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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가톨릭 문화산책: 건축 (1) 하느님 백성의 집과 두라 유로포스 주택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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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2-10 ㅣ No.158

[가톨릭 문화산책] <4> 건축 (1) 하느님 백성의 집과 두라 유로포스 주택 교회

당신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하시는 하느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의 신전은 신상으로 형상화된 신이 머무는 집이었지,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의 신은 신전 안에서 사제들이 바치는 희생제사와 자기를 섬기는 이들의 봉헌물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런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앞에 모일 필요가 없었다. 이들의 신전은 거의 언제나 닫혀 있었으며, 신상을 잘 모실 수만 있으면 작은 방이라도 좋았다. 그러나 높은 데 지어진 그리스 신전은 멀리서 장대하게 보이려면 벽 주변에 원기둥을 둘러야 했다. 그리스 신전은 주택이라는 건축유형이 발전해 생긴 것이지만, 도시 안에서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을 신전으로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 모세의 성막.


고대 근동 사람들은 산이나 들을 다스리는 신들이 제각기 따로 있다고 믿었다. 이 신들이 있는 산이나 들은 거룩해도 그들을 섬기는 이들은 그곳에서 살지 않았으므로, 거룩한 신전과 사람이 사는 곳은 따로 구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계시고 함께 움직이는 분이셨다. 하느님 현존을 상징하는 성막은 이동하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었다. 성막은 히브리말로 미쉬칸(mishkan)이라 하는데, 이는 '거주하고 계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머물겠다"(탈출 25,8).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당신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하느님의 성막을 한가운데 두고 숙소를 만들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며 살았다. '하느님의 집'(domus Dei)은 백성과 함께했고, 백성은 '하느님의 집'과 함께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은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건물을 사용했지, 신을 위한 성전이나 기념물로 건물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용한 건물은 전례 회중이 모여 기도하도록 마련한 '전례 회중의 집'이었다. 이를 '교회의 집'(domus ecclesiae)이라 한다. 에클레시아(ecclesia)는 그리스어 ekklesia, 즉 '오라고 부르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 모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교회의 집'은 '하느님께서 불러내어 모인 사람들의 집', '하느님 백성의 집'이다. 이 말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역사가이자 그리스도교 최초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우스가 사용했을 정도로 오래됐다. 그러다가 '교회'라는 이름이 그러한 건물을 뜻하는 말이 됐다. 사람들이 곧 건축이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교회는 여러분을 위해 건설됐지만, 여러분 자체가 교회입니다"하고 말한 바 있다.

두라 유로포스 주택교회.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이라는 두 가지 표현이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거주하시는 집이 당신 백성 가운데 있고, 그 안에 당신 백성이 모이는 집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례헌장」은 "전례의 집전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실현하기에 적합하도록"(124항) 성당이 건축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곧 '전례의 집전'은 '하느님의 집'을,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는 '하느님 백성의 집'을 말한다. 이렇게 성당 건축에 대한 「전례헌장」의 표현은 멀리 모세의 성막에 닿아 있다.

그렇지만 교회가 처음부터 성당을 건축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공인된 이후에야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인 바실리카(basilica)를 예배를 위한 건물로 바꿔 사용했다. 이후 내부공간은 잘 정돈됐고, 점차 원형의 돔(cupola)으로 중앙부를 강조하거나 전례가 거행되는 제단을 향한 '거룩한 길(via sacra)'이 강조됐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사람들 눈을 피해 주택을 성당으로 사용했다. 이는 마치 한국교회 초창기 이벽의 집이 비좁아 집회 장소로 적당하지 않게 되자, 명례방에 살던 김범우(토마스)가 자신의 집을 집회 장소로 제공한 것과 같다.

이제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교회는 어디에 있던 것일까? 그 교회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 시리아 두라 유로포스(Dura-Europos)에 있었다. 고대 도시 두라(Dura)를 헬라인들은 유로포스(Europos)라고 불렀는데, 바로 이곳에서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이 교회는 230년이나 232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건물은 본래 주택이었다. 사람이 사는 주택을 성당으로 개축한 것이다. 특정한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예배 장소로만 사용하도록 어떤 개인의 주택을 약간 개조해서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라 유로포스 주택 교회'라고 부른다. 이 주택 교회는 결코 특별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주택이 지어질 당시 그리스도교는 탄압을 받고 있었으므로 독자적 구조물을 갖지 못하고, 부유한 사람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6-47).

초대교회 신자는 안식일에는 회당으로 가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전례에 참석했지만 희생제사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며, 주일에 저희끼리 별도로 누군가의 집에 모여 사도들 가르침을 듣고 빵을 나누고 식사했다. 그러니까 당시의 이들은 '교회에 간다'는 말을 '집에 간다'고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 두라 유로포스 주택교회 세례실.


이 주택 교회가 있는 도시에는 6000명 내지 8000명이 살고 있었으며, 이 주택 가까운 곳에는 유다인 회당과 미트라스 신전이 있었다. 이 주택 교회는 기둥을 두른 안마당을 한가운데 둔 전형적인 상류 로마인의 주택이었다. 주택 교회가 가장 강조한 것은 '신자들의 집회'였다. 이 집회는 당시 사원에서 유래한 것도 아니고 유다인 회당 집회와 비슷하지도 않았다. 공동체가 일치를 이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전례가 이 주택 교회들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이 주택 왼쪽 부분에는 벽을 터서 길게 만든 집회실이 있다. 이 방은 5m×13m로 50명 남짓한 신자가 성찬전례나 미사를 드리는 데 사용했다고 하니, 그 도시에서 적어도 120명이나 160명 당 1명꼴로 그리스도교 신자였음을 알 수 있다. 집회실 한쪽에는 단을 높이고 예배를 이끄는 사람이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앉게 했다. 이 방에서는 약 2시간 동안 유다교 회당과 비슷하게 예배가 진행됐다. 고고학적 분석으로는 이 방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았으며, 식사는 안마당에서 했을 것을 추정한다. 안마당 한가운데에는 빗물을 모으는 수반이 있었다.

이 주택 교회에는 작은 세례실이 집회실과 따로 분리돼 있다. 집회실과 세례실 사이에는 예비신자가 세례를 준비하거나 다른 활동에 쓰이는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세례실에는 단을 높인 수조가 있고 그 위는 아치를 틀었으며, 아치 밑에는 별모양으로 장식했다. 세례실에 '선한 목자', '물 위를 걷는 그리스도와 베드로' 등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프레스코 회화가 있으며, 특히 이 가운데 '중풍 병자를 고치시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이렇게 그들은 처음부터 하느님께 예배하고 찬미 드리는 것에 예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회 건축이 주택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고고학적 사실 이상을 의미한다. 이 주택 교회는 믿음이 탄압받던 시대에 사람의 눈을 피해 하느님을 찬미하려고 주택을 사용했다는 사실로만 이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 두라 유로포스 주택 교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집'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고, 당신 백성을 안으신다는 것이다. 또 이 주택 교회는 구약의 성막인 '하느님의 집'이 당신 백성 가운데 얼마나 더 가까이 머무시기 위해 이렇듯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안에까지 들어오셨는가를 말해주는 역사적 증거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가는 곳이라면 우리 인간이 사는 주택에까지 오시고, 그 안에 모인 사람 안에서도 계속 움직이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주택을 보며 한국교회 역사 안에 나타난 우리 한옥 주택 교회의 의미도 깊이 생각해보자.

[평화신문, 2013년 2월 10일, 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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