안한 참신한 외관도 그렇거니와, 작은 규모이면서도 사제관과 본당과 소성당을 압축해 주변 정황에 녹여 놓은 솜씨, 그리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내부 공간을 절제해 구성한 감각은 그날 마침 여러 세대가 어울려 미사를 봉헌하는 정겨운 광경과 어울려 모두에게 강렬한 감동을 줬다. 여러 의지와 전통이 너무 부가돼 이제는 찾기 힘든 성당의 본래 의미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공유하게 됐다.

흔히 우리가 좋은 성당을 짓지 못하는 이유로 비용 문제, 시스템 문제, 절차 문제 등 여러 제약을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성당의 본래 의미는 잊어버리고 그간 역사가 축적했던 시대적 해결안들을 나열한 집적의 공간, 잉여의 공간을 성당 건축으로 대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스테인드글라스 없이도, 파이프 오르간 없이도 좋은 성당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평화신문, 2012년 6월 3일, 김영준(베드로, 김영준도시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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